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의 따뜻한 밥상]
그것이면 충분 합니다!
따르릉~~", "따르릉~~" 토요일 오후에 주보를 맞겼던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주신 내용 중에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제목이 빠졌더군요? 설교제목 좀 알려주십시오." "그렇습니까? 제목은 “주는 나의 목자시니...” 입니다." 그러나 이상하다는 듯이... 평소에 설교제목을 길게 쓰시던 목사님 때문에 한 번 더 인쇄소 직원은 물어 보았다.
"그것뿐입니까?"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목사님은 약간 늦게 도착하셔서 어제 준비한 설교를 하기위해 강단에 올라서서 시작하려는데... 설교제목이 이렇게 씌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주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어딘가에 크게 충격을 받으신 것처럼 목사님은 계속 이 제목을 몇 번씩 되내이고 계셨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결국 목사님은 눈물이 계속 흘러 더 이상 말씀을 하지 못하시고, 그 예배는 온통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너무 많은 그리고 . . .
특별히 올해 사순절 기간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IS의 참담한 인질들의 살해 현장을 뉴스로 혹은 SNS로 접하면서 기독교인에 대한 오해로 증폭해 가는 미움과 증오의 실체를 목격하게 되어 많은 것을 생각해야했다.
또한 3월 30일부터 4월 4일 토요일 까지는 고난주간이며, 바로 다음날 맞이하는 주일은 "부활주일 Palm Sunday "로 전 세계 기독교 국가(카톨릭포함)들은 거대한 행사와 함께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한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부활주일의 의미보다는 그져... 휴일로써 가족들과의 만남과 외식, 선물교환의 의미에 더 부여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부활절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히브리사상을 선호하는 분들은 아예 부활절을 헬레니즘의 사상에서 도래한 카톨릭의 남은 잔재로써, 심지어 태양신 숭배 기원인 “Sunday“를 주일로 지키는 것조차 못마땅하다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고 엄밀하게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타당성이 있는 문제로 제기 될 수 있으나, 성경의 어느 한 구절이나 한 가지 맥락으로 볼 때는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말씀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어느 것 아무에게도 제제를 받으실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경건치 못하여 빠르게 변하는 이 세대 앞에서 옳고 그름만 따진다면 복음의 진전은 이루어 질수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 안에서 자유를 가진 자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안에서 자유를 가진 사람들인데, [고린도전서 9장 19절~27절]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고 했다.
즉 복음을 전하려면 자기체면 다 세우고 고상한 인격 유지하지 못한다. 종의 자리로 낮아져 자존심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접근해야 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또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다고 유대인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 된 삶을 살았지만 율법 없는 이방인에게도 접근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어서 약한 자들 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되어 아무쪼록 그들 중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노력했다.
본질을 떠난 가여운 사람들....
이 본질을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말씀 위에 교리와 마리아를 올려놓고 숭배하는 카톨릭은 기독교가 아닌 이방종교이다. 또한 교황의 호소로 조직된 십자군(十字軍, 라틴어: croisade)은 역사적으로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여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진 대규모의 군사 원정이다. 하지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십자군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은 1099년 ~ 1187년 및 1229년 ~ 1244년뿐이었다.
이후 20세기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당시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십자군은 의로운 군대로 이 전투는 성전(聖戰)이 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세계의 여러 나라들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 문화권이었던 동방정교회의 나라들까지 공격해 들어간 침략군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십자군 운동은 처음의 순수한 열정과는 달리 점차 정치적, 경제적 이권에 따라 움직이면서 순수함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교황은 교황권 강화를, 영주들은 영토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등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성향이 반영된 전쟁이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용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이슬람의 지하드는 무함마드와 꾸란의 가르침에 충성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을 일으킨 카톨릭을 이방종교로 보지 않고 기독교라는 오해로, 이슬람 지하드는 성전(聖戰)이라는 명목으로 기독교인을 표적으로 삼아 무참하게 살해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너무나 참담하여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어떠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을 지라도, “주는 나의 목자시니.... 이것이면 충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여정은 오직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 사람들이 보기에는 비록 좁고 협착하나, 복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음 전도자의 기쁨과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건강도, 나의 생명도, 나의 삶도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우리에게 매일 순간마다 있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속에서도 이런 고백이 나오길 기도해 본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