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이상한 도둑”
어떤 로마인이 지나가다가 엠마 샬롬 부인의 집에 잠깐 들러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도둑 같습니다. 당신들이 읽고 있는 성경을 보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갈비뼈 하나를 빼내 이브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것은 도둑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세로 묻자 엠마 샬롬 부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은 물통을 훔쳐갔어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 자리에 금 물통을 놓고 갔지 뭡니까.″ ″그런 도둑이라면 우리 집에도 매일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엠마 샬롬 부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게 바로 아담에게 생긴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갈비뼈 하나를 훔치는 것 같았지만 대신에 더 귀중한 아내를 아담에게 선물로 주었지요.″ 그 후, 로마인은 “하나님은 가져가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행복을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정작 찾았다고 생각한 행복도, 되돌아보면 내게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허무하기 그지없을 때가 있다. 우리의 행복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고 거기에서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에 큰 문화적 영향을 끼치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부와 인기를 얻고 온 세계를 품에 안았지만 그의 마음은 너무 공허하여 1977년에 42세의 나이로 7개월 동안 진통제만 먹다 죽고 말았다. 그에게 영광과 인기가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더 좋은 나라로 이민을 간다. 교육환경 때문에 또한 좀 더 편하게 살아 볼까하고 미국, 캐나다가 좋다고 이민을 가지만 그곳에서 부딪치는 문화적 갈등과 고통이 만만치는 않다.
한국에서 잉꼬부부로 소문난 사람들일지라도 타향살이 몇 해면? 종종 갈라서는 부부들도 심심치 않은걸 볼 수 있다. 또한 자녀교육에 모든 걸 희생하고 다 주었건만 노후에는 외면당하는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이 있다.
또한 이민목회도 마찬가지인데 개인, 가정의 상황 보다 훨씬 더 어려움과 고난속의 행진이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사연과 아픔을 지니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터져 버릴 것 같은 이민자들을 싸 매주고 인도하려니 그게 어디 사람의 마음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목회자들도 척박한 이민목회현장에서 더 성숙해지기도 하는가하면, 반면에 견디고 수용하지 못하여 이름뿐인 목사로 추락해버리는 아픈 현실을 보기도 한다.
과연 이 땅에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는가? 갈수록 예측 불허하는 이상기온으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슬람권의 테러와 경제하락, 동성애, 돈을 불려준다는 저축은행이나, 부동산이나 증권과 주식 등 안전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무엇을 찾아야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정말로 행복을 원한다면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또 우리는 자녀 된 관계로써 그분의 보호 아래서 살아간다면 이 땅의 어떠한 상황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구약성경 [창세기 1장1절]에 “하나님 아버지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자신이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 자녀들에게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육신의 부모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을 희생하고 자식에게는 좋은 것만 주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도 자식에게만은 너그럽고 넉넉하게 주려고 하는 것이 부모이며, 가장 좋은 것으로 주려고 애쓰는 사람이 부모이다. 그 끝없는 부모님의 사랑에는 아무리 감사를 하고 그 은혜를 갚아도 부족할 것이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이 방탕한 길에서 돌이키기를 위해 수십 년을 기도했는데 때가 되어 어거스틴이 돌아왔다. 또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아들의 회개를 소원하며 로마에는 가지 않기를 기도했다. 로마의 방탕함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로마로 그를 보내어 거기서 그를 거듭나게 함으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종종 하나님께는 악한 것이고, 우리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론 하나님께는 선한 것일 수 있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잘 알아야한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이시며 다르게는 하실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어떤 시험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언제나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또한 그 분의 능력도 변함이 없으시며 지혜도 변함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지극한 사랑으로 자녀 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끝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하나님은 결코 너 같은 죄인을 사랑할 수 없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쓸모없는 죄인이야. 어떻게 하나님이 너 같이 죄 많은 사람을 사랑하실 수가 있겠어?” 이런 마음을 주어서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랑을 희미하게 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으로 주시는 분이시다.
신앙생활 하다가, 고난 중에나, 기도하다가 갈등이 생길 때 잊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이름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비록 현실은 나를 외면하고 상황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을지라도 좋으신 우리 아버지는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신다. 만일 한 쪽 문이 막히면 하나님은 다른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시는 분이시다. 전후좌우가 다 막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하늘은 늘 열려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것은 “성령님”
마태복음에는 “좋은 것”이라고 기록된 반면에 누가복음에는 “좋은 것” 대신 “성령”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 바로 “성령”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성령이란 뜻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데, 성령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시고 상담자이시고 옆에 계시는 분이시다.(헬, 파라클레토스) 우리가 그릇된 짓을 하고, 가서는 안 될 곳에 갈지라도 함께 계신다. 기도하지 못하고, 전도하지 못하고, 찬양하지 못할 때도 변함없이 끈질기게 함께 계신다.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성령님은 근심하면서, 책망하면서, 중보기도하면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신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을 예수님 닮은 사람으로 바꿔주시어 삶의 변화로 행복하게 살게 하신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