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알아두면 좋은 성경용어 풀이 27
김성철 목사
이분설과 삼분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인간은 영(혼)과 육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영과 혼 그리고 육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이러한 논란이 정말 중요한가? 어떤 이들은 아예 이러한 분리 자체를 거부하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영이란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하나님은 영이다라고 했을 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실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살아계시는 것은 맞는데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또 하나의 진실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분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실제로 성경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선포한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영적인 부분이 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육적인 부분이 있어서 사지백체 오장육부를 지닌다.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생기면 의학의 수준으로 병을 짚어보고 치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생각이나 정신 또는 마음등이다. 실제로 인간의 육을 움직어가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성경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히브리서11:3)고 선언한다. 이 말은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의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는 이 세상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이 보이지 않는 총체를 영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이 보이지 않는 부분 중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부분만을 떼어서 영이라 하고 그 외에는 혼이라고 보긴 한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영과 혼으로 나누어 보게 되면 그는 삼분론자가 되고 영과 혼을 하나로 보면 이분론자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때론 내 마음을 나도 몰라 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를 않아라고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 먹은대로 할거야 한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은 움직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을 어떤 자는 영과 혼이 혼용하여 쓰는 것이라고도 하고 어떤 자는 영과 혼의 기능이 다르다고 말하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는 부분을 움직인다는 것도 분명하다.
짐승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짐승은 인간이 가지는 생각 좀 더 고상하게 말하면 정신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는 것처럼 보이긴하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짐승은 언제나 본능에 충실하다. 그래서 짐승은 과학적 관찰이 용이하다.
짐승은 이러하면 저러할 것이라는 판단이 거의 참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같은 실험을 놓고도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다. 사람은 백 사람이면 백이 다 다르다고 할 만큼 생각이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단지 대체적으로 그러하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본능적인 것을 다스릴 수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본능에 충실한 자, 감정대로만 움직이는 자는 짐승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절대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 짐승이 인간과 닮은꼴이 있다고는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짐승과 인간은 처음부터 다르게 지으셨다. 때리면 사람이나 짐승은 아프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면 안된다.
간혹 영과 혼을 분리해서 말하는 분들 중에 혼적인 부분은 짐승에게도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전혀 아니다. 사람이 예배할 때 개가 조용하게 지켜보며 아멘하면 끄르릉하고 화답할 때도 있다. 이는 연습이다. 훈련의 결과일 뿐이다. 훈련이 아니더라도 예배할 때 멍멍하면 혼이 났기에 본능적으로 그러할 뿐이다.
원숭이가 글자를 볼 줄 안다고 사람과 공유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훈련의 결과 일 뿐이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자신이 살 집을 개발해서 발전시켜 온 적이 없다. 물론 짐승도 생각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그 생각조차도 본능에 충실하다.
사람을 제외하면 짐승은 배부르면 중지한다. 그리고 타 짐승이 먹는 것을 지켜보기도 한다. 물론 남은 음식을 저장해 놓는 짐승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본능적이다. 생각조차도 본능에 충실한 뿐이다.
분리 그러나 일체, 전인적 인간
보이는 부분(육)과 보이지 않는 부분(영 또는 영과 혼)이 있다. 이를 2부부으로 나누어 보든지 3부분으로 나누어 보든지 상관없다. 더 나아가 4부분, 5부분으로 나누어 보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 나누어진 부분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나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그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전인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삼분론자들은 영은 하나님의 것, 육은 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혼이 영으로 기울이는가, 육에 기울어져 있는냐 해서 혼의 기능에 따라 영적인 사람 육적인 사람을 나누기도 하는데, 이것이 문제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보이는 부분이 육이나, 보이지 않는 부분 그것이 영이든지 혼이든지 무엇이 되었든지 구원받았고 모두가 일체가 되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영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나의 육도 거룩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육신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 육의 지체를 죽여야 한다. 육의 지체를 죽이라고 하니 나의 육신에게 고통을 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육을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부분 곧 생각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등을 죽이라는 이야기다.(골로새서 3:5)
인간은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나누어져 있지만 언제나 일체가 움직인다. 인간은 전인적으로 타락했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전인적으로 구원받았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인간의 모든 부분 그것이 영이든지 혼이든지 육이든지 오장육부 사지백체 모두가 한 몸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된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은 하나니께 있으되 육신은 여전히 세상적이더라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부분인 영적이 부분이 바로 서면 보이는 부분이 육도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나타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임함이니 보이지 않는 부분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성경은 영이라는 말로 총칭하여 부르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보이는 흙에서 온 육은 죽어 무덤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인 영적 실체는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창세기 2:7) 죽으면 하나님께로 간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던 그 모습으로 돌아간다. 무덤에 있던 육이 부활한다. 그리고 영과 육이 다시 하나가 된다. 그렇게 회복된 창조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승장로교회 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