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존재 증명과 믿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될 수 있는가? 중세의 유명한 스콜라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지은 명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다섯 가지 논증(quinque viae)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운동으로부터의 논증(via ex motu) 또는 능동인으로부터의 논증(via ex causa)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존재한다. 그런데 그 움직이게 하는 원인을 역으로 무한대로 찾아가다보면 결국 자신은 다른 무언가에 의해서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다른 것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최초의 원인이 있다고 가정해야 하고, 자신은 다른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결과가 아니면서 다른 것의 원인이 되는 최초의 존재를 가정해야 하는데, 바로 그 부동(不動)의 동자(動者)(unmoved mover) 또는 첫 번째 원인(the first cause)이 바로 신이라는 논증이다.
이러한 논증이 신의 존재를 믿는 자들에게는 확고한 논증으로 비쳐지겠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먹혀드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자들은 개념으로부터 존재를 논증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논리적으로 즉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보다 더 크기 때문에 우리의 제한된 머릿속으로 다 집어넣어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 같아도 믿을 수 있는 그런 믿음 말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얻게 될 것이며 그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비록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는 가나안에 1평의 땅도 얻지 못한 상태였고 많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들은커녕 피붙이 하나도 낳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고, 그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창 15:6).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믿었던 아브라함이 어리석은 사람이었는가? 아마도 어떤 사람은 그렇게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것을 믿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사실 우리가 증거를 얻어야만 믿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고, 데카르트처럼 오로지 의심하고 있다(cogito)는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증거가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차피 증거가 없고 불충분한 상태에서 믿고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것은 증거가 없는 것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는 것이다.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증거가 없는 것들을 철석같이 믿고 산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사람들은 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산다. 지금까지 돈으로 행복해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막연히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믿고 거기에 자신을 바친다. 결과는 비참함뿐이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해보지 않고 무턱대고 믿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배반하지 않으셨다. 증거를 하나도 보여주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온 세상에 널려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여기저기에 어머니의 사랑이 널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침 밥상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집에 들어오기까지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라고 한다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논리적 증명은 불가능하지만 것은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확실한 것처럼,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우리를 사랑하고 계심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