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의 종류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라고 한다.
쓴맛은 혀의 제일 안쪽 부위,
신맛은 혀의 안쪽 양옆 부위,
짠맛은 혀의 바깥쪽 양옆 부위,
단맛은 혀끝에서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맛이 있다.
바로 ‘감칠맛’ 혹은 ‘계속 먹고 싶은 맛’이다.
사실 혀의 모든 부위에서 앞서 말한
네 가지 맛이 느껴지기는 하나,
‘특정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위’들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네 가지 맛으로 맛을 제한한다면
또 다른 맛을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혀로 느끼는 맛처럼
다양하고 복합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맛의 세계보다 더 다양한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닌가 한다.
때때로 인생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에
스스로의 생각을 가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넘어
또 다른 가능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큰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대안을 찾아 나선다.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에 대해
다른 사람과 환경을 원망한다.
그리고 이 문제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희망적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절망과 포기지향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젊었을 때에는
나이가 들지 않아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문제 속에 갇혀 문제아가 될 수 있다.
몇 년 전 찍은 사진과
최근에 찍은 사진을 보다가
자신이 왜 이렇게 나이 먹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는지
고민하는 한 남성을 만났다.
그는 과중한 업무로
탈진 상태에 이르러 낙심하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와 의미,
가능성조차 외면하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보지 못한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자
그는 미소를 되찾았다.
인생은 선택이라고 한다.
우리는 ‘둘 다 얻을 수 없고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내가 선택한 50%를
100%처럼 생각하며 살려 하지 말자.
내가 미처 선택하지 못한 또 다른 하나가
아직 내 주변에 남아 있다.
많은 남자들이
내가 선택한 이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하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체면만 벗어던지면 젊었을 때보다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것이다.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나머지 하나를 생각하며 살아 보자.
선택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인생을 살자는 게 아니다.
얼마 전
동작대교로 노을 풍경을 촬영하러 갔다.
항상 그렇듯이
맞은편에 구도를 잡고 셔터를 계속 눌렀다.
동행한 한 사진작가가
다른 것들도 촬영해 보라고 제안해
주위를 살펴보게 됐다.
그 덕분에 이전 사진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머지 하나가 있고,
다른 또 하나가 있다.
내 삶은 항상 또 다른 하나,
나머지 50%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인생이다.
이 나머지 하나를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보다 여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 옮겨 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