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마라! (박보영 목사)

by kim posted Oct 0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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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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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방주교회 박보영 목사]


문제아, 폭력배들의 아버지. 교회에 칼을 들고 강도 들어온 십대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해 교인으로 삼은 목회자. 인천방주교회 박보영 목사는 이러한 자신의 헌신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자칫 잘못 하면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지를 염려했다.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은 당연히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 목사는 3대째 감리교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전 종교교회 담임)와 작은 아버지 박신원 목사(전 종교교회 담임), 아버지 박장원 목사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회에서 교인들의 치열한 싸움과 반목을 보면서 마음의 문을 닦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의사의 길을 걸어가다가 39세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는 순간부터 그 만남이 너무도 놀라워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소유한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과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들, 어려운 교회와 기도원에 다 나누어 주고 수중에 20만원만 들고 용산역 앞 작은 쪽방에 들어가 협성대학원을 진학하게 된다.

 

졸업 후 아무도 불러주는 곳이 없자 조치원 산 속에 상여 보관소 옆 작은 판잣집에 들어가 2년 동안 기도와 성경을 읽게 된다. 그리고 안성의 우범지역에 시온성 교회를 개척했다. 교회를 개척했지만 1년여 동안 교인 없이 목회를 하던 중 어느 전도사님의 배려로 11평짜리 작은 아파트를 빌려 쓰게 된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자는 날이 많았지 별로 아파트에 들어가 지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아파트를 우연히 방문했다. 


빈집에 들어 온 10대 후반의 3명의 강도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아이들과 예배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아파트 문을 잠그고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자, 당시 아이들은 본드와 환각제로 취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칼을 꺼내 박 목사를 찌르려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박 목사는 자신을 위협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고 너희는 용서 받을 죄인인데 예수 믿고 용서받자며 복음을 전했다. 아이들을 밤새 붙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말해주었다


다음날 박 목사는 아이들과 헤어져 교회로 돌아왔는데 수요예배 시간에 교회 문이 열리더니 바로 그 강도였던 3명의 아이들이 친구들 15명을 데리고 왔다. 그 일을 계기로 박 목사는 그때부터 길에 버려진 아이들, 구걸하는 아이들, 강도였던 아이들, 노숙자들과 교회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가르치고 성경을 암기시키고 새벽기도를 드리도록 해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 때 아이들 붙들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의 헌신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도둑질을 계속했고 도둑질 한 돈으로 창녀촌과 지방을 전전하며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교회로 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박 목사는 도둑질 한 아이들을 앞세워 일일이 피해를 입힌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때로는 술에 취한 주인에게 매를 맞기 일쑤였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나오는데 아이들은 심각하지 않은 듯 자기들 끼리 웃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날도 여전히 아이들의 도둑질에 대해 사과하고 돌아오던 박 목사는 교회에서 한 아이를 세워놓고 파이프 막대기로 힘껏 때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나를 10대씩 때려라. 대신 9대 때렸다가 마지막 1대라도 살살 때리면 다시 때리게 할 테니 힘껏 때려라고 말했다. 두 아이에게 20대를 맞았는데 박 목사는 너무 아파서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너무 아파요 더 못 맞겠어요.”

 

박 목사는 세 번째 아이가 죄송하다며 때린 매에 허리 밑 꼬리뼈를 맞고 쓰러져 정신을 잃고 소리를 지르게 됐다. 그래도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매를 맞았고 그렇게 80대를 맞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인지 나중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박 목사는 그 일 때무에 거의 한달 동안을 누워서만 지내야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허리가 안 좋아 박 목사의 의자에는 항상 뜨거운 팩이 놓여있다.

 

그런데 파이프 사건 이후로 아이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둑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왜 나를 때리고 나서 너희들이 변화되었냐고 물으니 세상이 다 가짜인 줄 알았는데 매를 맞고 뒹구는 목사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 목사가 이렇게 사는데 큰 깨달음을 준 이는 바로 할아버지 박용익 목사다. 박 목사의 할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16평 아파트에서 영동 종교교회를 개척해 부흥시킨 분이다


할아버지 목사님의 소원이 장손인 자신이 꼭 목사가 되어 안수보좌 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 목사가 안수받기 5일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종의 길을 가르쳐 달라는 손자, 박보영 목사에게 할아버지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라, 용서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라, 변명하지 말라, 가장 천한 곳에서 섬겨라는 말씀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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