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멜로디 나의 하나님, 작곡가 "윤일상"
“한국 가요계의 모짜르트“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1974년생으로 4세에 피아노 연주, 6세 작곡 시작, 경희대 포스트 모던 음악과 졸업. 김범수 '보고싶다', 이승철 '인연', 이은미 '애인있어요' 등 국내 최고의 가수들의 히트곡을 창조한 작곡가 윤일상이 신앙을 고백했다.
신앙의 본질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죠. 가난한 사람을 돕고 연약한 사람들의 편이 되고, 넘어질 때도 많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게 우리의 삶이어야 하죠, 그런데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분 중에 예수님보다 교회 행정, 목사님… 이런 부분에 치우쳐서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본질에 멀어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교회에서 예배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 일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으론 CCM도 만들고 제가 만든 찬송이 찬송가에 실리면 좋겠다는 꿈이 있어요. 사실 만들어 놓은 곡도 있고, 만들어 놓은 곡이 다시 가요로 편곡돼서 발표되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때를 허락하시면 정말 찬송가도 만들어서 발표하고 싶어요.
주님의 때를 잘 기다려서 자연스럽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사실 윤일상은 방송에서 종교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주님께서 크리스천임을 커밍아웃 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집회나 인터뷰 등에서 하나님을 언급하고 급기야 공개적으로 기독교 토크 방송에 출연, 신앙을 고백하게 됐다.
귀염둥이 내 동생
어릴 때부터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생이 생겼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그때 처음으로 자작곡을 만들었어요. 제목이 ‘귀염둥이 내 동생’이었는데 가사가 ‘귀여운 귀여운 귀여운 꼬마 동생. 어여쁜 어여뿐 어여뿐 꼬마 동생.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귀여운 어여쁜 꼬마 동생 정말 사랑해요.’ 이런 가사에요. 그때 어른들도 제가 만든 노래를 들으시면서 즐거워해 주셨던 기억이 나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잖아요. 처음 제가 만든 노래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생기니까 계속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음악으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게 작곡가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이런저런 멜로디가 떠오르면 모르는 사람도 붙잡고 들려줬어요. 평가를 받고 싶기보단 제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무모한 스무 살
음악인생에 행운인 게 외가 쪽 식구들이 거의 음악을 하세요.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의 음악감독을 하셨던 분이 외삼촌인 최경식 감독이었어요. 당시에 외삼촌은 너무 바쁘고 전 어려서 만나기도 쉽지 않았지만,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외삼촌 사무실에 찾아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일을 시작했는데,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제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출근해서 청소하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6개월을 지냈어요.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녹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음반업계의 상황은 어떤지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첫 수입은 SBS에서 하던 어린이 방송음악이었어요. 한 달에 두 번, 한 번에 15만 원씩, 제가 만든 음악이 방송에 나오고 돈까지 받아서 정말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6개월 동안 한 푼도 못 벌었는데 한 달에 30만 원씩 수입이 생겼잖아요. 제 딴에는 엄청난 수입이었어요.
작곡가 “윤일상“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김지환 선배가 제 데모곡을 들어보고 싶다고 저를 대하기획사로 불렀어요. 전 늘 제 데모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바로 들려드렸는데, 제 곡을 듣고 어떤 분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이거 누구 곡이야?” 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음날 학교 끝나고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어요. 그분이 대하기획 사장님이셨던 거죠. 같이 일해보자고 하려나? 다음 날, 사장님을 뵐 때까지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분이 “천만 원을 줄 테니 같이 일하자” 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그렇게 큰돈을 주시면서 일하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당시에 100원이 없어서 버스를 못 타고 걸어 다녔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까 너무 놀랬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해서 처음 만든 곡이 박준희의 2집 「Oh, boy」, 「Kuk Kuk」이었어요. 그리고 DJ DOC의 3집을 프로듀서 하면서 유명해 진 것 같아요. 「OK? OK!」, 「겨울이야기」, 「Remember」 모두 연이어 인기를 얻으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거든요.
그때의 열정, "나는 스무 살이다"
지나고 보면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의 제가 가장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돈도 못 벌고 힘들었지만, 음악이라는 단어가 설렜고, 음악만 할 수 있다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제 경쟁자는 20살의 저예요. 늘 그때처럼 음악을 하고 싶고, 그때처럼 열정이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지은 책 제목도 「나는 스무 살이다」로 정한 거거든요.
요즘 청소년들은 꿈을 가지고 있어도 재능이 있는 걸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두려움이 충분한 노력이 없어서 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열심히 하는데 안 된다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이든요. 정말 열심히 하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 중요한 건, 재능이 있는가? 그 보다 앞서는 건 이것이 행복한가? 에요.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다면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것도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다
저작권협회에 700여 곡이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 대중가요에 독보적인 존재인 윤일상은 올해로 작곡가 데뷔 23년이다. 세상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음악에만 열려있던 지라 ATM 기계에 입금이 되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는 윤일상은 아내를 만나 비로소 돈 관리라는 것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태신앙인 그는 “대중가요를 하면서 종교와 타협하는 것에도 갈등이 있었다”며 “20대에는 한 동안 니체에 빠져서 염세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하나님보다 음악이 신이 있던 적도 있었고 좋은 곡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생각까지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송도 많이 겪고 절망에 빠져있던 어느 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예배당 안에서 들리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다”며 “따뜻하면서 큰 빛이 비취는 것을 본 순간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윤일상은 “하나님 죄송합니다”라고 고백했다. 그 이후로 다시 하나님을 만났고, 이제는 모든 인기곡이 ‘온전히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고백을 하게 됐다.
쌍둥이의 아빠가 되다
원래 독신주의자였어요. 제가 음악에 빠져 살다 보니까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고, 또 교제 하더라도 음악만 하는 저를 이해해 주시는 분이 없더라고요. 저도 그게 고쳐지지 않고요. 그래서 결혼을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정에 충실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 마음이었는데, 어느 날 정말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았고, 처음 봤을 때부터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하자고 했어요. 물론 아내는 프러포즈로 받아들이진 않았죠. 아무튼 만난 지 4번 만에 결혼했고 제 삶의 우선순위가 가정으로 바뀌었어요. 정말 많은 부분이 달라진 거죠. 제 인생에서 가장 무모한 선택이 결혼이었는데 가장 잘한 선택도 결혼인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을 결혼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쌍둥이의 아빠가 된 윤일상은 “결혼을 하고 쌍둥이들이 태어난 것은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감사했다. 얼마 전 실용음악과 전임교수가 된 윤일상은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길러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인기 작곡가로 수많은 곡들을 음악차트 1위에 올려놓은 그의 소원은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는 “작곡가로서의 소원은 찬송가에 곡이 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음악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소원하며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