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느끼며 지옥에 가란 말인가?
인간의 행동이나 정신 질환을 치료할 때 흔히 자존감을 살리는 치료법을 쓴다. 이 치료법은 교육 기관, 심리 상담 기관, 인간 동기 부여 산업, 광고업계, 심지어 교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나는 이 치료법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굴라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른바 정신 건강의 근원이 된다는 자존감 살리기에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음은 편지 내용이다.
아굴라 귀하
1.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정신 건강의 근원이 되는 자존감 살리기에 이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문장의 핵심은 ‘정신 건강의 근원’에 있습니다.
사랑받는 것은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고, 더러는 사랑을 받을 만하다든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든가, 하나님께서는 쓰레기 같은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정신 건강이 좋아진다는 표현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 표현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실체와 영광, 놀라움, 능력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사랑할 이들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어 키우시는 분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하기 때문에 개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주고 우리로 당신을 보게 하고 함께하게 하고 영원토록 함께 즐기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가지고 내 자아를 행복하게 한다거나, 내 자아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2. 그러나 정신 건강의 근원을 자존감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은혜를 은혜로 감사한다는 전제 아래, 하나님의 은혜에 다소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가치를 첨가해 해석하는 것을 굳이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자존감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인 자(自)는 문제를 성경 밖으로 끌어내기 때문에 거부감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공중에 나는 새들보다 더 귀중한 존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6).
나는 이 말씀을 인간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인간만이 그분의 가치와 영광을 다른 피조물들에게 거울처럼 반영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귀중히 모시며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타고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3. 우리는 완전해져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둘 수 있습니까? 문제는 완전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누가 완전하게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살전 5:23). 완전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능력과 순전함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온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26).
4. 누군가 스스로를 실패자요 쓰레기 같다고 느낄 때 그에게 “당신의 자아는 매우 위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까?
우선 자아의 가치라는 단어는 너무 심리학적이고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담고 있어서, 하나님 중심의 말이 주는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이 잘 지적했듯이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의 관계를 파괴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낮추거나, 불안하게 만들었거나, 맹인이 되게 했거나, 키가 작게 했거나, 통통하게 했거나, 평범하게 했거나, 운동 신경이 없게 만드신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까?
덮어놓고 자존감 치료라는 곳으로 도피해서 쓰레기 같은 사람에게 당신은 쓰레기가 아니고 전혀 다른 존재라고 안심시킨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환자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함으로써 정신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마땅히 할 일을 하려면 그분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과 부요함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특권의 가치가 엄청나기 때문에, 그 엄청난 금액 때문에,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비전을 그저 자아의 가치를 조명하는 것으로 끝나게 한다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을 귀중하게 알고 나를 통해 하나님을 합당하게 반영할 때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내 속에서 그분의 진정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나와 함께 그분을 즐거워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내 생각의 핵심을 보고 똑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핵심은 정신 건강의 근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고 무한한 은혜로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존심을 정신 건강의 근원으로 볼 때 이런 진리는 실종됩니다. 여전히 지옥으로 가는 이들에게 잠깐의 행복감만 느끼게 하는 것이 세상의 치료법인데, 여기에 복음적 요소를 약간 가미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맛보는 묵상 / 존 파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