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알아두면 좋은 성경용어 풀이 24
진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요한복음 8장에는 빌라도와 예수님의 대화가 나오는데 진리란 무엇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으로 대화는 끝이 난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인간은 참으로 오랜 시간들을 투자해 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진리(眞理)란 참된 이치이다. 참이란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진리는 믿음만한 참 곧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성경은 진리란 믿음이라는 말과 연관이 있다. 신명기 32:4에 하나님은 진실하시다(God of truth)에서 사용된 단어가 믿음(신실하심)과 연관된 단어이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실(fact)를 바탕으로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믿음은 참이다. 그러나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고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러므로 진리란 믿을만한 참 곧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과 한 여인의 대화에서 여인은“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니 예수님은“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라고 답하신다. 여기에서 알지 못하는 것 곧 참이 아닌 거짓된 것과 연관시켜서 여인의 조상이 예배한 장소는 하나님이 없는 거짓된 예배다고 밝히고 예배하는 자는 진리로 예배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이 진리를 말할 때는 언제나 사실(참 fact))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선포했을 때, 창조 이야기는 설화가 아닌 사실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사실이 없는 곳에는 의미도 없다.
진리는 언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믿을만한 사실과 연관된다
사람들이 진리를 추구해 왔을 때 늘 변하는 것이 아닌 변하지 않는 영원불변한 것만이 진리라고 믿어왔다그래서 진리를 말할 때 진리 앞에‘변하지 않는’이란 수식어를 붙여 변하지 않는 진리 이렇게 말하여 왔다.
상대적인 것은 진리가 아니다. 어제는 진리였는데 오늘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면 그것은 본래부터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진리는 절대적이다.
사람은 죽는다 이 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사람 자체는 변한다. 나이가 들면 늙고 때가 되면 죽는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다는 이 말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믿을 수 없어도 사람이 죽는다는 이 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먼 훗날에도 믿을만한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누구에게도 통하는 믿을만한 보편타당한 사실과 연관된다
창세기 5장에 따르면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969세를 살았던 므드셀라도 결국은 죽었다. 이는 성경에 나왔으니까 기독교인에게만 믿을만한 사실이고 비기독교인에게는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누구나 시인하는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그런데 성경은 더 나아가 믿을만한 영원히 변하지 않을 사실로서 죽음이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진리를 선포한다. 이 점에 있어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갈린다.
기독교인은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영원히 변하지않는 사실로서의 진리로 믿는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사실로서의 진리인가? 성경은 모든 것은 관계로서 맺어져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비기독교인들도 시인한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업주와 세일즈 맨, 목사와 성도, 주인과 종업원 이렇게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계가 바로 맺어갈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이다. 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사실로서의 진리이다. 성경은 이렇게 누구에게 통하는 보편타당한 사실을 진리로서 선포한다.
단지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갈리는 것은 관계의 우선순위이다. 비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고 기독교인에게는 하나님과 관계를 가장 중요한 그래서 어떤 관계보다도 우선적으로 맺어야만 하는 관계로 본다는 것이다.
진리는 생명에 이르는 길로서의 믿을만한 사실과 연관된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장소나 시대에 상관없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믿을만한 사실이 진리이다
그런데 진리를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는 언제나 살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악으로 곧 죽는 길로 인도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사단이 최초의 인간들에게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라는 유혹은 인간을 죽음의 길로 결국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각자 자기 인생을 주인행세하며 살아가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한다. 여기에 참 진리에 대한 힌트가 있다. 진리란 길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곧 진리란 생명 곧 살리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진리라고 말씀한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를 그냥 지나친다면 그것은 진리의 삶이 아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은 살리고자 함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사람을 살리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행하셨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살려도 결국 인간의 육신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길을 예수님은 진리로서 선포하신다.
성경 전체가 영원히 사는 길을 선포한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모든 만물의 주인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때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믿을만한 사실로서 선포한다.
그 생명으로의 길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영원히 사는 길 곧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는 진리라고 선포하신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즉답을 하지 않으시고 대신 자신이 걸어가는 길을 보라고 암묵적으로 전한다.
예수님은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다. 그리고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 이것이 영원히 살게 하는 진리라고 그의 삶을 통해 선포하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인간 구원의 길을 여셨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구원 주가 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라고 선포하신다. 그렇게 예수님은 창조주 인간을 하나님에게 인도하는 생명에의 길로서의 진리가 되신다.
예승장로교회[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