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기도와 듣고 말하는 기도

by kim posted Sep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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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기도와 듣고 말하는 기도(삼상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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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엘리야 목사

                                                

 

성경 66권은 기도의 사람들이 기도응답을 기록해 놓은 책이라고 할 정도로 기도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다. 신구약성경엔 기도의 단어가 544회나 언급됐고, 221개의 기도가 기록돼 있으며, 기도의 사람은 아브라함에서 바울과 사도 요한까지 수십 명이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기도했던 장소는 하나님의 제단(12: 7-8, 13: 4)에서 우물가(24: 12-14), 강변(32: 24-29), , 물고기 뱃속(2: 1), 성전, 한적한 광야들판(5: 15-16) 심지어 공동묘지 무덤 앞(11: 41-42)등 특정 장소를 정하지 않고 다양한 장소에서 기도를 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의 책이다.


인간에게 주신 최대선물, 언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최대선물은 언어이다. 젖을 먹는 아이들도 그들만의 언어로 엄마에게 의사전달을 하고, 말을 못하는 농아들도 자기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며, 거리가 가까운 사람에게도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고, 지구 반대편의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인터넷을 통해 빛의 속도로 의사전달이 된다


이 언어로 나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이 언어를 통해 희로애락을 공유한다. 만일 대화를 나눌 언어가 없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답답하며 힘들겠는가? 상대편이 나를 미워하는지 사랑하는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날 평야에 축성하던 거대한 바벨탑을 무너뜨릴 때, 땅을 뒤흔들고 지각이 뒤틀리는 초대형 강진이나 거대한 화산폭발로 하지 않으셨고, 무섭게 범람하는 홍수로도 안하셨으며, 전쟁을 통해 적군이 공격하는 것으로도 무너뜨리지 않았다.


언어혼잡의 바벨탑 사건

인간 언어를 혼잡케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바벨탑축성을 중단시켰다. 그래서 언어불통비극이 바벨탑 붕괴였다. 성 위에 사람들이 돌과 벽돌과 역청과 물을 올려 달라고 소리치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 밑에 사람들은 낮잠을 자거나 놀거나 딴 짓을 하고 있었고, 제각각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뿔뿔이 흩어져 가버리니 성과 대를 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언어불통이 바벨탑붕괴를 가져왔듯이 오늘도 말의 역사, 언어의 역사는 인간역사 흥망성쇠의 열쇠이다. 행복한 가정은 남편과 아내의 대화가 통하고, 부모와 자녀의 언어가 일치하나 불행한 가정은 언어가 서로 다른 아프리카 사람과 러시아 사람의 대화처럼 언어소통이 안 된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언어가 다른 가정, 목사와 성도의 언어가 다른 교회는 행복이나 부흥이 없다. 반대로 조직이 다 같은 말을 하고, 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는 교회와 가정과 사업과 가게는 잘되고 부흥하고 번창한다.


언어의 4가지

건강한 사람은 하루에 평균 25천 마디의 말을 하고, 여자들은 좀 더 많아서 하루 3만 마디를 한다고 한다. 글을 공간언어로 바꾸는 SNS에 빠져있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들은 입으로 하는 말은 적어졌겠지만 그 대신 트위터 속에 살면서 문자(손으로)로 대화하는 것을 계산하면 오히려 현대인 남녀는 모두 훨씬 더 많은 말을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언어)들을 1년 동안 모으면 400쪽짜리 책 130권의 분량이 된다고 하니 사람이 일평생에 하는 말은 과연 얼마나 많은 분량일까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네 가지가 있다.

알 필요가 있고 할 필요도 있는 말 

알 필요는 있지만 할 필요는 없는 말 

알 필요는 없지만 할 필요는 있는 말 

알 필요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이 언어들이 우리의 인격과 품격(사람이 된 기품)의 바로미터가 되는데 매일 당신이 하는 말들은 과연 어떤 말일까? 알아야할 필요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말인가? 알 필요는 있어도 할 필요는 없는 말인가? 아니면, 알 필욘 없지만 할 필요는 있는 말인가? 알 필요도 할 필요도 없는 백해무익한 말인가? 하나님이 주신 최고선물 언어를 잘 사용하는 품격과 인격과 지혜가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


언어의 선물 중 최고는 기도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세치 혀, 입술에 재갈 먹이는 경건훈련을 안한 사람의 세치 혀, 그 혀들이 만들어내는 언어는 말 자체가 태우는 이고, 그 혀 자체가 부정과 불법과 사악과 죄악으로 가득 찬 하나의 불의의 세계, 쉬지 않는 악이고, 독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사의 치명적인 독처럼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가득한 요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입술에 재갈 먹이는 경건훈련을 못한 사람의 언어는 불이고 불의의 세계며, 쉬지 않는 악과 죽이는 독이 가득한 언어다


그래서 수양을 많이 한 사람의 언어도, 가방끈이 긴 판사 변호사 정치인 종교인 의사 교수의 언어와 팔등신 미인의 언어도 그리고 불학무식한 시장잡배의 언어도 말의 솜씨와 품격은 다를 수 있겠지만 도토리 키 재기일 뿐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능력은 없다. 기도는 우리 각 사람이 마음에 품고 있는 간절한 소원과 생각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 기도는 마음의 소원을 생각으로 집중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묵상기도와 마음의 소원을 소리로 발설하여 말(언어)로 기도하는 발성기도, 고성기도, 합심기도, 통성기도가 있다.


말하는 기도와 듣고 말하는 기도

우리의 기도도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생각하는 묵상기도가 1차원이라면 말하는 기도는 2차원이고, ‘말하고 들으며 듣고 말하는 기도3차원기도이다


유아기의 아이가 생각은 갖고 있어도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맘마를 말하는데 까진 시간이 걸린다. 그러다가 얼마 후엔 자기 이야기만 하는 단계를 지나고 다시 이웃의 말을 듣고 자기 말을 하게 되는 대화의 사람이 된다


오늘 당신의 기도는 어느 단계인가? 그저 생각으로만 하는 묵상기도의 1차원의 단계인가? 아니면 일방적으로 당신의 말만 전달하는 2차원의 단계인가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말하는 기도와 듣고 말하는 3차원 기도가 돼야 한다. 상대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대화는 좋은 대화가 이어질 수 없다


이제까지 멈춰있었던 생각하는 기도, 묵상기도에서 말하는 기도로 신앙수준을 높이자. 말하는 기도에서 말하고 듣는 기도, 듣고 말하는 기도의 단계로 기도수준을 높이자


우리 중에서도 아브라함, 사무엘,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같은 말하고 들으며, 듣고 말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나와야 하고 우리의 자녀들도 어린 사무엘처럼 듣고 말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많이 배출돼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통해 교회들이 살아나고 나라들이 살아나며 21세기 저물어가는 세계역사도 살리는 축복들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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