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넘어 흘러 온 러시아 기독교의 전통과 문화

by YK posted Sep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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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이념 넘어 흘러 온 러시아 기독교의 전통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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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 시대야말로 문화의 시대라는 희망 섞인 말들을 자주 듣는다. 실로 셀 수 없는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우리 삶의 중심부로 파고들고 있다. 이러한 문화현상의 홍수 상태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난감해 하는가? 댐이 터져 밀려오는 듯한 문화 현상 앞에서 백년이 넘는 한국 기독교와 우리 교회가 오늘의 문화를 주도해 갈 수는 없는가?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오늘의 글을 시작한다.


십년 전, 그러니까 지금은 러시아로 불려지는 옛 소련의 여러 도시와 그곳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일으키던 때였다. 우리들의 안내자였던 소련 청년은 '페레스트로이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말했고 고르바초프의 신변을 염려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대학의 학생들이 관심 갖는 과목은 경영학, 마케팅 등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도 그렇다고 했다. 안내자의 예감은 적중해 우리가 귀국한 지 얼마되지 않아 연방체제가 와해되었다.


혹자들은 소망했던 소련의 멸망이 이뤄지고 사회주의는 궤멸되었다고 흥분했지만, 우리는 소련연방의 마지막 시대를 살고있는 러시아 사람들에게서 이념보다 더 위대한 삶의 양식과 삶의 힘을 목도했다. 


특히 1천년이라는 밀레니엄의 역사 전통을 지닌 러시아의 교회가 그러했다. 스탈린을 비롯한 과격 공산집권자들로부터 거부되어 왔다는 러시아 정통교회에 대한 반공주의적 여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그곳에 교회와 성당, 수도원과 신학교, 성직자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레닌그라드, 지금은 페테르부르크의 스몰렌스크 신학교와 그 도서관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했다.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소를 품에 안고 있는 성당 정원을 돌아서 숲이 우거진 신학교 교정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건물 2층 어둑어둑한 낭하를 거쳐서 들어간 도서관은 보기엔 초라하고 우중충한 곳이었다.


그러나 도서관 지하에는 전문 신학도서를 무려 30만 권이나 소장하고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이 있었다.


그 숱한 학정의 역사, 파괴적 반 기독교 체제마저도 이 도서관을 없앨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러시아 사람들의 몸에 배인 문화적 정신과 문화활동의 열매는 기독교의 전통이었으며 또한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삶의 역동적 힘이었다.


그들은 풍요로웠다. 모스크바의 이름난 고리키 가(街)의 맥도날드 햄버거에 굶주려 기다랗게 줄을 서 있을지언정…. 이방인이요 갑자기 들어선 우리 일행을 대접하기 위해 내어놓은 음식물들은 우리 식대로 표현하자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였다. 설혹 그들이 물자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그들은 결코 굶주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기나긴 70여 년 동안 '포로수용소 군도'를 썼던 솔제니친마저도 내팽개쳐진 동토에 살면서 그 고통의 땅을 버리지 않고 그 땅에 입을 맞추며 살아온 다수의 러시아 민초들의 깊고도 깊은 신앙적 삶의 양식과 심정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


모스크바 공항은 그들의 전통문화의 예술품이 반출될까봐 혈안이 되어 출국하는 승객들의 가방을 수색하는 일이 예사로운 일일 정도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했다. 예전행위가 허가된 성당이든, 금지된 성당이든 간에 성당마다 가득한 그림들, 그 우중충한 아이콘(圖像)들 - 어떤 수도원 성당은 그야말로 아이콘(Icon)들로 사면 벽, 천장까지 도배를 하듯 걸려있었다.


러시아 정통교회의 성직자는 전문적인 고도의 성악발성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니 교회의 음악적 소양을 알 수 있으며, 그것은 높은 돔으로 건축된 성당에서 악기를 허락하지 않는 정통교회 신부들의 울려퍼지는 인도 송으로도 증명이 된다.


레닌그라드 신학교에는 음악과 함께 미술, 그것도 '아이콘'제작을 훈련하는 학과가 별도로 있다는 것은 그들의 문화창조의 정신이 대물림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이천원 정도면 넉넉히 그 유명한 '멜로디아'의 클래식 명반을 구입할 수 있었던 음악사에는 1천년을 기념하는 러시아 교회의 기념 성가곡 음반이 십여 가지가 발매되고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어떤 성서주석서보다도 성서를 이해하게 하는 길 안내가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저녁찬송(Vesper)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보다 더 감동적이다.

민족음악과 서구음악 사이에서 서구음악으로 기울어졌던 차이코프스키는 수많은 감동적인 작품사이에 전통적인 러시아교회의 예전음악인 교부 크리소스톰(St. Chrisostom)의 경본을 대본으로 한 예전곡을 봉헌했었다.


복음성가가 대부분인 한국교회의 찬송가에 겨우 한 곡 생존하고 있는 보르트니안스키(Bortniansky)의 찬송가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정서에 어우러지는 찬송가 제작의 의도와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각 민족이 자신들의 특징적인 정서로부터 창작된 것이야말로 세계적이고 보편적 감성을 얻어낼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일이다.


겉 표면에 나타난 러시아 사회, 오도된 정보들로 우리는 러시아인들이 지니고 있는 깊은 문화적 종교적 심성을 부인해왔고 더 나아가서는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념적 표제만으로 그들 삶의 젖줄을 잇고 있는 역사 깊은 기독교의 영적 세계를 전적으로 매도해 왔다. 


공산체제가 와해된 지금에 와서도 그런 입장을 바로 잡으려들지 않는 고집스럽고 예의바르지 못한 행태는 한국교회의 몇몇 러시아 선교활동에서 낱낱이 나타난다.

70년의 반기독교적 역사는 1천년의 러시아 정통 기독교의 역사를 쓰러뜨릴 수 없었고 견딜 수 없는 혹독한 폭압 속에서도 그 문화적 생산력의 전통은 말살될 수 없었다. 노인 신자들은 1천년의 러시아 교회의 전통을 사수하고 있었다. 전통전승의 담지자들로서 노인들은 오늘의 러시아교회를 부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인가?


이념적 물질적 취약성을 얕잡아보는 우리들의 교회는 1세기를 지나도록 생산해 놓은 문화가 어디 있던가? 문학, 음악, 미술, 우리의 교회가 오늘의 문화창조의 무대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교인수가 인구의 3분의 1을 육박하고 있다는 꿈이 부풀고 있는 우리의 교회가 내놓을 만한 문화적 열매가 있는가? 공고한 믿음의 성을 쌓아 올리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을 문화적으로 표현하고 생산할 수 있는 힘을 묻어둔 것이 아닌가?


문화적 현상에 대해 적대감에 가까운 입장을 지니고 반문화적 태도를 철저히 고수하고 살았던 톨스토이가 살았던 그 나라, 어둡고 차가웠던 공산체제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그들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러시아교회의 영적 감흥과 문화적 영성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창조물들을 지극히 사랑하고 있었다.

최근 나는 영성신학자로 알려진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책들 가운데서 독특한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하나인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우러러'라는 소책자(분도출판사)는 '아이콘과 더불어 기도하기'라는 부제가 덧붙여진 책이다.


이 책은 러시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창문으로 여기며 사랑하는 '아이콘'들을 소개하면서 그 중 두 개의 아이콘 작가인 안드레이 르불료프의 영성을 전해준다.


이 중 한 그림은 공산 혁명이 일어난 격동의 시기인 1918년에 한 성당 지하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 영적 그림은 오랜 역사 안에서 러시아 사람들의 그림이 되었다. 아니,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믿음의 안내자요 고통받는 실존들의 위로요 환란 중에 있는 백성들의 위로와 희망이었다.


안드레이 르불료프(Andrei Rublev)는 15세기 타타르족이 러시아를 침략했던 암흑 시대를 살던 수도사였다. 공포와 증오, 분열, 학살, 파괴와 폭력으로 휩쓸려가던 절망적인 역사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비참함과 절망의 삶을 살던 러시아인들에게 우애와 사랑과 화해의 이상을 '삼위일체'라는 최상의 아이콘을 통해 불어넣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가장 혹독한 문화 탄압과 검열이 극심했던 공산주의 시절에 오락적인 것은 죄악이라고 극단적 표현을 아끼지 않은 소련의 영화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가 장편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반 기독교 시대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5세기의 희망이 20세기에 재현되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의 세계는 '희생', '노스탤지어', 인류의 앞날을 예언한 '솔라리스' 등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철학자가 되어야 영화 감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처럼 그의 영화에서 오락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의 영화에서 인류의 미래를 희망으로 눈여겨 볼 수 있다. 이러한 생산적인 일 들이 그들의 문화 전통의 역사 속에서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들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풍요의 시대에도 문화형성과 창조의 임무와 소명을 폐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초기 한국교회가 주도해 온 문화 형성의 공적과 명성을 회복할 수는 없는가? 앞서 살았던 우리들의 선배교회는 개화기를 비롯하여 음악과 체육 등 당시의 문화 현상에 나타나는 여러 영역에서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던가?


우리들의 신앙공동체가 경쟁과 시장화, 광기와 비인간화의 소외현상으로 에워싸임을 당하고 있다. 쏟아지는 문화 현상에 현기증을 느끼고 반문화적 몸짓을 굳히고 있다. 이 어려운 시대에 휘말리지 않는 건강과 지혜와 능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걸맞지 않는 말일지 모르지만 러시아에서 얻은 교훈에 의하면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육화하며 몸부림치는 사제적(司祭的) 영성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러시아 정통교회 사무 본부가 있는 수도원 뜰에는 소설 '외투'의 작자 '고골리'의 기념비와 그의 얼굴을 담아놓은 부조가 있었다. 안내자는 "당시 민중의 아픔을 뛰어난 문장으로 그린 '외투'야말로 그 이후에 나온 모든 러시아문학,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까지 합하여도 비교할 수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도스토예프스키를 낳게 한 고골리, 러시아 정통 교회가 기억하고 있는 위대한 러시아문학은 러시아교회의 문화 창조의 힘에 의해서 형성되고 이어져왔다. 그 문화 창조와 형성의 중심부에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복음적 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정통교회의 수도원 뜰은 러시아 백성들이 겪는 비참과 함께 한 고골리의 피맺힌 호소인 '외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극단적 긍휼이라는 구원의 복음이 살아있는 한 현장이었다. 그 복음의 힘이 러시아 사람들에게 언젠가 다시금 생명의 꽃을 만발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면….

이영호/ 한일장신대학교 총장

이영호(李英浩·66) 교수는 숭실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장로회신학대학원과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목회학 박사)에서 기독교 사상사와 영성신학, 교육신학을 전공한 기독교교육분야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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