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진 목사 "미지근한 신앙, 뜨거운 신앙
연탄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이 쓴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에게는 뜨거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있다. 누구에게나 삶을 뜨겁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대충대충 살다가 의미 없이 사라지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그러한 뜨거움에 대한 간절함이 안도현 시인의 시 속에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왕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면 뜨뜻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보다는 열정적이고 뜨거운 신앙을 갖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아쉬움을 갖는 것은 자신들의 신앙이 그렇게 뜨겁지 못하다는 점이다.
신이 나고 흥이 나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머니의 배 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소위 모태신앙인들은 항상 신앙이 타성에 젖은 것 같은 느낌을 느낄 때가 많아서, 좀 뜨거워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소아시아에 있었던 일곱 교회 가운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신앙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모습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는 말씀이다.(계 3장 16절) 이러한 주님의 경고는 단순히 라오디게아 교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나의 미지근한 신앙을 뜨거운 신앙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수많은 성도들이 뜨거운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문제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항상 외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나 보았다.
수년 전에 어떤 분이 우리 교회에 찾아왔다. 그분은 어떤 연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잠시 동안 신앙생활을 중단한 분이었다.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저런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이 있는지를 물었다.
제자훈련이 있는지, 새벽 기도회는 하는지, 금요 기도회는 하는지, 가족 수련회를 하는지, 부흥회 계획은 있는지 등등 마치 그 말만 들으면 모든 훈련과 집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려는 듯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분은 겨우 주일 예배만을 참석할 뿐이었다. 지속적으로 참여를 권유했지만, 그분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서 신앙이 크지 않는다고 늘 안타까워 했다.
놀랍게도 나는 종종 성도들로부터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을 듣는다. 물론 그분은 우리 교회에서 제공되는 여러 가지 평신도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나는 찬양에 뜨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성도들로부터 듣는다.
물론 그분은 예배 시작 때마다 함께 부르는 그 찬양의 시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예배가 시작되면 그때에서야 자리에 앉는다. 놀랍게도 나는 기도하는 일에 뜨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기도원에도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물론 그분은 주일 예배만 참석할 뿐, 수요 기도회, 금요 기도회, 새벽 기도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그분들이 소원을 말하는 것만 들으면 정말 이 세상 최고의 신앙인일 것만 같다. 하지만 펴놓은 멍석에는 올라오는 법이 없다.
연탄이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연탄은 그저 자신에게 있는 상황 속에서 불을 피웠을 뿐이다. 텔레비전에서 선전하는 신비한 건강식품을 구해 먹으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정성스럽게 마련한 밥을 때에 따라 적당하게 섭취하고 꾸준히 매일 매일 운동을 해야 건강해 진다. 고액의 족집게 과외를 받아야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공부해야 할 분량을 착실하게 공부해 나갈 때 실력이 느는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 매일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집회만이라도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커갈 수 있으며 뜨거워질 수 있다.
믿음이 뜨거워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모든 기회들을 다 흘려버리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 식어지는 것이다. 어느 식당에 쓰여 있는 말처럼, 어머니가 해주신 밥이 최고의 보약이다.
바쁘다고 밥 먹는 것을 거르거나 바쁘다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결국 몸이 망가지게 되어 있듯이, 이런 저런 핑계로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할 것이 아니다. 교회 내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집회들(금요 기도회,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구역예배)만이라도 제대로 참석해야 한다.
안도현의 다른 시 “반쯤 깨진 연탄”은 이렇게 노래한다.
“언젠가는 나도 활할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를 끝 닿는 데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 위에/ 지금은 인정머리 없이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래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아 발갛게 달아오르기를/ 나도 느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 깨어진 모습의 신앙처럼 보인다 해도 실망하지 말자. 우리가 온전히 열정적이 되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깨진 연탄재가 있어야 할 일상의 자리로 돌아가 불이 붙듯이, 신앙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