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마르다“ [요한 19장28, 시편 69장 21절]
윤 사무엘 목사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이제 두 주 후면 부활절입니다. 다음주일은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사순절을 잘 보내고 계시나요? 남은 기간 동안 더욱 철저하게 경건생활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십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 16:24)에서 하신대로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길은 (1) 자기를 부인하라(deny myself) (2) 자기 십자가를 져라(carry my cross) (3) 주님만 좇아라 (follow Jesus Christ). 매일 매순간 이를 기억하며 주님을 닮아가는 이번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 “내가 목마르다“
오늘은 다섯 번째 말씀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하신 말씀, “내가 목마르다.I am thirsty”(요한 19:28)입니다. 이때 주님은 벌써 6시간 가까이 십자가에 달려계시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더구나 팔레스틴의 낮 기온이 덥습니다. 주님의 이 타는 목마름은 당연히 우리가 당해야 할 기갈을 당하신 겁니다.
지옥은 최악의 목마름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부자가 지옥 불에서 고통당하며 아브라함에게 품에 있던 나사로를 보내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지옥 불에서 물 한 방울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그토록 고통스럽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대신 우리가 목말라하는 고통을 당하셨기에 이제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보장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옥 갈 일이 없기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내 대신 주님이 다 당하셨습니다.
일찍이 예고하신 말씀이 오늘날 성취되었습니다. 사막이나 건조한 곳에 가면 갈증이 심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에 들어왔을 때 사흘 길을 행했지만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라’(쓰다 bitter)에 이르렀으나 그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해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모세는 기도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져서 마실 수 있는 생수로 변했습니다, 이 나무는 주님의 십자가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들어가면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달라지고, 실패가 성공으로 화합니다. 목말라 고통하던 백성들과 짐승들이 흡족하게 마시게 되었습니다. 마라의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이 엘림(Elim)에 이르니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어 그 물 곁에 장막을 쳤습니다(출 15:27).
르비딤의 반석은 예수님의 예표
물이 없다면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여행 중에 물이 떨어지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사막에서 물이 고갈되면 마지막에는 자기가 타고 온 낙타의 혹을 통해 갈증을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에서 흐르는 보혈, 손과 발에서 흘린 보혈,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 19:34) 그래서 예수님은 다른 죄수보다 더 빨리 운명하신 것입니다. 더 갈증이 난 것입니다. 극도로 목이 마르신 것입니다.
엘림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를 통과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지만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기도 대신에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으며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 17: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호렙산 반석 위에 올랐습니다. 반석을 치니 바위가 두 쪽 되고 거기서 물이 나는데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이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습니다(출 17:7).
이 사건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1~4)
르비딤의 반석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이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음료를 마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시는 반석(고인돌=예배의 제단)이십니다. 이 반석 되시는 그리스도위에 교회를 세워 주십니다. 그래서 교회의 모퉁이돌(cornerstone)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한 음료를 우리에게 제공하시기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해 목마르십니다. 희생적인 목마름이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십자가 지시기 전 주님께서는 초막절 끝날 곧 큰 날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38) 하십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사야 55:1) 고 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계 22:17)고 하십니다.
여러분도 영혼의 갈증이 있습니까? 예수님께로 오면 이 갈증이 해결됩니다. “내가 목이 마르다”고 십자가상에서 외친 주님의 절규 속에는 의에 대한 목마름,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우리도 이런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수가성 여인처럼, 몸이 불편하여 성전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예배자가 갈급한 심정을 마치 사슴이 가뭄에 시냇물을 찾는 심정을 표하는 것처럼 영혼의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목마름을 주님께서 대신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주님처럼 목말라하는 이웃에게 진리의 생수를 나누어 주십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하신대로 목 말라하는 자에게 마시우게 하십시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주님은 최후의 재판 시 오른쪽으로 의인을 왼편으로 악인을 구분하시면서, 의인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 25:34~40)
그러나 악인에게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41~46)하셨습니다.
“아, 내가 목마르다”하신 주님의 절규를 들으며 이번 한 주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윤 사무엘 목사 NYSKC 예배회복운동 학회 (Learned Society) 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