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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고종과 아펜젤러의 교육선교

          관료 지식인부터 민초까지 영어 배우기 열풍


1885년 9월, 아펜젤러의 한국 선교는 교육 선교를 통해 정착하게 된다. 아펜젤러의 글을 보면 한국인들이 영어를 습득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교육활동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영어를 배우는 태도는 더욱 각별하다. 동양에서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신기하다. 모두가 영어를 배우기 원하고 몇 마디만 알아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 집 한국인 사내 아이도 몇 마디를 어깨 넘어 배우고 영어를 사용한다.”

130년 전 관료 지식인을 비롯하여 민중에 이르기까지 영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근대화를 위한 한국인들의 열망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근대 교육의 열망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 맞서고 생존하기 위해 인재 양성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기울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지도층을 비롯한 일반 민중에게는 영어라는 새로운 외국어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출세와 지식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고종과 아펜젤러의 교육 선교

1885년 10월 말, 미국 공사 포크는 아펜젤러의 교육 선교 정착을 위하여 고종과 알현을 가진다. 대화 내용은 한국의 근대 교육에 관한 것이다. 포크 공사는 고종과 대화하였던 내용을 아펜젤러에게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여 전달하였다.

“첫째는 당신(아펜젤러)이 가르치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것, 둘째는 미국에서 먼저 내한한 육영공원 교사들과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선 정부는 별도로 학교 건물 제공과 학생들을 모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셋째는 조선 정부와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근대 교육 활동과 충돌하는 활동을 지양 할 것, 넷째는 당신이 미국에서 풍부한 교육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하여 고종은 당신이 조선을 도와주고 싶다는 의중에 대하여 기쁘기 그지없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하였다.”

아펜젤러는 고종의 호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사실상 선교가 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한국과 미국의 외교, 무역 관계 등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었다. 고종의 첫 인상에 호감을 가졌기 때문인지 그가 선교를 펼치는 전반에 걸쳐 어느 선교사들보다 조선 왕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드러나는 장면이 많다.

청일 전쟁 후 청의 패배로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과 친일 세력의 확장, 대원군에 의한 고종 폐위 시도, 명성황후 시해, 아관파천 등 고종에 대한 신변위협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펜젤러는 선교사들과 함께 왕의 신변에 안전을 다하기 위해 충군애국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아펜젤러의 한국 사랑은 1897년 8월 13일 조선의 개국기념일에 행한 ‘한국에 대한 주한 외국인의 의무(The Obligation of Foregin Residents to Korea)’라는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연설은 아펜젤러가 독립협회에서 강연했던 내용으로 한국에 주재했던 다른 어떤 외국인보다 한국 문화와 국가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이 잘 드러냈다.

“우리는 한국을 믿어야 합니다. 한국은 극동의 이탈리아로 멋진 나라일 뿐 아니라 인구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은 우리 외국인의 역할에 달려 있습니다. 외국인은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국을 올바르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지난 발자취에 드러난 뛰어난 사상들은 평화의 사상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동일하게 한국을 지지하고 믿어야 합니다.”

아펜젤러의 선교 열정

아펜젤러는 자신이 한국선교를 위해 내한하였던 목사 선교사라는 신분을 항상 잊지 않았다. 선교 정착에 힘을 쏟는 동안 그의 재능을 눈여겨봤던 사람들은 그에게 여러 제안을 하였다. 청에서 파송된 최초의 외국인 외교고문관 묄렌도르프는 아펜젤러에게 육영공원의 교장을 제안하였으나 아펜젤러는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정부 주도로 세워졌던 육영공원의 교장직이 자칫 선교를 하러 왔던 아펜젤러의 근본적인 목적을 해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러한 제안은 거의 10년이 지난 1894년 2월에도 있었다. 국립학교를 섬겨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목사 선교사로 한국에 왔던 그의 소명에 시간을 온전히 할애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또 다시 거절했다.

신변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던 한국에서 아펜젤러의 개인적인 신변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으나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은 한국 선교에 대한 그의 소명이 얼마나 중요하였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판 ‘배재학당(培材學堂)’이 걸리다

아펜젤러가 한국에 오기 20여 년 전, 1866년에 시작된 병인박해는 1871년까지 6년간이나 지속되어 천주교에 가장 큰 피해를 주었고 조선 정부를 비롯한 사회적 분위기는 천주교도들을 ‘사학죄인(邪學罪人)’으로 몰아가던 분위기였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당시 아펜젤러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교육 활동에 대하여 정부적 차원의 안전장치가 필요하였다. 이를 두고 기도하며 선교를 진행하고 있는 동안 뜻하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생겼다. 고종이 선교사들의 교육활동을 보고 이를 어질게 생각해 스크랜튼 대부인(스크랜튼 선교사의 어머니)의 학교에는 이화학당(梨花學堂), 아펜젤러의 학교에는 배재학당(培材學堂), 스크랜튼의 병원에는 시병원(施病院)이라는 사액 현판과 이를 보좌할 사람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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