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님만 사람을 개혁한다(고인호 목사/인터뷰)

by kim posted Sep 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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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님만 사람을 개혁한다!

은퇴 후 PCA 코디네이터로! 고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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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호 목사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산 사람!

최고의 엘리트 삶을 버리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가다!

 

필라델피아의 원로목사님하면 곧 바로 떠오르는 분은 고인호 목사님 이시다. 그만큼 혼신을 다해 성도를 사랑하고 성경을 가르치며, 특히 최초 EM목회의 지평을 여신 하나님의 사람이시다. 하나님께 부르심 받은 그대로 2세 청년들을 중점으로 목회의 최고봉인 예수그리스도로 사람을 개혁하는 일에 헌신하신 고인호 목사님과 사모님을 뵙고 그동안의 성역에 대하여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1954년 배타고 미국유학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정에서 성장하여 1954년 부산에서 배타고 유학길에 오른다. 그 당시 한국은 학생혁명과 군사혁명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고난당하는 한국을 보며 왜? 일어나지 못할까? 안타까웠는데, 테크날러지와 자본으로는 되지 않고 사람을 개혁해야만 하는 것을 깨닫고 경제학에서 화공학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대학1년에 대학생 성경공부(IFES)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졸업 후 귀국하려는데 정세가 어지러우니 당분간 미국에 있으라는 권유에 취직을 하게 되고, 늘 열심히 성경을 읽었다.


목회자로 부르심

3년마다 열리는 얼바나 미셔너리 컨벤션의 저녁 주 강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주 위해 생명 바칠 사람 일어나라는 말씀에 헌신하고 신학을 결정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사람을 개혁 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전 해야 산다!는 강한 부르심이 있었는데, 어렵게 공부하여 얻은 좋은 직장도 버리고 신학을 한다는 일에, 친한 친구들은 ? 목사가 되나? 장로로도 일 할 수 있는데라며 이해 못하고 미쳤다고 비난하고 떠났다. 주변에 예수 믿는 친구도 없고 고립이 되어 정말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 그때 마13:44 말씀에 도전 받게 되었는데, ”세상의 엘리트 삶을 다 팔아서 복음전도자의 삶을 샀다머리 둘 곳 없는 예수님을 따라간다고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온종일 가슴이 두근거렸다.


큰 시험으로 신학 포기

그 후 시카고에서 한인 교회를 참석하시는 목사님 몇 분을 라이드 하는 중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어린마음에 목사가 저렇다면 나는 신학을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보스톤으로 이주하여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서 김동길 교수를 만났는데 마음이 잘 맞았다. 그 당시 목사는 최하의 직업으로 인정되었는데, 김동길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로 태어나 목사는 한번 해 볼 만 한 것이다라고 대범하게 말했다. 그 말에 참으로 많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코리텐붐 여사의 기도로 신학가다.

3년 후 매일 성경 읽는데 “(고전9:16)복음 전하지 않으면 화 미친다는 말씀이 자나 깨나 떠나지 않고 괴롭히는 중에 코리텐 붐 여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일방적인 강력한 기도로 감명을 받고 있는 중에 크리스챤 투데이에 기재된 한경직 목사, 죤 스토드 목사의 로쟌대회 소식으로 감명 받아 1969년 프린스턴으로 갔다. 그리고 영락교회 청년부 목사로 가기로 되어 병역문제로 시민권을 받고 한 달 후면 졸업 하는데 영락교회에서 다음기회에 부르겠다고 통보가 온 것이다. 그렇게 상심하는 중에 기적적으로 모든 미국학생을 제치고 드렉셀 힐 지역의 미국 교회 부목사로 청빙 받아 필라에 오게 되었다.


연합교회와 임마누엘교회

결혼 후 197221일에 연합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중점의 목회를 시작하고 자랑할 만한 그룹으로 성장하고 2EM 교회를 시작했다. 그 당시 (EM500/KM500). 그러나 한인 중심으로 교회이주를 원하는 그룹과 청년중심의 원하는 그룹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주를 원하는 그룹이 첼튼햄에 새 성전을 구입하면서 이미 연합교회이름을 등록했기에 이름도 양보하고 정확하게 1/2로 나누고 본 교회는 임마누엘교회로 정하고 멀티처치로 성장해갔다. 그리고 EM교회로 나가서 개척하고 또 2교회가 개척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유펜 유학생 미니스트리를 통하여 학위 받고 나간 사람이 약 1.000명이상이 되었다.


순회 성경공부

금요일 학생으로 시작하여 구역 8개를 주중에 2주에 한번씩 (, , , , , , , )순회 성경공부를 통하여 영적 눈이 뜨이고 신앙이 성숙하는 모습을 보며 최고의 목회 기쁨을 맛 보았다. 그리고 전도사, 사역자는 한 번도 광고를 낸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자원 하는 많은 사역자들이 기다려야하는 해프닝도 많았다. “목회는 숫자가 중요 한 것이 아니라 일반성도 리더자, 목회자 양성으로 사람의 열매가 없다면 실패한 것이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 하시며 내게 맡겨 주신 한사람일지라도 소홀히 하면 주님께서 슬퍼하실 일 이라고 전했다. 그 당시 성경 공부했던 교인들은 세월이 지나 반백이 되었어도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은퇴와 PCA 코디네이터로 부르심

교단 총무가 3년이나 공석일 때 마음에 부담이 왔고, 성령 보다 앞서서 일하지 말라고 기도 하는 중에 Dr. 쿠퍼의 권유로 승낙하고 8월 당회에서 발표하고 9월 말에 은퇴하고 아틀란타로 가게 되었다. 그 다음해 1월에 임마누엘교회에서 원로목사로 추대함을 알려왔다. 8년이 지나고 동북부지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필라로 다시 오게 되었다. 현재 교단총무는 16년째 섬기신다. 그리고 13년 동안 2세 컨퍼런스를 주도하여 청소년들의 사역에 열정을 보이신다. 대학생 성경공부 그룹에서 주님을 만난 것을 간증하며 2세대들에 대한 사랑이 돈독 하셨다. 필라에 오신 소감은, 집에 온 것 같이 편안하다고 전 하시며 주님나라 갈 때까지 사역을 감당해야 하노라고 기쁘게 말씀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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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호 목사, 고명선 사모


고명선 사모님

목회자와 결혼 하기위하여 신학을 하시고, 특별한 날에는 반주자가 없어서 어려움을 당한 것을 계기로 결혼반지를 팔아 발드윈 중고 피아노를 구입하여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며 목회자의 아내로, 또 동역자로써의 모든 조력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신 그 열정에 도전을 받는다. 한번은 폭염의 여름 8월에 에어컨도 없는 차에 3개월 된 아기를 태우고 설교를 하러 가시는데 더위에 지친 아기를 보니 곧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나, 어린생명도 주께 맡기고 목사님이 무사히 도착하시길 위해 절실히 기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모든 어려움 보다 주를 모르는 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한다. 목회에 필요한 모든 것은 무엇 이던지 스스로 배우면서 필요를 채웠다고 전 하셨다. 현재 가정사역과 사모세미나 주 강사로 활동 하시면서 틈틈이 글도 쓰신다. 또한 미적 감각이 뛰어 나셔서 손님접대의 음식과 데커레이션을 아름다운 색감으로 준비하여 분위기를 이끄는 매력과 센스가 뛰어나시다. 한마디로 목회자의 아내로써, 어머니로써, 영적 멘토로써 주님께서 준비시키셨다.


선데이종교에 대한 격려말씀!

무엇 보다, 주를 알지 못하는 한 영혼을 위한 마음으로 한인사회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문서선교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을 개혁하고 바꾸신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고 누구나 다 오픈하여 받아들이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첫 걸음 이다! 내가 하지 말고 성령님 보다 앞서지 말라! 주님이 일 하시게 자리를 내어 주라

 

김한나 기자 church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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