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은 밑바닥에 있다 (사무엘상 22장 2절)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무한한 권력을 누립니다. 하지만 없는 이들은 너무 낮고 힘들어서 감히 성공을 만질 수 없는 계층으로 양극단화 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은 바닥에 떨어진 다윗을 통해서 낮은 곳에서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의 바닥으로 쫓겨나다
1절을 보면 다윗의 처지가 낮은 곳 비천한 곳으로 추락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사무엘상 22:1) 22장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에서 벌어진 일의 결과로 인해서, 22장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21장에서 최선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엘에게로 가고 제사장에게로도 갔지만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숨겨준 사람이 해를 입습니다.
심지어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은 제사장조차도 살해합니다. 그 집의 아이들까지도 몰살시킵니다. 결국 다윗은 외국으로 망명하는 것까지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오히려 자기를 죽일 계획들이 논의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에 놀란 다윗은 그 논의를 듣자마자 광인 행세를 함으로서 그 위기를 간신히 벗어납니다. 그래도 군사령관이었는데, 용맹한 장군이었는데 한 목숨 살자고 비굴하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미친 척하고 침을 흘리고 눈동자를 흐리면서 수모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간신히 목숨을 보존합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이런 수많은 다윗의 계획과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현재 정말로 갈 곳이 없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받아줄 곳이 없습니다. 숨겨주었다가는 죽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윗에게 남은 마지막 도피처는 광야에 있는 굴이었습니다.
동물들이나 살아갈 곳입니다. 인간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이곳 밖에 그에게 남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동굴은 인생이 떨어질 수 있는 가장 낮은 곳, 없는 곳으로 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벼랑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곳은 후일 "아둘람 굴"이라 불리면서 잊을 수 없는 곳으로 기억해야 할 장소로서 남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다윗의 왕으로서의 삶이 시작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닥에서 만난 은혜
놀랍게도 인생의 맨 밑바닥에 떨어진 다윗은 그곳에서 절망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만납니다.
그 첫 번째 은혜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들입니다.
2절을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2) 다윗에게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비록 다윗이 도망자이지만 사람들은 다윗을 왕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그는 소망이 없고 돈도 없어 보입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이 인정받게 하시고 사람들이 모이게 하십니다. 왕궁에 있을 때에는 얻을 수 없었던 관심을 얻게 된 것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어디 하나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고난당하고 가난하고 차압당하고 도망 온 사람들입니다. 왕의 임무가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돕는 자입니다. 가진 자들과 어울려 그 덕을 보고 권력을 누리는 자가 왕이 아닙니다. 왕은 자기 백성 때문에 아파하고 돌보는 자입니다.
이것은 교회에도 동일합니다. 교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옵니까? 교회가 비즈니스를 위한 곳이라면 그곳에는 괜찮은 그럴듯한 사람들만 모일 것입니다. 교회가 좋은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면 윤리적인 사람들만 모일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죄인들을 위한 곳입니다. 병든 사람을 위한 곳입니다.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곳입니다. 그런 이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위로와 치료를 받는 곳입니다.
과거를 씻김 받고 새로워지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교회가 바로 이런 곳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사회의 낮은 사람들이 모이는 아둘람 굴 같은 곳이 되기를 원합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위로를 사모하는 아둘람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
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 작가의 글에 의해서 일반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고 관심 받는 역사적 가문이 있습니다. 메디치 가문입니다. 이들은 유럽의 돈줄이요 관문이었던 베네치아의 가장 유력한 집안입니다.
한국의 삼성과 같은 그런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집안은 유럽의 돈을 다 쥐고 있었습니다. 권력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황을 3명이나 배출하였고 결혼을 통해서 영국과 프랑스 왕실의 일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역사상 유명하게 된 것은 이들의 돈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돈을 잘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한 일중 가장 큰 업적은 예술 학문 등의 분야를 후원한 것입니다.
이들은 유럽에 학자나 예술가, 음악가, 건축가 등을 아낌없이 후원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도 들어갑니다. 이렇게 인문학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 덕분에 서양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인 르네상스가 시작됩니다.
과거 잊혀져 있던 역사와 문화를 다시 발굴해내고 인본주의적 아름다움과 문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건물을 세우는 일도 중요합니다. 돈을 버는 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크고 위대한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입니다.
다윗이 후일 왕이 되어서 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했던 시간은 바로 사람을 키우고 훈련했던 시간입니다. 그가 광야 아둘람 굴에서 후일을 위해 준비하고, 훈련하던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사회바닥의 사람들이요. 기회주의자들이지만 아둘람 굴에서부터 다윗을 돕는 인재요 용사로 훈련되는 과정으로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이 모이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 없는 의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죄인들이 모입니다. 회개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치료받기 위해 모이는 곳입니다. 부족하지만 죄인들을 들어서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지도자로 양성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현실이 아둘람 굴처럼 암담하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밑바닥에 다다랐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둘람 굴에서 훈련 받은 지도자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준비된 사람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에게 주신 축복처럼
여러분의 인생이 요즘 어떠십니까? 다윗처럼 아둘람 굴같으십니까? 의지할 곳도 사람도 없어서 광야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이 외로우십니까?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하지만 그 속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윗이 이제 갈곳이 없어서 인생의 밑바닥과 같은 아둘람 굴로 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때부터 왕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우리 삶이 망한 것 같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은 우리를 다윗과 같은 축복의 길을 시작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윗에게 주신 축복처럼 필요할 때 사람을 보내주시고 필요할 때 물질을 보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