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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리뷰] 미국과 북한, 누가 더 위험할까?
제라드 버틀러 주연 <백악관 최후의 날>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의 한 장면. ⓒ스틸컷


헐리웃은 은연중에 미국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영화 곳곳에 지배이데올로기를 숨겨 놓고 관객들의 의식에 교묘히 파고든다는 의미다. 2013년 6월 개봉했다가 조용히 간판을 내린 <백악관 최후의 날>(원제: Olympus Has Fallen)은 미국이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과 지배전략이 잘 드러난 영화다.   

이야기의 뼈대는 무척 단순하다. 북한 출신 과격무장 조직이 백악관을 초토화시키고, 이에 맞서 백악관 특수경호 요원 제이크 배닝(제라드 버틀러 분)이 영웅적인 활약을 펼쳐 미국 대통령을 구출해 낸다는 것이다.   
영화가 그리는 북한군 특수요원들은 천하무적이다. 이들은 19세기 이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백악관 점령을 단 13분 만에 완성하고 애셔 미 대통령(아론 애크하트 분)과 한국 총리 및 고위 각료들을 인질로 잡는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훔쳐낸 최신무기로 미군 최정예 요원들을 가볍게 격퇴한다.    
미국 대통령이 인질로 잡혀 고초를 겪는다는 설정은 사실 새롭지 않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에어포스 원>에선 카자흐스탄의 과격분자들이 미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 원)를 공중 납치해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렸고,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드라마 <24>에선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엘리슨 테일러가 아프리카 군벌 출신 테러리스트에게 뺨을 맞는 수모를 당한다.   
북한 역시 헐리웃의 단골 소재다. 웨슬리 스나입스, 다이앤 레인 주연의 <머더 1600>에선 백악관 강경파들이 북한의 도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제이미 폭스, 제시카 비엘 주연의 <스텔스>에선 미 해군 소속 스텔스기 조종사들이 작전 중 북한에 불시착해 북한군 최정예 요원에게 쫓긴다.   
또 <007 다이 언아더 데이>에서 제임스 본드는 북한에서 작전을 펼치다 정체가 탄로나 죽을 고비를 맞았고, 안젤리나 졸리의 <솔트>의 경우 CIA 비밀요원 에블린 솔트가 작전 중 북한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러던 것이 <백악관 최후의 날>에선 북한군이 천하무적으로 돌변해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는 것이다.   
사실 <백악관 최후의 날>은 북한이 등장한다는 설정만 빼면 평범한 헐리웃 액션영화에 불과하다. 다만 미국의 전략적 사고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선 어느 정도 볼만한 가치는 있다.  
북한 특수요원 출신인 강(릭 윤 분)은 인질 석방 조건으로 한반도 주둔 미군 및 동해상에 배치된 미7함대의 동시 철수를 요구한다. 미 합참의장은 그럴 경우 서울이 72시간 안에 북한의 수중에 떨어진다며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고위 각료들이 잇달아 죽음을 당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이때 긴급 상황실에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는 한국을 잃었어.”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의 한 장면. ⓒ스틸컷

한편 강은 ‘세베루스 코드’라는 핵미사일 자폭 코드를 빼내 작동시킨다. 코드가 실행되면 미국 전역에 배치된 미사일은 자폭하게 되고, 이럴 경우 미국은 불바다가 된다. 이 대목은 2013년 2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갔던 신경전을 떠올리게 한다. 이 때 북한은 유투브를 통해 미국 전역을 불바다로 만드는 선전 영상을 유포시켰고, 미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리더십 약화 미국, 북한에서 탈출구 찾아   
한국전쟁 정전 이후 미국은 줄곧 한반도에 군대를 주둔시켜왔다. 미군 주둔의 중요한 명분은 북한의 남침에 대한 억지력 행사였다. 그런데 미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움직임을 취해왔다. 전시작전권 이양에 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흐름이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은 탈냉전기 안보위협이 세계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지역분쟁 및 테러에서 비롯된다고 가정했다. 이에 미국은 새로운 안보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미군을 신속대응군 체제로 개편하기 시작했고, 9.11테러는 이런 움직임을 가속화시켰다. 따라서 미국이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병력을 후퇴시키려는 것도 미국의 세계전략의 큰 틀에서 이뤄지는 일일 뿐이다. 더구나 한국은 북한은 물론 일본, 중국에게까지 지렛대를 행사할 수 있는 주요거점이기에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이후 글로벌 리더십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부상 역시 미국의 리더십 약화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또한 최근엔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행각이 폭로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형편이다.   
미국은 리더십 위기의 탈출구를 아시아에서 모색하는 중이다. 이런 미국의 전략상 북한은 위협적 존재로 각인돼야 한다. 실제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공공연히 부추기고 있는 한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삼각동맹 체제의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의 한 장면. ⓒ스틸컷

영화는 특수요원 제이크가 영웅적인 활약을 펼쳐 북한 출신 테러리스트들을 물리치고, 이어 애셔 대통령이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를 외치며 끝을 맺는다. 영화의 뒷맛은 개운치 않다. 북한이 부정적으로 그려져서가 아니다. 미국과 북한, 어느 쪽이 더 세계 평화에 위협적인 존재인지 혼란이 일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진작부터 북한의 안보위협보다는 체제붕괴로 인한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전략 마련에 골몰해 왔다. 조지 테닛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998년 7월 상원 위원회에서 “최근 북한군의 준비 태세와 능력이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어 식량, 연료 부족과 발병률 증가, 사기 저하, 훈련 횟수의 감소, 그리고 새로운 장비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미국이 가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체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이 군사력을 소모성 자산으로 여겨 일순간에 서울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상황이다. 패트릭 휴즈 미 국방정보국(DIA) 국장은 1998년 1월 상원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군의 전반적인 전투준비 태세는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계속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포대와 미사일, 방사포, 항공기 등 전진 배치된 대규모 타격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경고 없이 남한의 인구 초밀집 지역에 대해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능력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국을 비롯해 세계 도처에 군사 기지를 운영하며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켜왔다. 미국이 위험한 존재인 건 비단 군사력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 경제는 전쟁을 치러야 돌아간다. 자국 경제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외부의 적을 만들고 군사력을 행사해 경제를 먹여 살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란 말이다. 헐리웃은 이런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백악관 최후의 날>은 그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예기치 않게 부조리가 파생한다. 미국에 찰싹 달라붙어 안절부절 못하는 한국의 존재다. 한국군 고위 장성 스스로 “미군을 제외하고 남북한이 1대1로 붙으면 우리가 진다”고 공언할 지경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가혹하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을 통해 때론 현실이 영화에 비해 어설플 수 있음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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