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는 성탄절과 사순절과 부활절과 성령 강림절이다. 이 네 가지 기독교 신앙의 중심적인 사건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사건이다.
선지자 이사야가 중점적으로 예언한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었고 사도 바울이 중점적으로 언급한 사건도 십자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사53:5,고전2:2,갈6:14). 그래서 기독교는 그 초기부터 사순절(Lent)을 가장 뜻 깊은 절기로 지켜왔다.
물론 사순절을 강조해서 지켜온 것은 로마 천주교회이고 한국에서는 영락교회를 비롯한 통합측 교회들이다.
1. 우선 사순절에 대한 사전적 해설을 여기 옮긴다.
“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 금식하며 속죄하는 동안.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시험 받은 일을 기리기 위해 금식하며 속죄한다.” “예수의 수난을 기념하여 일요일을 뺀 부활절 전 40일 동안 금식정진을 하는 기간으로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2월 또는 3월에 시작된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에는 죽음과 참회를 상기시키기 위해 성회(聖灰)로 이마에 십자를 그린다.
이 시기의 주일은 사순 제1주일이라 부르고, 제6주일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Good Friday)’이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예수의 광야의 시험, 노아의 홍수, 모세의 광야에서의 방황 등 그리스도교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숫자이다.”
2. 사순절의 역사적 유래와 전통을 좀더 상세히 살펴본다.
“사순절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며,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행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다.
그후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식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의식과 절차들을 폐지 또는 간소화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져서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다.
사순절에는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다. 사순절의 첫째 주일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시험 받으셨음을 생각하며 지낸다. 둘째 주일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것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 셋째 주일은 빛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인 사단과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말씀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 넷째 주일은 오병 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것으로 말씀을 삼는다. 다섯째 주일은 고난 주일로 지킨다. 여섯째 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종려주일로 지킨다.”
3. 한경직 목사는 사순절을 중요하게 여기며 엄숙하게 지켜왔다.
한경직 목사의 삶과 사역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특징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깊은 영향을 받은 성 프랜시스의 가난과 청빈과 고통의 삶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한경직 목사는 고난과 약함의 사람이었고 참회와 회개의 사람이었으며 기도와 눈물의 사람이었다. 아니 이전의 우리 신앙의 선배들도 거의 모두 그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경직 목사가 사순절에 한 설교들 중에서 일부를 여기 옮긴다.
“부활 주일 전 약 40일 간을 옛날부터 렌트 혹은 사순절이라고 해서 특별히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 있어서의 최후 40일 간의 고난의 생애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적 생활에서 특별히 중요한 몇 가지 사건을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은 특별히 기억할만한 일입니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일도 특별히 기억할 일입니다….” (1971년 2월 28일)
“지금은 사순절 기간으로서 주님의 최후 주간의 말씀을 하나 생각하고자 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여기에는 땅에 떨어지는 밀 하나를 통하여 자기가 장차 걸으려는 길을 말씀하시며 우리가 또한 꼭 배워야 할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곳에 면류관이 없습니다. 희생이 없는 곳에 열매가 없습니다….” (1971년 3월 7일)
“우리는 이 사순절에 신령한 눈을 들어 발을 씻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분명히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학식보다는 이 정신을 먼저 배워야 하겠습니다….” (1971년 3월 14일)
“사순절을 당해서 오늘 아침에는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앙망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세상 죄를 홀로 지신 어린양의 고민과 애통을 우리는 여기서 봅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에 기도 실을 좀 자주 방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71년 3월 14일)
“이 주간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의미 깊은 수난 주간입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고 우시며….’ 여기에서 우리는 애통의 왕, 눈물의 왕, 통곡의 왕, 탄식의 왕의 모습을 봅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로 인하여 그의 가슴은 터졌고 그는 피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죄인에 대한 그의 긍휼, 그의 자비, 그의 사랑, 그의 애통은 결국 그를 골고다로 인도한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그 피의 마지막 방울까지 흘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만민을 정복하고 만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1971년 4월 4일)
4. 사순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우리가 신앙 생활을 균형 있게 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전통과 형식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전통과 형식을 무시하고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인 동시에 역사적인 종교이고 교회라는 제도와 의식을 지니고 있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네 가지 절기 중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를 기념하는 사순절은 가장 의미 깊은 절기라고 하겠다.
극단적인 세속화와 극단적인 주관화에 사로잡힌 오늘의 한국교회는 베드로의 뒤를 따라서 십자가도 고난도 수난도 싫어하게 되었다. 부흥과 축복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사순절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지키므로 십자가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
사순절 기간에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특별 ‘기도’(특히 새벽기도)와 ‘말씀’을 중심으로 ‘회개’와 ‘금식’과 ‘절제’와 ‘자선’을 힘쓰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면 보다 기쁘고 은혜가 충만한 부활절을 맞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지노라”(갈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