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개역한글 요 6:26-29)
세상에는 일에 내용들이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 할 일과 가정적으로 하는 일도 얼마나 많은가? 부엌에서 마당에서 들에서 할 일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너와 나 사이에 할 일은 만남을 통해서 시작되는 일들도 얼마나 많은가? 단체적으로 국가적으로 더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할 일들이 있어서 정치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 도덕적으로 아니면 각가지 기술로 지혜롭게 서로 필요한 것들을 공유하면서 관계를 맺고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일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사람의 일 즉 썩어질 땅에 대한 일에 집중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일 즉 영생을 얻기 위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종교가 있어도 영생을 위해서 강조하는 것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일만이 가치 있고 후일에 보장되어 있는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하늘에 속한 일이며 현세적인 일이면서 결코 후회함이 없는 보람된 일이다. 그러면서 내세적인 것인 동시에 영적이면서 소망과 기쁨을 주는 생명운동을 일이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땅에 속한 것이며 시기와 질투와 교만을 가지게 하는 동시에 항상 너와 나 사이에 경쟁의식을 가지게 한다.
두 가지 일에 대한 내용을 묵상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가? 에 대해서 살펴본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어느 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했다.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은 간단하다.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믿음이냐? 누구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냐? 오늘날 교회당문화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직분과 직책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서 직분 받고 영육의 복을 받아서 형통하다고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을 한 것에 대한 내용과 목적이 무엇인가? 성수주일, 기도생활, 헌금생활, 봉사생활, 이웃사랑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 순종의 생활 등이 모두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처음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을 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1-24)
이때에 베드로에게 “너는 하나님의 일(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을 들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 하였느니라”(빌 2:19-22)
여기서 빌립보 교회 사람들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보다 지기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기도한다는 뜻으로 지적하고 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롬 10:2-3) 여기서 하나님께 열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 진찰하고 있다. 먼저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편지에서 ‘자기의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 구분해서 말씀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사람의 일’이나 ‘자기의 일’은 세상적이고 ‘하나님의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일‘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신비한 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의 ‘지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식의 근본'(잠 1:7)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학사전에 지식에 대한[知識,止息,智識] 뜻을 교육이나 경험, 또는 연구를 통해 얻은 체계화된 인식의 총체라고 했다. 영어로 지식을 ①knowledge ②understanding ③know-how라고 했다.
위키백과 사전에 ‘지식(知識)’은 교육, 학습, 숙련 등을 통해 사람이 재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 등을 포괄하는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최근에는 한 사람 뿐 아니라 집단의 사람이 재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기술도 지식이라고 부른다.
넓은 뜻으로는 어떤 사물(事物)에 관하여 명료한 의식을 지니는 것으로서 알고 있는 내용, 알려진 사물의 뜻이 되기도 하며, 사물에 관한 개개의 단편적인 사실적·경험적 인식의 뜻이다. 좁은 의미, 즉 엄밀한 의미로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확실한 의식을 지식이라고 한다. 이 경우에는 사물의 성질, 다른 것과의 관계 등에 관하여 참된 판단을 지닌다는 것을 말한다. 지식은 억설이나 상상과는 달리 보편타당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사고(思考)의 작용이 곁들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지식에 대한 뜻을 살펴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다. 어떤 지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지식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세상적인 교육을 통해서 배운 내용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식’이란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아는 것’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영생’과 결부시켰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오늘날 교회를 바라본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지식에 따라 열심을 내고 있는데 대한 것을 어떻게 진찰 할 것인가? 또한 예수님은 어떤 일에 열심을 요구하고 계실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교회당교회문화 안에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봉사하고 있다. 그 결과 직분자로 선택받기 위한 목적도 있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그 직분을 과시하게 되고 신앙적으로 인정을 받기 위한 목적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주일날 하루는 거의 교회당에서 지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연 이러한 모습이 바른 신앙의 지식을 알고 열심 내는 증거일까? 과연 열심 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신앙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서 인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볼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