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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작물(GMO·지엠오)은 두 얼굴을 가졌다.

천사의 양식인가, 악마의 밑밥인가?


유전자변형작물(GMO·이하 지엠오)은 두 얼굴을 가졌다. ‘꿈의 식량’과 ‘재앙의 먹거리’ 중 어느 쪽이 진짜 얼굴인지는 뜨거운 논란거리다. 지난 20여년 동안 지엠오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그런 만큼이나 지엠오를 둘러싼 논란과 법적 분쟁, 홍보와 로비도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창이냐 방패냐

유럽연합(EU)과 미국은 현재 진행중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농업 부문, 특히 지엠오 작물의 시장 개방 여부를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금까지 지엠오 농산물의 역내 재배를 금지하고 가공식품 승인에도 매우 엄격한 규제기준을 유지해왔다. 반면, 지엠오 작물의 최대 생산국인 미국은 이 규제를 무력화할 경우 막대한 이익이 보장된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유럽연합 차원에서 지엠오 작물의 재배를 허용하더라도 각국이 자율적으로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인정하기로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엠오 기업들이 개별 회원국과 직접 협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기각됐다. 엇갈리는 이해관계와 미국의 압력을 절묘하게 버무린 묘책이었다.


앞서 지난 6월 톰 빌색 미국 농무장관이 “과학은 보편적 언어다. 협상 내용이 어떻게 타결되든 심오한 과학과 부합돼야 한다”고 했던 압박성 발언은 빛이 바랬다. 유럽 최대 농산물 생산국인 프랑스와 독일이 지엠오 작물 전면 개방에 완강히 반대하는 반면, 영국은 지엠오 농산물 재배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지엠오 농산물에 대한 찬반양론은 접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민감하고 발화성도 크다. 캐나다의 유명 포크록 뮤지션이자 환경운동가인 닐 영(68)은 지난달 18일 세계적인 식음료 체인매장인 스타벅스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영은 팬들에게도 스타벅스에 압력을 행사해줄 것을 호소했다. 앞서 지난 5월 미국에선 최초로 버몬트 주의회가 지엠오 식품 의무표시제 법안을 통과시키자 미국식품가공협회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영의 주장에 따르면 “그 소송 배후의 그림자에 스타벅스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곧바로 성명을 내어 “우리는 지엠오 표시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고 돈도 대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8개월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사태’에 지엠오 산업의 최선두 업체인 몬샌토가 다른 목적으로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지난 5월 독일 일간 <빌트>는 독일 연방정보국(BND)을 인용해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진압하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미국의 민간 용병업체인 ‘아카데미’ 소속 정예요원 400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전신인 블랙워터를 수년 전 몬샌토가 사실상 인수했다는 정황과 보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2010년 4월 미국 시사주간 <네이션>이 “블랙워터가 몬샌토에 반대하는 활동가 그룹에 잠입하는 공작원을 제공해주는 방식으로 몬샌토의 ‘정보기구’가 되려 한다”고 폭로한 게 시초다.


미국의 민간 사회·경제·환경정책 싱크탱크인 오클랜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부채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에 17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는 대가로 민간 부문에 지엠오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것을 압박했으며, 이에 미국의 지엠오 기업들이 환호했다”는 뒷이야기를 공개한 바 있다.


세계 GMO 작물 시장 95% 장악, EU 압박하며 규제 무력화 시도, 우크라 사태 개입 우회 전략도

재배면적 17년 만에 100배 증가, 인도 합법화 뒤 농민 자살 급증, 한국은 일본 이어 세계 2위 수입국


몬샌토 독점 아래 쑥쑥 크는 지엠오 시장

지엠오 농산물은 1996년 미국 기업 몬샌토가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든 대두(콩)를 처음 상용화한 이래, 17년 연속 재배면적과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농업생명공학응용국제서비스(ISAAA)의 최신 보고서 <상용화한 생명공학/유전자변형작물 글로벌 현황: 2013>을 보면, 세계 지엠오 작물 재배면적은 1996년 170만㏊(헥타르)에서 10년 만인 2006년 1억㏊를 넘어섰고, 지난해엔 27개국 1억7530만㏊에 이른다. 지엠오 작물의 영토가 17년 만에 100배나 넓어진 것이다. 농업생명공학응용국제서비스는 전세계 지엠오 작물 생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비영리 국제단체다.


현재 지구촌에선 콩·목화·옥수수·카놀라(유채)를 비롯해 18개 작물(108개 품목)이 지엠오 안전성 승인을 받아 상업적으로 재배되고 있다. 상용화 첫해인 1996년 당시 9300만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시장 규모가 지난해엔 156억달러(약 17조2600억원)를 돌파했다. 17년 새 167배나 커졌다.


지엠오 업계는 농산물에 외부 유전자를 끼워넣고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초제 내성, 해충 저항성, 가뭄 저항성을 키우고, 알곡의 크기와 생산량도 끌어올린다. 농업생명공학응용국제서비스는 “모험을 싫어하고 위험 기피 성향이 강한 농민들이 농업생명공학에 믿음을 갖는 주요한 이유는 지엠오 작물이 지속가능하며 사회적, 경제적, 환경적인 면에서 높은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계 지엠오 시장은 몬샌토의 안마당이기도 하다. 몬샌토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60여개국에 지사 또는 현지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와 앞선 기술력, 공격적 마케팅으로 세계 종자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148억달러로, 금액 기준으로 보면 세계 지엠오 작물 시장의 95%를 차지한다. 몬샌토는 지엠오 작물 개발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세계 인구 증가 등에 따른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 개선’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경제적 관점에서만 보면 지엠오 산업과 시장은 몬샌토·듀폰·신젠타·다우 등 거대 다국적 지엠오 기업들에는 활짝 열린 ‘블루오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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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유전자변형작물(GMO) 반대 시위 중 한 어린이가 “우리는 과학실험 대상이 아니에요”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소송·회유·공작의 그림자

지엠오 업계의 화려한 홍보 뒤엔 지엠오 농산물의 부작용과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숨어 있다.

지엠오 목화 재배 1위국인 인도에선 지난 20년 새 무려 29만명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에 40명꼴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자살의 배경과 자살률의 증가세다. 인도의 다큐멘터리 작가인 알라카난다 나그는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인도에서 지엠오 작물 재배가 불법이었을 땐 지금처럼 농민 자살이 많지 않았는데, 합법화한(2002년) 뒤로 자살률이 확연히 가파르게 치솟았다”고 말했다. 


가난한 농부들이 풍작의 희망을 품고 빚을 내어 몬샌토 종자를 재배했는데,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 종자 가격이 오르면서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다는 얘기다. 이에 대한 몬샌토의 공식 입장은 “인도 농민들의 자살이 지엠오 목화 경작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지엠오 업체들은 마케팅 말고도 소송과 돈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지엠오 작물에 대한 반발과 거부감을 무력화하려 한다. 지난달 12일 몬샌토는 미국 북서부 지역 밀 재배 농민들과의 지엠오 작물 소송과 관련해 농장주들과 미국 밀조합 등에 모두 240만달러(약 27억원)를 지급하고 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오리건주의 한 밀 농장에서 미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유전자 변형’ 밀이 발견됐는데, 그 품종이 10여년 전 몬샌토가 시험 개발하다 중단한 것과 같다는 게 확인되면서 소송으로 번졌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즉각 미국산 밀 수입을 잠정중단하고, 유럽연합은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등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지엠오 농산물 수입국이다.


지엠오 농산물 반대론의 핵심은 인위적으로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고 재조합한 작물들이 생명의 안전성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생명윤리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암이나 유전질환과 같은 질병과 신체기능 이상을 유발하고, 생태계를 교란하며, 환경을 파괴할 것이란 우려가 깊다.


지엠오 농축산물이 식탁을 점령하는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아직은 판명나지 않았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엠오 업체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시장 논리나 개별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도 된다고 확신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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