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님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알렸을까?
메시아의 탄생 소식이 제일 먼저 전해진 것은 한 밤 중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였다. 이러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장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과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것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많지 않다면, 아마도 예수님의 탄생은 12월 추운 겨울철이라기보다는 봄철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서방교회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켜왔지만, 동방교회에서는 1월 6일이나 7일을 성탄절로 지켜왔는데, 사실 예수님의 실제 생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왜 메시아 탄생의 소식이 다른 사람들이 아닌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전해지게 되었을까? 종종 어떤 사람들은 누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목자들은 레갑 족속의 후예들이며 이 레갑 족속의 후예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이 놀라운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을 만한 영적인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이 그 설명의 핵심 요지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했던 참된 신앙인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런 특권을 누릴 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어서 도무지 수긍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놀랍게도 단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 잡혀가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 남게 된 사람들이 오직 “비천한 자”뿐이었다는 열왕기하 24:14뿐이다. 레갑 족속의 후예들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평생 동안 장막에 살라”고 했던 그들의 선조 요나단의 말(렘 35:6-7)에 따라 그 말에 순종하며 살았다. 이 예레미야서의 구절에 근거하여, 그들이 비천하고 가난하게 살면서 “목동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것으로 연결시키면서(여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 바로 이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은 남은 자들이었을 것이라고 연결시키고(여기에 또 한 번의 논리적 비약이 있다), 더 나아가 바로 이들의 후손이 베들레헴 근처의 목동들이었을 것이라고 연결 지은 것이다(여기에 다시 또 한 번의 논리적 비약이 있다). 설사 백번 양보해서 베들레헴 근처의 목동들이 레갑 족속의 후예들이었을 것이라고 치더라도, 당시 레갑족속의 후예들처럼 약 700년 정도 후의 후손들이 역시 똑같이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유대 왕들의 역사에서 보듯이 선한 왕 뒤에 나쁜 왕이 나오고, 나쁜 왕 뒤에 선한 왕이 나오는 것이 사람의 생리가 아니었던가? 선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선한 사람들이 나오라는 법이란 없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적 비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풍토가 결국 이단들을 양산하는 것에 일조하고 있음을 우리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레갑 족속은 장막에 거처했다는 것에서 그들은 목자였다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이것은 그들이 비천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이것은 다시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은 비천한 자들이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 다시 그들은 베들레헴 목자들의 선조였으며, 이것은 다시 그들은 신앙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근거 없는 해석이 받아들여지는 토양에서 이단들의 엉터리 논리들이 먹혀들어가는 성도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날 것이라는 구절(히 9:28)과 다른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왔다는 구절(계 7:2-3)을 연결시켜 그리스도가 동방에서 다시 오는 것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짓고(여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 그 동방이 한국이라고 우기면서(여기에도 논리적 비약이 있다), 한국의 아무개를 하나님으로 떠받드는(여기에 결정적 논리적 비약이 있다) 이단들이 있는데, 이런 엉터리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 찬 말들에 속아 넘어가는 성도들을 양산한 게 어쩌면 이런 엉터리 해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왜 이러한 엉터리 해석이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으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비성경적인 관점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사들이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의 소식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아무나 얻는 것이 아니라고 먼저 전제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과연 어떤 특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 역으로 추적한 것이다. 이것이 철저하게 비성경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자격이 없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엡 2:8-9)이라는 것을 종종 망각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난 이유는 알 수는 없다. 성경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천사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그 이유를 보다 더 합리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천사들은 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메시아 탄생의 소식은 문자 그대로 “온 백성에게 미치는” 좋은 소식이다. 몇몇 특권층들에게 주어지는 편파적인 좋은 소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이 아닌, 종교적 특권 지위를 가진 제사장이 아닌, 이름도 없고 평범한 목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였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인 추측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이 구원의 소식을 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들이 비록 밤중에 양을 들에서 지켜야 하는 피곤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들에게 찾아가서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 성탄의 계절에도 이 기쁜 소식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힘도 없고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게도 예수님은 기쁨의 소식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이국진 / 대구 남부교회 목사. 저서로 <예수는 있다>,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