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그분은 당신을 위해 죽었나요?

by kim posted Dec 2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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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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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당신을 위해 죽었나요?

 

예쁜 집시 소녀가 독일의 쉬타인베르크라는 유명한 화가의 눈에 들었다. 그 화가는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소녀는 화가의 아뜨리에로 왔다. 화실에 들어오자마자 한쪽 구석에 반쯤 그리다만 그림을 발견하였다. 저 사람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사람은 저렇게 벌을 받을 만큼 매우 악한 사람인 모양이죠?소녀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화가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다. 실제로는 매우 선한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분이며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는 죽으셨다고 얘기했다


그럼 그분은 선생님을 위해서 죽으셨나요?이 단순하고 순진한 소녀의 질문이 이 화가의 마음과 양심을 흔들어 놓았다. 화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 소녀가 던진 질문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압박했였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로 당신을 위해 죽으셨는가?


귀찮은 크리스마스?

성탄절에는 전 세계의 사람들이 즐거운 성탄인사를 하지만 정작 2000여 년 전 이스라엘 베들레헴땅의 초라한 구유에서 태어나신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있다. 왜 자신들이 이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자신들만의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그야말로 노는 날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한 하루, 하루 먹고사는 가난한 근로자의 부모는 크리스마스 선물 고를 준비의 부담으로 고민 하며, 깊은 한숨에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서글픈 현실의 성탄절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탄절은 분명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일 텐데 요즘엔 예수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크리스마스 트리, 선물, 산타 할아버지의 이미지로 가득 차게 퇴색 되어버렸다반면에 안정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똑똑한 사람들의 더 화려하게, 더 즐거움을 추구하는 파티. 그들은 올 한 해 동안 난 행복해요. 선한 삶을 살고 있죠.”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말은, 그저 그렇게 찌들린 삶의 연장선에서 하루 일을 쉬면? 또한 가게 문을 닫으면? 그에 대한 손익계산으로 우울하게 그리고 초조하게 귀찮아져버린 크리스마스가 되고 만다. 그리고 누가 태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쳐있는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고 밀린 잠을 푹 자며 본인을 격려하는 특별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각자 자신들 뿐이다. 여기에 아기 예수의 탄생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내년에 좀 더 잘 살아보자! 더 발전해보자!”는 식으로 자신에게 격려하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또한 옛날에는 아무런 부담 없이 누구나 성탄절이 되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했는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그런 인사를 금하고 Happy Holiday라고 인사를 하고 있다. 현재 이런 일은 바로 기독교국가라고 생각되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독교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待臨節)이라는 절기를 지킨다. 약 한 달 동안 대림절 기간을 거치게 되는데, 이번 주간이 대림절 마지막 주간이다. 성탄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새겨 보자는 의미에서 대림절을 보내는 것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23]에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한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셨다. 예수님,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또 하나님일 수 있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의 자식은 언제나 사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즉 성자이시기에 성부 하나님의 속성과 품성을 그대로 지니신 성자 하나님이시다.


성탄절의 높아진 교회 문턱?

성탄절은 이 땅에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다. 첫 번째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회개와 감격이 있는 축복된 날인 것이다. 동시에 수많은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할 날이다


그러나 교회들도 교인을 위한? 위로 차원의? 대단한? 성탄절 행사를 한다. 그리고 돈과 물질을 베풂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어려운 자들을 돌아보았다는 책임의식에 젖을 수도 있다. 그리고 높아진 교회 문턱은 정작 소외된 교인들이나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쉽게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없는 특별한 장소이며, 특별하게 경건한? 건물이 되어 버렸다는 대부분의 의견이다


지금은 희미한 기억 속에 추억으로 간직된, 어릴 적 나의 모교회는, 성탄절이오면 환하게 불을 켜놓고 온 동네 이웃들을 초청하여 사탕, 과자, 연필 등등... 선물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유치부 아가들의 율동을 보면서 화목하게 웃고 떠들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성탄절 이브에는 집집마다 새벽송을 돌면 집 주인은 추위에 손을 비비며 뻥튀기며 건빵이며 커다란 푸대에 수북하게 담아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성탄절 이브에는 찬양을 하며 밤을 새웠는데, 혹시 졸리움에 못이겨 깜빡하고 잠들면 까만 매직으로 얼굴에 안경을 그려 놓아서 아침이면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그 어릴 적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인지 밥만 먹고 나면 교회로 달려가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재미난 시간을 보냈었다. 물론 작금의 현실은 빠른 인터넷으로 전 세계 문화의 담이 허물어 졌으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해결 할 수 없는 매일의 반복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굶주려 있는 자들에게 복음과 함께 사랑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탄절을 복음 전도와 사랑실천의 기회로 . . .

예수님은 병자들과 약한 자들의 병을 고치실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구원함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면서 예수님의 온전하심같이 우리도 온전한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예수님께 드리는 가장 값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지 않을까? 이미 오신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우리는 세상 가운데 성탄을 맞이하면서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고 가는 호텔과도 같다. 천국이라는 우리 집과 같은 곳으로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2014년 한 해 동안 곁에서 보아왔던 한 사람을 정하고 기도하며 준비하였다가 선물과 함께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하면 어떨까


내 주위에 정말 가난하고, 억눌리고, 신음하는 자가 누구인지2014년 성탄절과 연말에는 정말 한명이라도 찾아서 한 끼라도 식사를 같이 나누며 성탄절의 기쁨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누가복음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의 평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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