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Desiring the better home)

by wgm posted Oct 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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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26일 주일 예배 (JSTV 글로벌교회)

 금주의 말씀 : 윤사무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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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Desiring the better home)

본문: 히브리서 11:13~16


주 제: 우리는 천국으로 가는 순례자들이다. 본향을 사모하며 어려움을 이기자

교 독 문: 53번(계 21장), 예배의 부름: 롬 11:33-36, 예전색: 초록색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13~16절입니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잠시 살아가고 있는 정거장과 같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자와도 같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정의하기를 “(여러 지방에) 흩어진 나그네(the strangers scattered),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 (벧전 1:1-2)이라고 합니다. 야고보 장로는 인생을 잠간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라고 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14) 했습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레위기 25: 23)고 합니다.

히틀러를 반항하다가 순교한 본 훼퍼 목사는 말하기를 "한 날은 다른 날에 고하고  나의 인생은 위대한 영원으로 향하는 여로  아! 아름다와라 영원이여. 내 영혼아 영원에 깃드릴지어다

나의 고향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니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기에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없지요.

그래서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요. 슬픔도 기쁨도 괴로움도 다 지나가는 손님들이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고향을 떠나 주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나아갔습니다.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으로 갈 때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본향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은 믿음의 발걸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은 임시 거처지인 장막입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는 순간 우리는 영원의 장막을 입습니다(고후 5:1-7)

본문말씀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하나님께서 땅을 기업으로 주실 줄 믿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 땅에 대한 약속을 하나님께서 거듭 확인하십니다. 롯이 분가하여 나간 후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 14-17)

또한 창 15장에 보니 다시 한번 확인 하십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창 15:7)하니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질문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창 15:9) 그래서 아브람은 그 세 마리의 짐승의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니,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 쫓아내 버렸습니다. 해가 서산으로 지는 즈음에 아브람은 깊은 잠을 자다가 깨어 보니 사방이 캄캄해지는데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후손이 이집트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동안 괴로움을 당하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게 됨을 알려주십니다. 그의 후손이 4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와서 이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창 15: 13-21) 이 언약을 설명하시는데 연기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당시 쪼갠 짐승 사이로 지나면서 언약을 체결했는데(렘 34: 18-19), 하나님의 은총과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지나감으로 이 땅을 아브라함 후손에게 주실 것을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할례를 제정하시면서 언약하시기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 17:8)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기대와는 달리 그가 생존할 동안 땅 한 평도 기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사라가 127세 향년으로 죽자 매장지가 없어서 헷 족속으로부터 막벨라 동굴을 은 400세겔 고가를 주고 사야했습니다. 당시 건장한 남자 노예가 30세겔이었으니 매우 비싼 값입니다.(창 23:16) 이삭은 그랄 지방에서 우거할 때 우물을 세 개(에섹, 싯나, 르호봇)나 팠지만 결국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브엘세바로 이주하여 거했습니다(창 26:18-23).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세겜 성 앞에 장막을 치고 그 장막 친 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은 100개로 구입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했습니다(창 33:18-20).

벧엘로 올라가 가정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나타나 약속하시기를 자손의 약속과 더불어 땅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창 35:12)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을 지키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인도하고 나서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두고서 행한 마지막 설교에서 그 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8장 7-9절에서,

(1) 아름다운 땅 - 시내, 분천,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 및 꿀의 소산지요, 먹는데 부족함이 없는 땅, 옥토

(2) 철과 구리가 나는 땅

또한 신명기 11:8-24에 보니

(1) 약속의 땅

(2)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오래 살 것임

(3)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는 땅

(4)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 -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항상 함께 하심

(5)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적당한 때에 내리는 땅

(6) 풍성한 곡식과 과일, 기름을 내는 땅

(7) 아름다운 땅

(8)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지중해(대해)까지, 광야에서 레바논까지의 땅

여호수아의 지도력으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시작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지경을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 때에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여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에 보면 다윗의 별 상하로 푸른 줄이 그어져 있는데, 나일 강과 유브라데스 강이라고 합니다. 다윗 때에 점령한 최대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오늘날 이스라엘의 목표인 것입니다. 영토 분쟁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이 발생하니 그들은 금권, 실력, 문화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이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본향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아브라함은 살아 있을 동안에는 이런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지만 그는 믿음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본향)을 바랐음이니라” (히 11:9-10)

아브라함이 100세때 이삭을 낳았고 그후 75년을 더 살았습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여 60세(이때 아브라함은 160세)에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15세 되던 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으니 이때 야곱의 나이는 120세었으며, 이집트로 이민 갈 때가 130세였습니다(거기서 17년을 살다; 요셉이 17세때 이집트로 팔려감). 이삭은 손자 요셉이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에도 살아계셨습니다. 아브라함 가족 3대가 살아갈 동안 나그네의 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단지 돈으로 주고 산 세겜 근처의 땅과 헤브론 땅만큼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헤브론은 사라를 시초로 아브라함, 그후 이삭과 리브가, 그후 야곱과 레아의 묘지가 되어, 사실 이스라엘 자손의 고향이 되었던 것입니다. 출애굽한 저들이 돌아가고자 한 곳이 바로 이 헤브론(기럇아르바) 여서,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군 12명이 파견되어 이곳 헤브론 지역을 40일 정탐하고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 땅은 훗날 가나안 정복시 유다지파의 갈렙과 그 후손이 차지하게 됩니다.

계속 히브리서 11장 13절 이하를 읽습니다. “이 사람들(아브라함+사라+이삭)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정착 생활할 때 바알종교가 퍼졌고 타락하였으나, 디아스포라 시절에 순수한 믿음이 되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삶도 나그네의 삶 자체였고, 바울의 선교여행도 나그네의 모습이었습니다. 나그네에 대한 배려를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나그네를 잘 대접했습니다(창 18장). 극진히 대접을 해 드렸는데 알고 보니 천사들이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고 언급한 것이 아브라함의 경우를 말합니다. 롯도 자기 집을 방문한 두 천사들을 잘 대접하였습니다(창 19장).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Distributing to the necessity of saints; given to hospitality. 롬 12:13)

심지어 추수를 할 때에 나그네를 위해 일부러 남겨 두라고 율법은 가르치십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 23:22) 이런 정신으로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충분히 주울 수 있었습니다(룻 2장).

나그네의 특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한한 미래를 바라보며 진취적인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또한 더 나은 것을 향하여 최선을 다합니다. 정착생활인보다 나그네는 믿음에 더욱 의존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일정한 주소가 없습니다. 예금통장도 만들지 못합니다. 의식주 해결이 불투명합니다.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안전문제가 보장되어지지 않습니다. 의무도 없지만 권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속감이 없습니다. 부동산 투기에도 관심이 없고 세금문제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기근과 가뭄도 걱정이 없음은 또 다른 지역으로 가버리면 됩니다. 나그네는 개성이 강합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의적이며 지도력이 강합니다. 생활력도 강합니다. 순발력이 있고 추진력도 강합니다. 견문이 넓어 생각하는 폭이 큽니다. 보다 성숙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나그네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하여 멋진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십시다. 해외에 사는 동포들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 외로움, 소외감,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신앙으로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꿔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닌 재물, 재산, 명예, 권력, 그 무엇 하나 영구적인 것이 없습니다. 임시로 맡은 것이고 관리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일 뿐이고 베이비시터이며 임시 고용직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영구하고 불변하며 진정 가치 있는 본향을 향하여 꾸준히 나아갑시다.

거지 나사로처럼 이 세상에 가진 것은 없었지만 천국에 들어가니 모든 것을 소유한 자, 진정 소유한 자, 영원히 가진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 기준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바로 본향의 것에 두고 나아갑시다. 모세는 화려한 이집트 궁전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나그네의 삶을 택할 때는 불안했고 포기했고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본향이 있음을 알고부터 그의 나머지 인생은 보람있고 가치있고 힘차게 살았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 24-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그네와, 아무런 목표 없이 그냥 살아가는 나그네의 삶은 틀립니다. 우리는 분명한 본향을 바라보며 나아갑시다.

잠시 죄악의 낙보다는 영원한 기쁨을 위해 잠시 고난의 십자가를 택합시다. 복음을 전하러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 어디나 달려가서 사명을 감당합시다. 좁은 문을 택하고 반석을 택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607장(통 292장)

1. 내 본향 가는 길 보이도다 인생의 갈 길을 다 달리고

땅 위의 수고를 그치라 하시니 내 앞에 남은 일 오직 저길

2. 주 예수 예비한 저 새 집은 영원히 영원히 빛나는 길

거기서 성도들 즐거운 노래로 사랑의 구주를 길이 찬송

3. 평생에 행한 일 돌아보니 못 다한 일 많아 부끄럽네

아버지 사랑이 날 용납하시고 생명의 면류관 주시리라


“돌아오는 계절”

아프고 시려도

시간은 간다

오늘은 내일에게 고하고

어제는 오늘에게 머리 숙인다

그리웁고 애쟌해도

시간은 간다

깊은 강물속에서 숨을 못쉬고 있어도

강물속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슬프고 안타까와도

시간은 간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 눈물비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흐른다

쉬임 없이 흐르는 시간속에서

모든 아픔을 긁어서

미래의 희망같은 곳에

데려다 줄것을

시간에게 부탁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집착보다 더 나은 본향 천국을 늘 사모하며 그리고 나아갑시다. 더 좋은 비전과 꿈이 실현됩니다.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망을 가진 자의 삶은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 믿음의 선조처럼 힘차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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