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행전 27:9-26)
나의 신앙의 주소가 어디인가? 신앙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사역의 태도와 전하는 메시지가 달라진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할지라도 바울과 같이 세상적으로 죄수가 되어 법정으로 끌려가는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하고 인본주의로 사역하는 지도자의 태도와 사역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즈음 인터넷시대, 글로벌 시대라고 한다. 너무 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 크리스챤들도 바울과 같이 광풍이라는 어려운 가운데서 말씀을 받아 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바울이 외치는 메시지 내용가운데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즉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생명에 위험을 받고 있는 276명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바울이 전한 내용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이라는 바다에 풍랑을 만나서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 정치의 풍랑, 전쟁의 풍랑, 경제의 풍랑, 교육과 과학의 풍랑을 만나서 정신적으로 생활면으로 힘들게 몸부림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바울과 함께 행선하는 사람들은 276명이었지만 지금은 70억이라는 귀한 생명들이 지구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풍랑을 만난 자들의 아우성이 메스컴을 통해서 계속 들려지고 있지 않은가?
종교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경제, 교육이 나라마다 지도자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표준이 없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충돌이 일어나고 총소리가 들려지고 심지어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고 바다도 파도소리를 내면서 생명들에게 위협이 되고 경고하는 신호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의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는 2천 여년 전에 바울이 전했던 그 음성을 다시 들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1. 바울의 예언(9-11)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먼저 바울이 왜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었는가? 복음을 전하다가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심지어 법정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그립바 왕앞에 서게 되었다. 아그립바(Agrippa)는 신약 시대 유대의 왕이었다. 성경에는 헤롯 대왕의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1세(AD 37-44)와 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AD 50-93)가 등장하고 있다(행 12:5; 25:13).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헤롯이라고만 명명되는데, 사도행전을 통해서 그는 야고보를 죽였고 베드로도 잡아 투옥하였다(행 12:1-19).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아그립바로 명명되며 버니게와 함께 가이사랴의 베스도를 방문했다가 바울을 심문하기도 했다(행 25:13). 심문 받는 자리에서 바울은 자기가 믿는 하나님 때문에 송사를 당하였다는 것을 말하면서 지난날 유대교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당시 가장 엄한 바리새파에 속해서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고 밝히면서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라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것을 증거 하게 된 것이다(행 26:1-8).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였다. 그러나 바울은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호송되어 가게 되었다. 때는 금식하는 절기가 지나서 배를 타고 항해하기가 계절적으로 좋은 시기가 아니었지만 출항하게 되었다.
여기서 금식(Fast)이란? 음식 또는 물을 먹지 않는 것 혹은 대부분의 음식을 금하고 물과 간단한 음식만 먹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하루 금식이란 해 돋는 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를 의미했다. 구약에서 금식의 주제는 주로 ‘의’였다(슥 7:9-10). 하나님은 참된 회개가 포함된 금식에는 언제나 응답하셨으나(욘 3:5-10; 에 4:3, 16) 위선적인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사야 시대 백성들은 금식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으며(사 58:5) 이사야로부터 참된 금식과 그 결과에 대한 선포를 들어야 했다(사 58:6-8). 구약에서 합법적으로 금식해야 하는 때는 속죄일(레 16:29; 렘 36:6)과 BC 586년 후, 예루살렘 멸망을 기억하기 위해 금식하는 날(슥 7:1-7; 8:19) 등이었다.
출항하기 전에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했다. 문제는 바다의 전문가들의 말이 더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바다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로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예언을 하였지만 바울을 호송해 가는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하게 되었다.
지금도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도하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면 썩어질 것에 대한 세상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으로 형통하고 번성하는 메시지에는 '귀가 가려워서'(딤후 3:3-4) 따라가고 있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종들은 무시당하고 멸시를 받는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2.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겨울이라는 계절은 어디를 가든지 편히 쉴 곳이 없다. 그래서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고 가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에 백부장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뵈닉스(Phoenix)는 지중해의 그레데 섬 남쪽에 있는 항구 도시이다(행 27:12). 바울은 자신과 죄수를 호송하던 백부장에게 미항에서 과동하자고 권유하였으나(행 27:9-10) 백부장은 겨울을 지내기에 좋은 따뜻한 뵈닉스에서 과동하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랐던 것이다(행 27:11-12).
결국 다수의 의견에 따라서 뵈닉스로 향하던 배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결국 파선하여(행 27:14-44) 뵈닉스에는 도착하지 못하였고, 난파당한 그들은 멜리데 섬에 가까스로 도착하게 되었다(행 28:1). 바울 일행을 태운 알렉산드리아 호(배-행 27:6)가 가려던 뵈닉스는 현재의 ‘루트로’(Loutro)로 보고 있다.
그레데(Crete)는 지중해 남쪽에 있는 커다란 섬으로 길이가 약 250km이며 폭은 약 11-56km에 이른다. 그레데 섬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일찍부터 문명(미노아 문명)이 발달했다. 구약에서 갑돌이라고 불렸던 이 섬사람들은 오순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행 2:11). 또한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 받아들여져서 로마로 호송되었던 바울은 누가, 아리스다고 등과 함께 그레데 섬을 지나 항해했다(행 27:7).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를 각 성의 장로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다(딛 1:5).
또한 바울은 그레데 사람에 대해 어떤 선지자의 말을 빌려 “그레데 인들은 항상 거짓말 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 장이”라고 했다(딛 1:12). 여기서 ‘어떤 선지자’에 대해서 고대 교부들은 시인이었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라고 보았다고 했다.
3. 남풍이 순하게 불매(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남풍(South wind)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욥 37:17). 성경에서 말하는 남풍은 아라비아 광야 쪽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열풍’을 말한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남부의 사막 지대를 통과해서 불어왔기 때문에 건조하고 더웠다. 시편 기자는 동풍, 남풍을 마음대로 불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노래했고(시 78:26), 예수님께서는 남풍이 불면 더울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심판의 때는 분변할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지적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다(눅 12:55-56). 남풍은 바울이 선교여행 할 때 탔던 배의 방향을 결정해 주기도 했다(행 27:13; 28:13).
4. 유라굴로라는 광풍(14-18)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여기서 유라굴로(North-easter)는 헬라어 유로스(euros-동풍)와 라틴어 아퀼로(aquilo-북동풍)의 합성어로 북동풍을 뜻하는 태풍 이름이다. 그레데 한 가운데 솟아있는 산맥의 영향으로 두 반대 기류가 충돌하여 태풍을 일으켜 남풍은 급격한 북풍으로 변하는 수가 많은데(행 27:14), 바울을 태운 배도 로마로 가다가 그레데 섬을 지나면서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게 되었다(행 27:14).
광풍(Storm, Strong wind)의 이름이 유라굴로라는 것이다. 태풍이나 사나운 회오 리 바람이다. 시편 기자는 자연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표현할 때 광풍을 일으키고 평정하신다고 했다(시 83:15; 107:25, 29).
광풍은 때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나 심판(호 8:7), 위급한 상황, 두려움과 근심(시 55:8; 잠 1:27)을 나타내었다. 이사야는 사마리아를 공격하는 앗수르의 강력한 모습을 광풍(사 28:2)으로, 메시아의 통치를 광풍을 피하는 곳(사 32:2)이라고 묘사했으며, 바벨론 포로생활로 인해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사 54:11)라고 했다.
또한 에스겔은 곡(겔 38:2-3,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모습을 광풍으로 표현했으며(겔 38:9), 호세아는 우상숭배를 하다가 결국 앗수르 군에게 공격당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광풍을 거둘 것이라고 했다(호 8:7).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광풍을 멈추신 기적(막 4:37; 눅 8:23)과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던 바울의 여행(행 27:14), 혀의 사용을 광풍 속에서도 사공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배의 키에 비유할 때(약 3:4)에 언급되었다.
근래에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매년 20개가 넘는다. 그래서 일본전역을 태풍의 영향으로 인명피해와 재산에 많은 피해를 끼치는 일들이 있다. 태풍의 이름들이 다양하다. 매미, 태풍(Typhoon: 30개)은 북태평양 남서해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허리케인(Hurricane: 23개)은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그리고 동부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이 있었다. 또한 사이크론(Cyclone: 27개)은 인도양과 호주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주 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하는 것을 지역주민들은 윌리윌리(Willy-Willy: 7개)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작성자 레오날도)
태풍을 타이푼, 싸이클론, 윌리윌리, 허리케인, 쓰나미 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쓰나미는 태풍과는 좀 다르다고 한다. 허리케인, 사이클론, 태풍은 모두 열대성 저기압을 이르는 말로, 발생지역마다 명칭만 다를 뿐, 구조나 이동경로, 발생 조건 등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 열대성 저기압은 주로 26도 이상의 높은 해수온도를 충족시켜야 하며, 위도 5도에서 20도 사이의 열대해성에서 발생하여 중심부근 최대풍속 17m/s 이상인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아시아권에 영향을 주는 열대성 저기압은 태풍이며,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 북태평양 동부에 영향을 주는 열대성 저기압은 허리케인으로 부르고, 인도양, 아라비아해, 벵골만에서 발생하여 이 지역에 영향을 주는 열대성 저기압은 사이클론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우리말로 태풍의 이름들이 있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10개씩 이름을 제출했기 때문에 우리말로 된 태풍 이름은 모두 20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안해 선정된 초기 태풍 이름은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수달, 메기, 노루, 나비 등 10개이고, 북한이 제안한 이름은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봉선화, 매미, 민들레, 메아리, 날개였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의 수달(2004년), 나비(2005년), 그리고 북한의 봉선화(2002년), 매미(2003년)가 퇴출되기도 하였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가 제출해 사용하고 있는 태풍 이름은 개미, 제비, 나리, 너구리, 장미, 고니, 미리내, 메기, 노루, 독수리 등이고, 북한에서는 기러기, 소나무, 도라지, 버들, 갈매기, 노을, 무지개, 민들레, 메아리, 날개 등의 이름들이 사용되고 있다(시사상식사전, 박문각),
5. 사흘째 되는 날에(19-20)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 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 졌더라."
태풍이 몇일 동안 계속되면 생활에 불편이 따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바울 일행이 광풍을 만나서 '여러 날 동안 해도별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나 힘들 었을가? 바다 가운데서 자그마한 배에 이백칠십 여섯 명이 좁은 공간에 갇혀서 의식주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가지고 가던 짐들은 바다에 던져 버리고 배를 가볍게 했기 때문에 빛이 없는 어두운 밤과 같은 환경에서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6. 이제는 안심하라(21-22).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의 신분은 죄수였지만 분명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또한 목적지가 로마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울 때문에 다른 선객들의 생명을 보호해주시고 계셨던 것이다. 바울은 그때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출발 전에 내가 했던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타격(打擊, Damage)이란 말은 어떤 사건의 영향으로 발생한 손해나 손실을 말한다. 로마로 압송되던 바울을 태운 배는 가이사랴에서 로마로 가던 중 지중해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출항한 후 풍랑을 만나 짐(행 27:18)과 배의 기구(행 27:19)를 버리고 굶주리는(행 27:21) 등의 타격을 입게 되었다(행 27:10, 21).
7.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23-24상)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바울은 담대하게 자기가 누구에게 속하고 있는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에 대한 신앙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자기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전해준 메시지였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먼저 서두로 전하고 다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게 된 것이다.
8.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24-26)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은 당시 로마 최고 정치지도자인 가이사 앞에 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울과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바울 자신에 주셨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노라.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 때문에 살 것이라는 위로와 용기를 전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지도자 잘 만나서 생명을 보호받고 미래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 또한 "안심하라"는 것이다. 지금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오직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안심하라" 오늘날 죄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생명의 위험을 당하는 수많은 백성들에게 "여러분 안심하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쉬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지구촌은 지금 안심하고 살아가는 분위가 아니다. 기근과 지진과 전쟁과 환난과 가난과 질병 등 각가지 사건으로 수많은 생명들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바울은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자신 있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도 내게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오직 복음만을 외치고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약속을 바르게 전하는 사역자가 아쉬운 시대가 아닌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용서와 영생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들려지는 것보다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기복신앙에 더 많다는 것은 성령이 탄식하는 내용들이라 생각되어진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전했다.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라는 섬이었던 것인데 바울의 예언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날도 바울과 같은 투철한 신앙의 정신과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예언하고 그 내용대로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담대하게 전하는 사역자들이 요구되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과 기도제목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본문성경 개역개정)
일본 Togane Home Church 이응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