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가?
앞에서는 ‘그 나라’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신약한글성경에 나타나는 교회라는 단어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 한글개역성경에 110번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복음서에는 마태복음에만 2번 나오고 있다. 사도행전에 20번, 로마서에 5번, 고린도전서에 20번, 고린도후서에 9번, 갈라디아서에 3번, 에베소서에 10번, 빌립보서에 2번, 골로새서에 5번, 살전에 2번, 살후에도 2번, 딤전 3번, 빌몬 1번, 히브리서 2번, 약 1번, 벧전 1번, 요삼 3번, 계시록에 19번이 기록되어 나오고 있다.
2. 복음서 중에 처음으로 ‘교회’라는 용어
이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교회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마태복음 16장에서 하셨다. 이때 교회라는 말씀의 배경으로 시몬 베드로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복음서 중에 마태복음서에만 나오는 교회라는 단어인데 두 번째는 교회 안에 죄 문제가 있을 때 교회에 말하고 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에 말’하고 라는 의미는 건물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율법에 속한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3.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사역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표현하는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건물에 대해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면 건물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한곳도 없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 에베소, 골로새, 데살로니가 등 지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교회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유명사인 지역명을 따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서 교회라고 했던 것이다. 물론 신앙지도자를 새워 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바울이나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 중에 빌립이나 혹은 디모데나 빌레몬 등 사역자로 지역에서 사역하였다는 것을 알 수있다. 예를 들어 에배소 지역에 흩어져 있는 모든 성도들을 교회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도 어느 도시 어느 지역에 흩어진 모든 성도들을 가리켜 교회라고 생각지 않는다. 어느 어는 교회라는 간판을 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어느 교회 누구에게 세례 받고 누구에게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를 건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라는 구조는 건물을 말한 것이 아니고 복음을 받은 성도들을 가리켜서 성전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바울을 고린도교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즉 성전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른 것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고 했다.
4. 교회는 성도들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래에 더 구체적으로 성전인가?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을 구분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과 신자들은 건물을 성전이라는 용어를 생각 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회당’이라는 용어와 같이 현대어로 교회당, 혹은 예배당으로 가르치고 생각하도록 해야 할 책임이 사역자들에게 있지 않은가? 수십 년 전에는 예배당, 혹은 교회당이라는 간판을 보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당(堂)‘이라는 글자가 빠지고 건물을 교회라고 부르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 결코 성경적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교회라는 원어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름 받은 거룩한 백성들의 모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하도록 가르치고 있지만 일반 사회인들이 보는 것은 건물이 교회라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5. 거룩한 무리들이 모인 것이 교회다.
분명히 교회(church)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이전과는 달리 구별된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그 근거를 둔 구원의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받아 나온’, ‘부르심’, ‘택함 받은’ 등의 뜻이다. 이 말은 공적인 목적으로 모이는 모임을 가리키기도 했기 때문에 ‘모임’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행 19:32, 41).
6. 교회라는 원어의 뜻
70인 역에서는 히브리어 ‘카할’(qahal)이라는 단어를 에클레시아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회중을 의미했다. 때로 ‘쉬나고그’(synagoge)라고도 불렀지만 ‘쉬나고그’는 유대인의 모임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회당이라는 의미 때문에 사용되지는 않았다.
신약에서의 교회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실 때 처음 사용되었다(마 16:18). 실제로 공동체로서의 새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하여(고전 3:11; 엡 2:20-23)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세워졌던 것이다(행 2장). 여기서 교회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인 회중이었다. 이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행 2:42).
7. 신약성경에서 표현된 교회란?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의 피로 사신 것’(행 20:28), ‘보이지 않는 교회’(롬 6:3-5; 고전 12:12-13), ‘그리스도 지체로서의 교회’(롬 12:4; 엡 4:3), ‘하나님의 가족’(엡 2:19), ‘하나님의 교회’(딤전 3:15),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한 건물’(고전 3:10-11),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고후 11:2),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하는 양떼’(요 10:11-16), ‘촛대’(계 1:20) 등이라고 했다.
8.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의 모습
또한 바울이 이해한 교회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등으로 지역이나 구성원에 따라서 부르거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고전 16:19) 등으로 불렀다. 때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그리스도의 교회’(갈 1:22)라고도 불렀다.
9.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교회관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백성들을 불러내시고 모으셔서(롬 8:3, 29-30) 그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고 이해했다(고후 6:16-18). 또한 성도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지적하며 성전이 거룩하듯 거룩할 것을 권면했다(고전 3:16-17). 특별히 그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와 그리스도의 모퉁이 돌로 세워진 교회(엡 2:20)를 이루어가기 위해 성도들이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엡 2:21-22).
10.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이름들
신약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특별한 이름들 중에 그리스도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의 연합을 강조한 이름이다(고전 12:27; 엡 1:23; 골 1:18). 그리고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라 불렀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엡 2:22)가 되기 위해 함께 지어져 간다고 말했다. 또한 베드로는 신자들이 ‘신령한 집’(벧전 2:5)으로 세워진다고 말했다.
신령한 교회인 ‘새 예루살렘’에 대해서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도 했다(갈 4:26; 히 12:22; 계 21:2, 9-10). ‘예루살렘’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신 장소로 언급되었는데, 신약에서는 교회를 구약의 예루살렘과 유사하게 여겨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곳으로 여겼다.
그리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수호하는 곳이라(딤전 3:15)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서는 이곳에 함께하셨다.
11. 다락방에 모인 기도의 사람들
이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위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겸손하게 성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다(행 1:14).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이 생겼고, 교회가 시작되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 충만했고 영적 은사들을 행사했다. 또 복음을 전파했고, 사랑의 연합을 이루었다. 이러한 증거의 결과 교인들의 수는 날로 늘어갔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하지만 이와 함께 교인들에 대한 박해도 늘어갔다(행 5:17-42).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은 초대교회가 당했던 극심한 박해를 받지는 않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와 다른 점이며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박해가 있을수록 참 성도는 강하여지고 성령 충만하게 되며 헌신된 사람이 되는(약 1:2-4; 벧전 1:1-7) 반면 박해를 통해 거짓 성도는 갈라내게 되어 순전한 교회를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12.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 주어진 명령이 있다. 그것은 초대교인들처럼 성숙하고, 서로 사랑하며, 겸손해지는 것이다. 또한 성령 충만하고, 은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제 교회라는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할 내용들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래서 말세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귀담아 새롭게 ‘그 나라’ 백성답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 나라’의 통치자는 주님이시고 그 통치자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주어졌다.
13. ‘그 나라’와 주님의 모든 교회를 위해서 뜻을 같이 해야 할 때다.
그리고 ‘그 나라’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마음과 생각과 뜻이 하나 된 종들을 찾고 있는데 누가 대답할 것인가? ‘그 나라’에 동참해서 새로운 교회의 페러다임을 생각하고 힘을 모으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로 쓰임 받아야 할 것인데 아직도 ‘그 나라’와 주님이 요구하시는 ‘교회’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협력이 되지 않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
이응주 목사(재일한국선교사협의회(CCKJ) 회장 역임, 일본 도가네교회)
E-mail : ungjoor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