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어떻게 사모할 것인가?

by wgma posted Mar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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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을 어떻게 사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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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오후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본당으로 올라가는데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하신 어떤 여자 분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담임목사님이십니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강사 목사님과 함께 오후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라 지금은 시간이 안 된다고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랬더니 대뜸 나에게 물어보지 않는가? “이 교회는 재림을 사모하는 교회입니까?” 질문을 던지는 태도나 억양이 범상치 않아서, 내가 그분에게 물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분의 대답은 이랬다. 현대 교회가 재림을 사모하지 않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단다. 그리고 자신은 재림을 알리고 싶다고도 했다.

다시 그분과 만나지는 못했다. 예배 후에 나는 선교 위원회와 강사 목사님과의 만남 자리에 가야했고, 그 뒤에는 모친상을 당한 성도님을 조문하기 위해서 곧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과 이야기를 한 뒤로 그분이 내게 던졌던 질문이 내 머리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가? 그 질문은 여러 가지로 변형된 질문으로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가? 주님의 재림을 사모해야만 하는가? 주님의 재림을 앞에 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일까? 이 세상과는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사모하든 사모하지 않던, 주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실 것인데, 재림을 사모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재림을 사모한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 교회 성도들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무척 당황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재림에 관한 명백한 가르침들을 꼽으면 이렇다. 첫째, 반드시 주님은 재림하신다. 둘째, 그런데 주님께서 재림하는 때는 아무도 모른다. 셋째,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그 날을 기억하며 대비해야 한다.

재림과 관련하여 우리 가운데 널리 알려져 있는 잘못된 생각들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을 오해한데서 나온 생각들이다. 첫째,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면 그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며, 현재 미전도 종족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그 미전도 종족이 하나도 없도록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전 세계적인 선교가 재림을 앞당길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마태복음 24;14에서부터 비롯된 생각이다. 이 구절만 따로 생각하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때에는 끝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쉽지만, 사실 이 구절의 문맥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24장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여러 가지 징조들을 말씀해 주셨다. 그 가운데에는 난리와 전쟁과 기근과 지진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징조들이 있다고 해서 끝이 바로 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6)고 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다(마 24:8).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끝은 금방 오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마 24:14). 이 표현은 그러니까 복음전파가 모든 민족에게 이르게 되면 끝이 온다는 종말의 스케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그렇게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표현인 것이다(cf. 벧후 3:8-9).

둘째, 재림을 대비하기 위하여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러니까 현 세상에 대한 애착은 다 버리고 오직 재림만을 간절히 고대하면서 있으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하게 될 영광의 그날을 소망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옳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실 그 영화로운 것을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성도들은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백하였다(계 22:20).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것들을 다 포기한 채 오직 그 나라가 도래하는 것만을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다. 종말의 때를 묻는 성도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주님과 더불어 변화산 상에서 초막을 짓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 하던 베드로에게 그 청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 산위에서 내려오셨다. 아무리 천국이 좋고 멋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을 포기하고 저 천국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사명이 있다. 마치 달란트를 부여받은 종들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기만 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땅 속에 감추어두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을 것이다.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언제 오시든지 상관하지 않고, 아직 주인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 속에서는 그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남겨야 한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고하고 결산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믿는 사람이라면 지금 재림만을 간절히 기다리며 이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믿기 때문에 지금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혐오스러운 곳이어서 빨리 떠나야만 하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좋다고 선언하셨다. 이 세상은 사탄의 창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비록 인류의 타락으로 인하여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곳으로 변하였고, 땀을 흘려야만 하는 고통을 제공하는 곳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물임에는 틀림없어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다(시 19:1). 이 세상에 하나님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파송하셨다(벧전 2:9).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

물론 이 세상 재미에 쏙 빠져서 이 세상의 끝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잘못이다. 그 옛날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전혀 종말에 대비를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갑자가 홍수가 내렸을 때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만일 우리도 이 세상의 재미에만 쑥 빠져 지내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때 우리가 애지중지하던 재물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재림을 의식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고, 또한 사모해야 한다.

하지만 재림을 사모하는 것은 이 세상을 등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주님의 재림을 확신하는 사람들은 현재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맞다. 현재의 삶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재림 때에 어떻게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는가? 주님의 즐거움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주어진 달란트를 가지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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