고통 가운데도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스타킹 야식배달부 성악가 김승일씨!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며 살다가 야식집 사장의 제보로 2010년 12월 4일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 성악가로부터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찬사를 받으며 다시 노래 인생을 시작한 김승일. 세계적인 성악가 폴 포츠와 함께 무대에 서는 등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희망의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난 그의 아픔과 눈물과 희망을 들어본다.
어머니의 투병으로 모든 꿈을 접다
김승일 씨는 학창시절 수원시 가요제, 서울시 청소년 가요제, 안양시 가요제 등 각종 노래대회 대상을 휩쓸었다. 노래면 어딜 가든 인정받았고, 자기 자신 만을 믿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갔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재능은 단 4개월의 준비로 한양대 성악과로 이끌었고 뛰어난 성적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의 인생도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다니던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원망스런 마음에 노래를 접었다.
교회에 가면 성가대의 소리에 노래가 생각날까 발길을 아예 끊었다. 그렇게 꿈을 뒤로하고 돈을 쫓아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했다. 택배, 퀵서비스, 노점상, 유흥업소 전단지 배부 등 돈 벌 수 있는 일은 다했고 돈도 나름 모았다고 생각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의 사기와 계속된 고통사고로 또 모든 것을 잃고 빚만 남았다.
세상의 웃는 사람들이 다 미워졌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이 모양인데 뭐가 행복해서 웃는지…" 쌓여가는 미움과 절망에 세 번이나 목숨을 끊고자 시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자신의 절망스런 인생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낀 새벽 하나님은 김승일씨의 마음을 어루만지셨다.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제 뒤에 있는 것을 느꼈어요. 하나님께서 마치 내가 네 뒤에 있으니 아무런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자고나면 빚이 늘어나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라고 느껴질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환경을 돌려놓는 힘이 있었어요. 전 성령님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잊고 살았지만 주님은 저를 잊지 않고 줄곧 지켜보고 계셨던 거지요."
스타킹 출연으로 재기하다
사회생활 시작하고는 택배를 하면서 큰 사고도 두 번 났고요.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빚이 3천만원 넘게 되는 일도 겪었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그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을 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빚만 늘어갔죠. 정말 자살할 결심을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런데 스스로 이겨내자고 수없이 다짐하기를 반복하면서 극복했어요.
그 와중에 도저히 이 상황을 벗어 날수 없을 현실에 놓였을 때 제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는 어떤 힘을 두 번 정도 느꼈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어요. 신용불량자 밖에 될 수 없고, 자칫하면 빌린 돈 때문에 감방이라도 갈 수 있을 시점이었는데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낄 수 있었죠. 그 때 ‘하나님이 계시구나’ 라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성령의 역사죠. 그리고 나선 돈이 생기면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지독하게 모았어요. 나중에는 수천 만 원이 모아졌어요. 그렇지만 그것도 친구가 창고를 짓는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모두 날린 적도 있어요.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삶의 연속이었어요.
야식집은 밤에 배달을 하니까 노래하기 좋았다. 어떤 때는 배달하면서 노래하다가 신호대기 중에 혼자서 노래를 하니까 사람들이 전부 쳐다보더라구요. 그래서 부끄러워서 신호도 바뀌기 전에 얼른 도망가기도 했지요. 노래는 제가 힘들고 고되고, 괴롭고, 슬프고 또 기쁠 때 항상 위로가 되어 주었고, 가족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주었어요. 정말 다시는 노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생각도 안 했어요.
야식집 사장님과 7년간 같이 지내면서도 예전에 노래를 했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핸드폰에 심심해서 녹음한 제 노래를 보여줬는데, 사장님이 스타킹에 신청하시겠다고 해서, 스타킹이란 곳이 신청한다고 모두 되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될지언정 나갈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얘기하고, 2주 후쯤에 스타킹 작가에게 연락이 왔어요. 스타킹 작가인데 녹음해서 보내달라고요. 10년 전, 절대로 노래를 안 하겠다고 학교까지 단번에 나왔던 상황에서 처음에는 출연을 안 하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이상하게 가슴에 한이 있던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는 이상하게 놓치고 싶지 않았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스타킹의 문을 두드렸죠.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죠. 변화의 동물이란 말인데, 집에도 오토바이 사진을 붙여놓았어요. 초심을 잃지 말고, 꾸준히 성실히 하다보면 무슨 일이든, 어떤 날이 되든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머니 같은 맨토 변영인 교수
김 선생에게 어머니와 같은 멘토가 변영인 교수님(동서대학교 선교대학원)이 있다. 변 교수님은 부산에 연주 갔다가 우연히 식사하는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정말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시다 생각했고 저를 잘 이해해주실거 같았다.
교수님을 통하여 많은 격려와 도움을 받고 있다. 변영인 교수님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분이어서 교수님의 겪었던 어려움은 듣고만 있어도 눈물이 한바가지 나올 정도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신 인간 승리자이시다. 시동생 시누이 8명을 시집장가 보내고, 슬하에 자식 넷을 두시고, 40에 공부를 시작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고 교수까지 되셨으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시다.
“제가 스타킹을 통해 연예계 분야에서 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시련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와중에 변영인 교수님이 항상 신경 써 주시고, 자신의 일보다 제 일을 더 힘써주시는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 했다. “저에게 노래는 희망입니다. 어렵고 꿈을 이루지 못한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된다고 하더라구요. 간절히 원하고, 간절히 바란다면 희망은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며 살다가 야식집 사장의 제보로 2010년 12월 4일 스타킹에 출연해 유명 성악가로부터 "이런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찬사를 받으며 다시 노래 인생을 시작한 김승일. 세계적인 성악가 폴 포츠와 함께 무대에 서는 등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희망의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 그를 만난 그의 아픔과 눈물과 희망을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