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함께 울자! 사무엘상 11:6~7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 인도하면 그 책임은 전체가 지게 됩니다. 그래서 뒤 따라 가는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그냥 그 속에 속해있다는 이유 때문에 결과를 겪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성경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진 슬픈 역사와 구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인이, 리더가 갖춰야 할 미덕이 무엇인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정의 세우는 일에 침묵한 결과
성도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미덕은 “눈물”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사사기 21장을 보면 거의 몰살당할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일이 생긴 것은 이들이 정의를 세워야 하는 일에 불참하고 침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사기 21장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지나가던 한 부부를 폭행하고 무참히 죽였습니다. 분노한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 장로들에게 항의했지만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억울했던 레위인은 다른 11지파에게 호소했고 분노한 11개 지파가 들고 일어나 응징을 합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11지파는 불의 앞에 나서지 않고 침묵하고 숨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여 거의 몰살지경에 이르게 합니다. 공동체의 문제에 참여하지 않았고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벌을 당한 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두 번째 비극을 당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암몬 왕 나하스가 약해진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노리고, 길르앗 야베스를 침략하여 인간노예사냥을 한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 지방 사람들을 잡아 오른쪽 눈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눈을 뽑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눈을 뽑아서 전투력을 빼앗았는데, 눈이 없으면 싸울 수가 없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거의 포기 지경에 이르렀고,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고 싸울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복하려 했지만 나하스가 이렇게 답합니다. “다 항복하고 눈을 뽑아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건 ‘살려주겠다’가 아니고 당연히 노예가 되어 죽으라는 말이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이렇게 응답합니다.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11:3)
7일에 운명을 걸다
7일에 이 지역의 운명을 걸었습니다. 7일안에 구원자가 없다면, 이 지역의 모든 남자들이 오른쪽 눈이 없는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길르앗 야베스와 사울이 있는 곳까지 거리가 70km입니다. 오가는 길을 생각하고 논의를 하고 군대를 모으는 일만해 7일안에 이뤄지기 힘듭니다. 모든 게 느린 옛날에 7일안에 구원하러 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4) 울어주는 곳에는 해결방법이 나타납니다.
상황을 듣자 모두가 웁니다. 함께 울어줍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한 것은 바로 이 함께 울어주던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 때문에 베냐민 지파인 사울이 일어났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지혜와 믿음
성도가, 리더가 갖춰야 하는 두 번째 미덕은 지혜와 믿음입니다. 사울은 사람들의 눈물을 보자 자초지종을 묻습니다. 사울이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습니다. 거룩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성도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분노한 즉시, 소를 잡아서 토막을 내어 각지로 보냅니다. 그리고 선언하길.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7) 그는 단호함과 중요성을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모이자마자 그들을 이끌고 이동합니다.
7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습니다. 그리고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암몬 사람들에게 ‘내일 너희에게 눈 빼러 가겠다’고 말해서 안심시킵니다. 군대가 모이자마자, 새벽 가장 피곤한 시간대에 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대승리를 거둡니다.
얼마나 그 승리가 컸던지, 암몬 군대는 다 흩어져서 두 명도 모이지 못할 정도였다고 설명합니다. 여러분에게 사울에게 임한 이러한 충만이 있길 축원합니다.
조이(JOY)가 승리비결이다.
성도가 갖춰야 할 세 번째 미덕인 기쁨은 기독교인의 삶과 윤리의 기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이 제일 먼저입니다. 하지만 이 원칙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항상 내 자신이 먼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인내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울을 지지하고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량배라고 표현된 무리는 사울을 무시하고 멸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복수하거나 분을 품지 않고, 사울은 잠잠했습니다. 자기 일에 대해서 조용했습니다. 하지만 이웃인 길르앗 야베스의 문제가 나타나자 자기 일보다 더 크게 분노하고 싸웠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모습은 본이 됩니다. 결국 사람들은 이렇게 그를 인정합니다. 막 왕이 되었을 때에 그를 무시하고 멸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울의 단호한 리더십과 승리 때문에 그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 일이 얼마나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는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울을 끝까지 기억합니다.
오래된 원망의 역사를 해결
사울은 두 지역 사이에 있었던 오래된 원망과 역사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민족 간 문제를 오래된 묵은 역사를 해결해줍니다.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보상받습니다. 비록 이후에 사울이 제대로 왕 노릇 못했지만, 그래도 이들은 사울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가서 그 시체들을 훔쳐서 무덤에 고이 묻고 7일간 유예를 얻어서 사울에게 구원을 요청했듯이 7일간 금식까지 행합니다.
가장 원수였던 사람들이 가장 은혜를 기억하고 끝까지 남아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은 “내가 먼저”라고 말합니다. 그게 우상입니다. 자신이라는 우상입니다. 내가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맡기고 의지할 때 그리고 나를 마지막에 둘 때 축복이 임합니다. 뭐든지 순리가 있는 겁니다. 소를 억지로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게는 못합니다. 물 먹게 하는 것은 목마르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리는 것도 순리가 있습니다. 내가 부자 돼서 행복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삼고 이웃을 둘째 삼고 내가 마지막이 되면 복이 나를 따라옵니다.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