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르포] 성경의 땅에 성탄은 없다
"웰컴, 살람 알레이꿈."
지난 9일(현지시간) 오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체크포인트(검문소) 직원은 영어와 아랍어 인사를 섞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양철과 나무로 만든 검문소는 수십개의 강철문과 방탄유리, M-16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가 경계를 하던 이스라엘 국경과는 대조적이었다. 평상복 차림의 PA 직원은 "가자에 와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없다"고 하자 싱긋 웃으며 아랍어 인사를 던졌다.
이곳 검문소를 통과하면 또 하나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1㎞쯤 더 들어가자 하마스 체크포인트가 나왔다.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집권당.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무장단체여서일까. 검문소 직원들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단단한 몸집에 짙은 검은색 수염을 기른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여권을 펼쳐보더니 곧이어 "웰컴" 했다. 드디어 가자로 '내려왔다'(행 8:26).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의 국제구호 단체인 월드디아코니아(WD·이사장 오정현 목사)는 이날 가자지구 지원을 위해 기독교인 가정을 먼저 찾았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식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마스 검문소에 마중 나온 사람은 가자침례교회 담임 한나 마헤르(35) 목사였다. 인사를 하며 내민 오른손엔 십자가 문양 문신이 있었다. 낡은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가자 시내 빈민가인 제툰 지역. 차창 너머로 보이는 가자는 우울했다. 회색 모래바람 속에 가랑비가 떨어졌다. 국경지대의 집들은 무너진 곳이 많았다. 건물마다 총탄 자국이 선명했다. 운전기사는 “1967년부터 생긴 흔적이에요” 했다.
오후 5시가 지나자 해가 졌다. 제한적인 전기 공급으로 시내는 암흑으로 변해 있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만 번쩍였다. 한 골목으로 접어들자 오른편으로 폭삭 주저앉은 집이 시커먼 괴물처럼 눈에 들어왔다.
마헤르 목사는 “지난여름 폭격당한 유일한 기독교인 가정”이라며 “그리스정교회 교인이었던 집주인은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은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가리지 않았다.
5분쯤 지나 도착한 집은 하페즈 아부 다와드(56)씨 가정이었다. 거실엔 다와드씨를 비롯해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벽 한쪽에 여성 사진이 보였다. “제 딸입니다.”
일주일 전 둘째 딸 매들린(18)이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곧 성탄절이었지만 이들은 중동 기독교 전통에 따라 40일을 애도기간으로 삼고 있었다. 매일 점심이면 교회 신자들이 와서 기도하고 식사를 같이한다고 했다. 가족들 모두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었다. 웃지 않았다. 다와드씨만 덤덤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만약 우리가 가자에 살지 않았다면 딸아이는 살아 있었을 거예요. 변변치 못한 이곳 의료시설로는 힘들었죠. 만약 이스라엘이나 유럽 쪽 병원이라도 빨리 갔었다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가자 주민들이 이스라엘로 가려면 35세 이상의 성인만 가능하다. 반드시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이스라엘 측에서 허가를 해줘야 한다. 가자지구와 외부 세계를 잇는 통로는 모두 세 곳이다. 북부의 에레츠와 남부의 케렘 샬롬, 라파 국경 검문소다. 라파는 현재 폐쇄돼 있으며 에레츠와 케렘 샬롬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출입이 어렵고 북서부 지중해는 이스라엘 해군이 봉쇄하고 있어 사실상 가자 주민들은 면적 360㎢의 ‘지붕 없는’ 감옥에 사는 셈이다.
다와드씨는 전쟁 이전까지 일을 했으나 이후 일터를 잃었다. 그의 아들이 지금은 택시 운전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여기는 4000년 전부터 구약의 땅이다. 그러나 다들 떠났고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내 딸이 죽었으니 한 명이 줄은 셈”이라며 “가자의 문제는 이·팔 문제가 아니라 중동 전체의 문제”라고 말했다.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스베로(52)씨 집. 아파트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스베로씨는 손전등을 직접 비추며 앞장섰고 7층까지 올랐다. 캄캄한 출입문에 손전등을 비추자 장미로 둥글게 만든 성탄 장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지구의 유일한 성탄 메시지처럼 보였다. 그의 아내 아멜(50)씨가 문을 열자 여자 아이들이 달덩이 같은 얼굴로 웃어보였다.
“우리 집 딸들이에요. 모두 7명이죠.” 7공주들은 밝았고 예뻤다. 큰딸 크리스티나(21)는 대학생이었다. 그녀는 홍차와 설탕을 내오며 “지난 전쟁에서 폭격 소리를 매일 들어야 했다. 위협과 공포가 우리를 에워쌌다”고 몸서리를 쳤다. 스베로씨는 “당시 전기와 물이 끊긴 게 제일 어려웠다”면서 “유엔과 NGO의 도움으로 촛불을 켜고 살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인 조안나(17)는 “위성 TV로 K팝과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다”며 “한국인을 직접 보게 돼 신기하다”고 말했다.
스베로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다 하마스에 일을 빼앗겼다. 그는 “하마스 집권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건강도 나빠진다”면서 “전쟁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수많은 NGO들이 왔으나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아내 아멜씨는 “가자를 떠나고 싶지만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이 더 어렵다”며 “우리는 희망이 없는 상태다. 내일 일을 알 수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들은 다가오는 성탄절 소원으로 자녀들의 안전과 일용할 양식의 공급을 꼽았다.
WD 방문팀은 다음날인 10일 집중 폭격을 당했던 자발리야 지역을 돌아봤다. 이스라엘 국경과 불과 2.5㎞ 마주한 이곳은 반경 2㎞ 지역이 초토화됐다. 이곳은 그동안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부터 숱하게 공격을 받은 곳이다. 폭격한 자리에 또다시 폭탄이 떨어지면서 건물은 무너지고 분해되면서 벽돌 잔해만 굴러다녔다. 폭격으로 쓰러진 건물 밑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놀이터 삼아 뛰어다녔다.
마헤르 목사는 “가자가 성경의 도시이지만 성탄을 찾을 수 없는 곳이 됐다”며 “평화의 왕이신 주님이 이 땅을 통치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