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 바로 읽기 5
요한일서 3:8, 히브리서 2:14 예수님이 오신 목적?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 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한일서 3: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 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브리서 2:14)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마귀를 멸하려 오셨다고 주장함으로 이단의 소리를 듣는 집단들이 있다. 이러한 이단 중 대표격이 귀신파라고도 불리우는 베뢰아파가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성구가 요한일서 3:8이다. 히브리서 2:14은 요한일서 3:8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절이고 히브리서 2:15은 이들이 마귀를 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행하는 지침서가 된다. 당연히 그들은 성경에서 그리 말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 이들의 주장을 이 성구들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가?
요한일서 3:8은 마귀의 일(죄와 죽음)을 멸하려 오셨다고 했다.
성경적 이단이 있다. 이들은 성경적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교리적으로 말하지 말고 성경적으로 말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성경을 무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자주 성경에 쓰여진 본래의 의미를 무시하고 번역된 언어에 충실하게 따른다.
요한일서 3:8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한다고 했지 마귀를 멸한다고 하지 않았다. 마귀의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3:4은 죄는 불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5절은 “그(예수님)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조심하자. 마귀=죄 가 아니라 마귀의 일=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이는 8절에서 “죄를 짓는 자”라고 동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계속 이어가 보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귀의 일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었다. 더 나아가 마귀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와 같이 만든 것이다. 범죄자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세기 3:6에 보면 여자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함께 자신의 범죄에 동참하도록 한다.
사탄 또는 마귀가 범죄한 결과 그들은 영원한 흑암에 가두어졌으며(유다서 1:6), 마침내 사탄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요한계시록 20:10). 사탄은 인간도 자기와 같이 지옥으로 가는 일에 동참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귀의 일이다. 결국 마귀의 일은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창조된 인간을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로 만들어 영원히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삶을 죽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귀의 일인 죽음을 멸하고 다시 하나님과 교제 곧 생명을 회복하고자 예수님은 오셨다. 이를 성경의 요절이랄 수 있는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함이니라”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귀를 멸하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영생(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인간 구원이 목적이지 마귀를 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사탄이란 의미는 대항자이고 마귀의 의미는 파괴자이다. 그럼으로 마귀의 일은 하나님께 대항하여 지옥이라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가는 일이다. 그런데 인간 역시 마귀가 저지른 일을 똑같이 행하고 있다. 마귀 때문에 인간이 그냥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저질렀던 그 일을 마귀의 유혹에 빠져 인간도 똑같이 저지르고 있던 것이다. 이 말은 아담이 지었던 그 원죄를 나 역시 똑같이 저지르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아담이 저지른 원죄 때문에 내가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아담이 진 원죄를 지음으로 나의 죄 때문에 내가 죽게 된 것처럼, 인간이 마귀가 아닌 인간 스스로 마귀의 유혹에 빠져 마귀가 지은 그 죄를 지음으로 인간이 지옥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마귀의 일을 멸한다 고 할 때 쓰여진 멸하다 는 의미가 흥미롭다. “매인 것을 풀어주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였다. 마귀는 죄를 지는 것에 언제나 매여있다. 그렇게 마귀는 어둠에 매이고 지옥의 불에 들어가는 심판에 매였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마귀와 같이 죄에 매이고 결국 사망에 매인 바 되었다. 바로 이 매인 것에서 예수님은 인간을 풀어주셨다. 결국 요한일서 3:8에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의미는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풀어주시기 위해서 오셨단 것으로 인간에게 영생(구원)을 주시기 오셨다는 요한복음 3:16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히브리서 2:14은 마귀(죽음)를 무효화 한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의 목적을 마귀의 일이 아닌 마귀를 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자들이 내세우는 성구가 히브리서 2:14이다. 여기에는 분명히“마귀를 없이하시며”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절도 제대로 읽는다면 그들이 이 구절을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들어난다.
마귀라는 말의 의미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파괴자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파괴는 2:14의 전후 문맥을 보면 죽음과 연관된다. 마귀는 죽음의 세력을 가졌다. 이는 마귀가 죽음의 주관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마귀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여 결국 죽음이라는 선고를 받게 한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마귀라는 의미는 죽음이라는 것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여졌음을 본다.
이를 15절에서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인간에게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을 읽게 된다. 그리고 “없이 하시며”라는 본래의 의미가 또 흥미롭다. 이는 “무효화 한다. 소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귀를 없이한다는 것은 죽음을 무효화하여 소멸한다로 해석되어질 수 있다.
곧 예수님의 죽으심은 인간을 죄로 인해 오는 죽음을 소멸시켰다는 것이다. 17절에서는 “죄를 속량하셨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16절을 보자. 성경은 정말이지 이렇게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들 곧 믿는 자들을 말한다. 예수님이 인간과 같이 되셔서 죄가 없으시지만 죄인같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믿는 자들을 붙들려하심 곧 구원하려 하심이지 천사들을 붙들어 주심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이를 마귀와 연결시켜 말한다면 인간을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고자 하심이 목적이지 마귀를 멸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나무의 줄기(본질)를 곁가지와 혼돈하지 말라
곁가지를 마치 본질인양 보게 되면 배나무를 사과나무로 오해할 수 있다. 몸통은 배나무인데 곁가지 중 몇 가지에 달린 과일이 사과처럼 보일 때, 가지에 달린 열매만 보면 그렇게 오해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마귀는 이미 멸해졌다. 마귀는 아예 처음부터 범죄했고 그 범죄에서 돌아설 기미가 전혀 없는, 오히려 인간도 자기와 같이 멸망의 자리에 동참시키려는 의도를 가졌기에 처음부터 지옥의 불구덩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은 마귀에 대해 구원의 손길을 처음부터 펼치지 않았다. 마귀는 결코 멸망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것이기에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구원받을 기회를 주시기로 한 것이다. 인간 구원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의 본질이다. 마귀는 곁가지다. 인간이 구원받아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마귀는 자연히 인간에게서 물려 갈 수 밖에 없다.
마귀가 멸해지니까 인간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왜 예수님을 믿는가에 대한 질문과 같다. 인간은 착해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게 되니 착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질을 곁가지와 혼돈하지 말라.
예승장로교회 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