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정체를 알자(3)
지구촌이 이슬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슬람은 이제 중동, 북아프리카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비아랍권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 이슬람이 들어가는 곳은 항상 문화의 충돌과 폭력,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들과 젊은 인재들을 타깃으로 활발한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엄청난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 내용은 이슬람이 얼마나 나쁜 종교인지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 글들을 통해서 무슬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슬람의 실체를 바로 알아서 그들을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다.
알라의 딸들
이슬람의 선지자 모함마드의 부친 이름이 압둘라 (Abdullah)였다. 이 이름은 압드(Abd 즉Servant)라는 말과 알라(Allah)라는 말을 합친 말인데 즉 알라의 종 혹은 알라를 섬기는 자 라는 뜻이다. 모함마드의 아버지의 이름이 압둘라 라는 사실은 그 종족이 세 딸을 둔 달신인 알라(Allah)를 믿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그 신이 바로 이슬람의 알라(Allah)라는 것을 모함마드가 코란에서 인정한 것이다.
코란에는 위의 구절 외에도 알라의 딸들에 관해서 8 군데나 말하고 있다. 물론 모함마드는 알라와 사람들이 알라의 딸들이라고 하는 천사(우상)들의 관계를 부인하지만 이렇게 여러 번 부인하는 이유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 천사(우상)들의 이름을 53장21절에 밝히고 있는 것이다. 코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래 구절들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6장100절, 16장57절, 17장40절. 37장149절, 37장153절, 43장16절, 43장19절, 52장39절)
성경의 하나님과 코란의 알라는 영이 다르다
위의 사실만 봐도 이슬람의 알라(Allah)는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신심이 두터운 무슬림들은, 증거 자료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위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학문이 두터운 사람이냐 혹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이냐 혹은 이런 주장을 하는 서류와 역사적 자료들의 신빙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선 기독교의 성경에서와 이슬람의 코란을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코란에 기록된 구절은 무슬림들이 진리로 인정하는 구절이기 때문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와 일부다처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창세기 2:24) 가정의 질서와 행복을 보장해 주셨다. 그런데 코란에서는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좋다. 만일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 들게 된다면 한 명으로 한다든가 너의 바른 손에 소유하고 있는 것(노예소녀들)으로 하라. 그러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 (코란 4:3 김용선 번역) 이 구절은 노예 소녀들은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으며, 책임질 일도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슬람에서는 부인을 네 명까지 얻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2, 3, 4 명이라는 것은 2+3+4명 즉 9명의 부인을 얻어도 된다고 허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 코란의 아랍어 원문에 둘 셋 넷이라는 숫자는 서로 와(Wa) 즉 영어로 "and" 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함마드가 죽을 때 9명의 부인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모함마드는 이슬람의 모든 행위와 규범의 기준이요 그의 삶은 모든 사람이 본 받아야할 표준이라고 하기 때문에 모든 무슬림들은 9명의 부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하나님이 이렇게 다른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말인가?
이혼의 문제
성경은 이혼에 대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마태19:6, 마가10:9) 이 말씀이야 말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너무 소중한 말씀이다. 사람이 살다가 보면 금슬이 좋아 보이는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갈등이 있을 수 있고 견해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지라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서 이혼을 선언하고 번복할 수 없어서 헤어지고 나중에 후회하고 눈물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못 박아 놓으심으로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가정을 깨뜨리지 못하고 갈등이 있을지라도 거룩하게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다시 회복하여 행복을 누리게 하셨다.
그런데 코란은 이혼에 대한 규정을 정해주고 있다. 코란 65장 전체가 이혼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다. 심지어 아내 바꾸기라는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코란 4장 20절에 보면 “만일 너희들이 처를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처에게 많은 돈을 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한 푼의 돈도 뺏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를 바꾸고 싶으면 바꿔도 좋은데 단 이미 주었던 재산은 빼앗지 말고 이혼하라는 것이다.
이혼의 횟수를 지정해 주기도 하는데 이혼은 두 번까지라고 규정하고 있다.(코란 2장229절,김용선 한글번역본) 이는 남자가 평생 죽을 때까지 두 번의 이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말이 아니다, 부인이 많기 때문에 1인당 2회의 이혼을 허용한 것이라고 이슬람 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2장 230절에 보면 세 번 이혼한 부인을 다시 불러들이고 싶으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가 이혼을 당해야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최영길번역본 및 이슬람 국제출판국 번역본 참조) 그러니까 결국은 세 번의 이혼도 허락한 것이니 이렇게 해서 어떻게 가정의 행복과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이렇게 다른 말을 하는 이슬람의 알라(Allah)를 어찌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고 하는가?
원수를 대하는 태도
우리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누가복음 6장 27절에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 말씀이야 말로 인류 평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말씀이다. 항상 예수님의 수제자로 자처하던 베드로가 예수께서 가장 도움이 필요했던 절박한 순간에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하며 부인한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배신자를 품어 주셨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알라를 위하여 당신을 적대시 하는 자와 싸워라”(코란2:190,김용선 번역본), “박해가 없어질 때까지, 종교가 알라의 것이 될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코란2:193, 김용선 번역본), “그와 같은 자들은 자기들이 믿지 않는 것같이 너희들도 믿지 않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동등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한 자들이 알라의 길 쪽으로 옮겨올 때까지는 그들을 친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만일 그들이 배반하면 너희들이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그 장소에서 잡아 죽여라. 그들을 친구로 하든가 조력자로 해서는 안 된다.” “알라와 그 사도에 싸움을 걸고 지상에 해악을 뿌리려 하는 자가 받는 벌은 살해되든가 십자가서 박히든가 손발을 반대쪽부터 절단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국외로 추방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받는 그들의 굴욕이며 내세에서도 그들에게는 무서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코란 5장 33절, 김용선 번역본),
“그런데 신성월이 지났으면, 다신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라. 잡아라 억류하라. 모든 길에 복병을 두고 기다려라. 그러나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예배를 지키고 희사를 한다면 방면해 주라. 알라께서는 관용하시고 자비로운 분이시다.”(코란 9장5절, 김용선 번역본) 원수를 죽이면 서로 골은 더욱 깊어지고 화해의 길은 멀어져 간다.
이슬람의 알라(Allah)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이라면 어찌 이렇게 다른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다른 신이라는 것이 너무 분명하여 부인할래야 부인할 길이 없다.
심판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9 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이야 말로 인류 평화를 위해서 핵심이 되는 말씀이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원수 갚는 일을 인간이 할 때는 더 많은 원수관계를 만들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고 하셨다. 인간들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면 억울하고 분한 원수는 하나님께서 그 원한을 풀어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코란에서는 알라(Allah)가 인간의 손으로 벌을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심판권을 인간에게 양도한 것이다. “그들과 싸우라. 그렇게 하면 알라께서는 너희들의 손으로 그들을 벌주시고 너희들을 도와서 그들을 이기게 하여 믿는 사람들의 가슴의 병을 고쳐 줄 것이다.” (코란9장14절,김용선 번역본)
“그날에 적에게 등을 보이는 자는 반드시 알라의 노여움을 받고 가는 곳은 지옥의 불, 무서운 곳이다. 그들을 죽인 것은 너희들이 아니다. 알라께서 죽이신 것이다. 사살한 것은 당신이어도 실은 당신이 사살한 것이 아니다. 알라께서 사살하신 것이다. 이것은 신자들에게 고마운 은총을 경험시키려 하신 것이다.
참으로 알라께서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다 아시는 분이다.”(코란 8장16-17절,김용선 번역본) (코란4장89절, 김용선 번역본), “... 만일 그들이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화평을 제의해 오지 않는다면 어디서든지 발견 되는대로 죽여 버려라. 이러한 자들에 대해 우리는 너희에게 명백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코란4장91절 하반, 김용선 번역본),
[이만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