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감사합니다!
알렉산더 화이트 목사님은 항상 감사하는 분입니다. 그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 합니다“라는 말로 주일 설교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목사님이 계시는 곳은 날씨가 항상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입니다. 한 성도는 이런 의문을 품었습니다. "오늘같이 날씨가 지독하게 나쁜 날 목사님은 과연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그러나 화이트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오늘 같은 날씨를 매일 같이 주시지 않음을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인사말
우리말에서 자주 쓰이는 인사말 “감사 합니다“ 동의어로는 ”고맙습니다“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맙다” 보다 “감사하다”가 더 공손한 표현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으나, “고맙다”는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뜻이며 “감사하다”는 “고마운 마음에 (선물 등으로)사례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는 것 없이 말로만 “감사하다”고 한다면 인사치레에 불과한 것이 된다. 후자 “고맙습니다”를 더 많이 쓰는 것은 한자어를 더 좋은 표현으로 쳐 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뉴스 마무리에 앵커들이 늘 하는 인사가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고맙습니다."인 것도 한글 사전적인 위의 이유들로 인한 것이다.
성경의 “감사“
성경은 하나님께 대해 백성들이 가지는 태도로 나타난다. 구약성경의 감사는 히브리어 “야다(yadah)”로 “고백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의미로 쓰일 때 목적어는 하나님이다(창 29:35, 스 3:11, 시 33:2, 사 12:4). 그러므로 기독교에 있어서는 특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의 물심(物心)의 표현을 말한다.
따라서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감사로서,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감사(행동)이고(시 95:2), 노래로서(시 95:2), 또는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로서 감사한 마음이 표시되었다(시 54:6).
신약성경의 감사는 헬라어로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인데 이 단어는 두 번(눅 17:16, 롬 16:4)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친히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신 것이 보여져있고(마 11:25, 요 11:41), 감사의 중요성이 가르쳐져 있다(눅17:16, 18).
또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습관에 따라 최후 만찬 때도, 잔을 가지사 사례하여 이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셨다(막 14:22,23). 또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권면하였다. 그러므로 감사는 기독교인이 가져야할 제일 중요한 덕목이다.
한편 “감사드리다”라는 말은 식사 전에 드리는 축복기도나 성만찬의 용어로도 사용되었고(고전 11:24) 2세기에는 “유카리스티아”란 말이 성만찬 예식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통용되었다. 그러나 성경에 말세의 징조, 즉 “마지막 날들의 위험한 때”(KJV/흠정역) 특징은 “감사하지 않으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배신하며, 사나우며, 쾌락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한다.”(디모데후서 3장 1~4절)고 기록되어있다.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림으로 그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감사로 시작된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마치는 삶, 그것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의 감격스러운 삶이다. 감사는 비단 우리가 이 세상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는 미래의 세상에서도 영원히 있을 것이다. 시작과 끝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감사로 이루어져있다.
무엇을 감사하란 말인가?
그렇다면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인가? 흔히 아플 때 감사, 외로울 때 감사, 힘들어도 감사, ... 하며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다. 잘못하면 아픈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사업이 망한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가정에 불화가 생긴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라는 뜻으로 들리기 쉽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으니 그게 그런 뜻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처럼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곤경에 처하거나 고난을 당했을 때 저지르기 쉬운 두 가지 잘못이 있다. 그 하나는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불행을 내리셨다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품어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만 이 모든 고난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엉뚱하게 감사드리는 것이다.
감사는 현실을 감수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반전시키는 기적의 시작이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 한 밤중에 “오 주여 우리를 옥에 가두셔서 이렇게 교훈을 주시니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그들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날도 우리를 그의 영원하신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면서 하나님을 높여드려 찬양하고 감사했다.
감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모든 것이 다 실패하고 가장 절망적일 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어떤 분이 “하나님은 절대로 빚을 지지 않으신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실 놀라운 일들에 대하여 미리 감사하고 찬양 드리면 하나님은 그저 감사만 듣고 돌아서실 수 없는 분이시다. 또한 우리가 믿음이 더 필요 할수록 우리는 더 감사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고 우리의 믿음이 더 견고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감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분이시다 라고 이 세상에 선포하고, “하나님이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하실것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이 이루어질 것이다.
감사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존재할 수 없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자신은 분명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선뜻 대답하기 어렵고 신학적으로도 많은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질문이기도하다.
그러나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여러 가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내 입술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넘치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하여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감사가 내 마음 속에 있다면,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라고 믿는다.”
그렇다! 감사는 크리스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는 크리스천은 존재할 수 없다.”
[시편 136편 1~5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