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행복
새벽예배를 가던 어느 날, 집에서부터 교회까지 가는 길에 거쳐야 하는 신호등을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모두 열일곱 개.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신호등의 숫자를 세게 된 계기는 한참을 가는 동안 한 번도 신호등 때문에 멈춘 적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선명한 푸른 빛은 운전자의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째 푸른 신호등을 통과하며 달리자 욕심이 생겼습니다. 신호등이 모두 몇 개일까. 제발 교회 도착할 때까지 푸른 신호등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욕심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멀리서 비치는 푸른 빛을 보고 힘껏 달려갔는데 내 차가 가까워지자 이제까지와는 반대로 빨간불로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무정차질주의 기록이 깨어졌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순간의 아쉬움은 신호체계에 대한 미움으로까지 발전했습니다. 저것만 없었다면 오늘은 만사형통이었을 텐데 하는 주술적인 생각까지 잠시마나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가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일에 불필요한 승부근성을 발휘할 때가 있나 봅니다.
순간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서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생의 가치관 또는 삶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에 자신은 “네가 뭔데?” 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억울한 일도 없고 원망스런 일도 없다고 했습니다.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감사할 일이 더 많아진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일들이 원래부터 있었던 당연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통해 나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은혜요 배려임을 생각하면서 사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 나를 멈추게 한 빨간 신호등에 대한 서운함도 멈추었습니다. 대신 지금까지 푸른 신호등만을 만나 달려온 길이 특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미 경험한 것만으로도 기분좋을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남은 거리를 신호대기 없이 달려가야만 한다는 불필요한 긴장감과 강박관념도 사라졌습니다. 운전을 즐기게 된 것은 당연하구요.
그날 열일곱 개의 신호등 중에서 두 개의 신호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푸른 빛이었습니다. 때문에 다른 날보다 빨리 도착했고 기분도 상쾌했습니다. 그날처럼 내 인생에도 푸른 신호등이 늘 켜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 보았습니다. 예외였던 두 번은 속도를 내느라 잊고 있던 주변을 돌아 보는 기회로 선용했습니다. 멈춤의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남은 인생길도 그런 자세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