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굿나잇 키스 vs 굿바이 키스
“왜! 나도 교회 가면 안되냐?”
평생을 신앙으로 살아오던 한 어머니가 4명의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됐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쳐다보며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 아들에게는 차례로 “얘야,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라고 했는데 막내아들 앤디에게 만은 "앤디야,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 했다.
그러자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게하고 나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는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말을 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제 너와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구나.
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여러 번 간곡히 가르쳤지만 너는 끝내 거절하고 말았어. 다시는 천국에서 너를 만날 수 없기에 너와는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이 유언 같은 말은 결국 앤디로 하여금 굿나잇 키스를 하도록 만들었고,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했다.
나의 가슴 아픈 사연
지금에야 더 없이 행복한 사연으로 기억 되지만, 20여 년 전 그 당시는 나에게 참으로 가슴 저리고 아픈 사연이었다.
평생 하나님을 모르고 부인하다가 폐암 말기 시한부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소천하신 내 아버지는 시골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강직한 성격대로 군인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두만강 까지 진격하여 두 고지나 점령하게 되어 퍼플무공훈장을 받으셨다.
그러나 1.4 후퇴 당시 포격으로 부상당하여 고향집으로 돌아와 정리하고, 도시로 나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인근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큰 쌀가게를 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쌀을 샀던 것이 생각난다.
늘 . . . 동네 사람들로 붐비던 가게에서는 박하사탕이며 군것질거리가 풍성했다. 나는 유난히 아버지를 잘 따르고, 아버지도 형제들 중 나를 가장 사랑했던것 같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누런 쌀가마니를 자전거에 싣고 배달 가는 아버지를 항상 따라 다녔다. 그런 아버지는, 하나님도 모르고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또 이웃들을 도우며 사셨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직하고 거짓을 싫어 하는 성품이라서 때로는 "융통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하여 많은 재산을 잃기도 하셨다.
남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어라!
하나님을 모르지만 열심히 가족들을 위해 또 이웃들을 도우며 사시는 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남에게 무엇을 주려거든 쓰다 남은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주지 말고, 내가 제일 아끼는 것, 제일 좋다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주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훈 하셨다.
비록,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나 그의 삶은, 늘...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그 일들이 언젠가 주님을 영접할 기초를 쌓은 것이 아닐까?
한번은 싱싱한 딸기를 사오셨는데 제일 좋은 것을 고르더니 좋은 그릇에 담아 옆집에 갖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더라, 그때 얼마나 야속한지? “이담에 커서 제일 좋은 것은 내가 먹어야지!“하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이 쌀 사러오면 됫박을 깍지 않고 수북히 담아주고, 또 한 주먹 담아 주신다. 그 당시 가난한 시절 이웃들에게는 늘 부러운 대상 이었는데, 우리 집에는 항상 쌀로 튀긴 뻥튀기가 간식으로 풍성했다.
하나님이 개입하는 사건, 폐암말기
그렇게 한 평생을 사시던 아버지에게 드디어 하나님이 개입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폐암말기 2달 시한부 . . . .
아무증세도 없는 터라 우리는 병명을 알리지 않았고, 의사는 치료약이라면서 영양제만 듬뿍 주셨다. 그러면 나을 거라고 믿고 열심히 약?을 드셨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주님께 기도로 매달렸다. “육신은 죽어도 영은 주님나라에 가게해달라고” 그러나 주님은 벌써 계획하신대로 불신지옥상태의 아버지를 주님나라로 옮길 채비를 하고 계셨다.
황 급히 집에 도착한 날이 토요일 이었다. 이번기회 아니면 전도할 방법도, 기회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초조한 나는 그냥 말씀 드렸다.
“아버지... 있잖아요! 만약에 지옥과 천국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만약 하나님 믿었다가 지옥과 천국이 없다면 그만이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았는데 지옥과 천국이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묵묵히 나를 쳐다보고만 계셨다.
그리고 주일아침 일어나보니 아버지는 새 양복을 입고 외출할 채비를 하고 계신 거 아닌가? 교회를 가실 분이 아닌데 하면서.. “아버지 어딜 가시려고요?” 했더니, “왜! 나도 교회 가면 안되냐?”라고 하시는데, 순간 난 온 몸이 감전된 것처럼 굳었다.
그 후 아버지의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복음 전도자”의 길로 몰아넣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이 땅에서 아버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회에 출석하여 함께 예배를 드렸다. 조만간 이 땅에서 육신으로 이별하는데 그 영혼을 주님 곁으로 간다하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여 마냥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떠나는 날이 되어 까만 가죽성경을 드리고 마태복음을 꼭 읽으시라고 당부하였다.
하나님의 품으로...
약 두 달이 거의 될 무렵... 중환자실에 혼수상태로 입원 했다는 연락이 왔다. 도착하니 벌써 임종예배를 드리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아버지 60 평생 그렇게 밝고, 환하고, 편안한 얼굴모습을 처음 보았다. 마치 얼굴에 빛이 나듯이 너무나 해 맑은 모습! 그런데, 호흡이 거의 정지 상태 인데도 맥박은 뛰고 있었다.
그때... 우리가 손을 잡고 기도하면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손을 잡고 기도를 드리는데, 왠일인지... 용서하지 못한 사람과, 사건들을 부디 용서할것을 간구하는데,,, 혼수상태인 아버지 두눈에 눈물이 흘러 떨어져 내 팔에 적시었다. 지금까지 아버지를 위해 간절히 눈물로 기도 했던, 그리고 기도하는 내 눈물과 범벅이 되어...아리고 슬펐던 순간들이 엄청난 기쁨으로 다가왔다. "아! 주님께서 원하시는 용서는 바로 이런 간절함 이었구나"라고 하는 순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는 순간 기계 스크린에 맥박이 정지되고, 아버지는 사연 많은 이 땅의 육신을 벗고 눈물도, 고통도 없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웠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가족을 돌아 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니라.” (디모데전서 5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