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속의 행복 [시편 136편 24~26절]
김학중 목사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항상 감사하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시편 136편은 감사의 시로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 시편은 “감사하라”로 시작하여 “감사하라”로 끝납니다. 오늘 시편기자의 감사고백을 통해 우리의 감사생활을 돌아보고, 남은 한 해가 감사로 충만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감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풍족해도 감사가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향기를 내는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대체 무엇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요? 좋은 것, 눈에 보이는 것, 육적인 것에만 감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좀 더 적극적인 감사를 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기자는 대적들로부터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면서 수많은 대적들을 만났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대적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모든 위험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시편기자는 감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의 자녀를 반드시 건져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우리들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홍수가 났을 때에, 하나님은 의로운 노아와 그 가족들은 건져 주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도 하나님은 롯과 그의 딸들은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형제들이 구덩이에 던졌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버린 요셉을 죽음에서 건지셨습니다. 구약의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이 늘 이방 민족에게 침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항상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모든 이스라엘 역사의 표본입니다.
올 한 해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이 구덩이에 빠지고 힘들었을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다양한 대적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방해자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서 그 건져주심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경쟁자들과 방해자들 속에서도 헤쳐 나가도록 매 순간 기가 막히게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우리를 악한 영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해야 합니다
25절을 보면,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기자는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초적인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거창하고 거대한 것으로부터 감사할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먹을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먹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우리의 입에서 입맛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 주신 것에 감사할 줄 알면 그 사람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대부분 무슨 음식을 먹을까, 무슨 옷을 입을까, 어디서 어떤 집에서 살까 등의 의식주 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도 이 일로 인해 때로는 걱정하고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가장 서럽고 두려운 것은 역시 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과 보호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의식주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식주 문제는 부모님이 다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심을 믿고, 세상 염려와 걱정 속에서 벗어나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빌립보서 4:6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먹는 문제로 고민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을 온전히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주심에 대해 감사함에 있어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올 때, 그들이 먹었던 양식은 만나입니다. 그런데 만나의 특징은 부지런해야 먹을 수 있고,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나는 해 뜨기 전에 내려서 해가 뜨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게을러 그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은 만나를 거두지 못합니다. 또한 만나는 저장이 불가능합니다. 하루가 지나면 구더기가 나고 벌레가 생겨서 먹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의 법칙을 알았습니다. 게으른 사람들과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감사할 수 없고, 부지런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들은 욕심을 버리고,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일용할 약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의 감사입니다.
탐욕을 통해 얻어지는 감사, 게으름 가운데 횡재함으로 드리는 감사는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감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땀의 댓가를 통한 감사입니다.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이 하루하루 주시는 생명의 양식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사람이 결국 성공하고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소망이 있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26절을 보면,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은 늘 절망 중에 땅을 보며 살아가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이 아닌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희망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소망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12월에도 동일하게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없으면 그 인생은 불행해집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소망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소망이 없으면, 그 인생은 허망한 인생이 되어 쾌락이나 폭력에 몸을 담다가 파멸하게 됩니다. 음란과 쾌락과 폭력이 있는 곳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그들에게 과연 소망이 있는가. 소망이 없는 자가 쾌락과 폭력에 빠집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되고야 맙니다. 소망은 사명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늘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한 우리 미래는 절대로 어둡지 않습니다. 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절망 속에 넘어지지 말고, 새로운 소망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입니다. 어제도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내일도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영원히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대적으로부터 건져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는 마음이 넘칠 때, 얼굴이 빛나고 세상의 빛이 되며 확신 있게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꿈의교회 김학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