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by wgma posted Apr 07, 2015 Views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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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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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이 말씀하는 복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이란? 어떤 것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사전에서 말하고 있는 복의 의미는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것을 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복을 예로부터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복이라는 말을 많이 표현하면서 살아왔다. 심지어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 중에 옷, 베개, 숟가락 등에 ‘복’(福)자를 새겨 넣을 정도로 모두가 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복을 좋아하고 복 받는 것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과는 거리가 먼 생각 속에 많은 사람들이 헤매고 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저주

복과 반대되는 말이 ‘저주’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람, 또는 그렇게 하여서 일어난 재앙이나 불행”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저주라는 말만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민감하게 듣고 있다.

3. 복과 저주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당교회문화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복과 저주가 어떻게 적용되는 것처럼 신명기 28장을 인용해서 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설교자가 저주하면 마치 그 저주가 그대로 자신에게 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전하는 자인가? 듣는 자들인가?. 그래서 복이 무엇인지 또는 복의 계통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성경에 기록된 복과 저주의 숫자

개역한글 성경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숫자적으로 몇 번 기록되었는가를 살펴본다. 먼저 구약에서 복에 대한 내용으로 366번 신약에서 157번 기록되어 있었다. 구약에서 첫 번째로 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창 1:22절이었고 마지막으로 말라기 3장 15절이었다. 신약성경에서는 마태복음4장 23절에 처음으로 나오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기록되어 나오고 있다.

반대로 저주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창세기 3장 14절에 처음으로 나오는 동시에 마지막으로 말라기 4장 6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마태복음 25장 41절에서 처음으로 저주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저주라는 단어가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다.

5. 하나님께서 먼저 만물창조 때 복을 선언하심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는 가운데 다섯째 날에 자연만물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다(창 1:22). 그러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내용으로 복을 선언하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하신 것과 같이 복을 주신 것이었다(창 1:26-28). 모든 만물이 복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들이 함께 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복의 배경을 여러 모양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6. 저주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그리고 저주라는 단어는 그렇게 어감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왜 저주라는 말이 나와야 했던 것인가? 그 이유는 여자를 유혹해서 하나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신 동시에 창 3장 14절에서는 뱀에게 유혹을 받아서 열매를 따먹게 한 뱀에게 ‘저주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7. 복과 저주라는 단어들

신약에서 복이라는 숫자가 207번 나오고 있는데 처음에는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시작해서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서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라고 했다. 그리고 저주라는 단어는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 3절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라고 했는데 범죄로 말미암아 상실되었던 에덴동산의 축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하늘에서 성취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성경에서 복과 저주에 대한 분명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분명한 영적주소를 둔 모든 백성들은 현재 내가 어디에 속해 있으며 미래적으로 어떤 곳에서 복을 누리면서 저주와 상관없이 지낼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8. 신명기 28장에 나타난 복과 저주

일반적으로 복과 저주에 대해서 신명기 28장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 중에 일부분을 읽어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신 11:26-29)고 하신 말씀에서 창조주 하나님만 섬기고 말씀에 순종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9. 복과 저주를 가볍게 생각하는 착각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복은 받기 쉽다고 가볍게 생각한다. 그리고 복은 자리를 잘 잡으면 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또한 복은 주시는 분의 특권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은 주실 분과 함께 생활하면 자연적으로 받는다는 이론들이 과연 바른 이야기인가?.

반대로 저주 받기 쉽다. 저주는 저주를 받을 자리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저주 받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또한 저주 받을 행동을 하면 저주가 따라온다. 그리고 저주를 주는 사람과 함께 하면 거절해도 따라온다고 하는 것도 과연 그럴 것인가?. 옛 말에 제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어진다고 한다는 말이 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들이 아닌가?

10. 복과 저주받은 마음들

복과 저주는 항상 갈등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게 하다가 웃음을 주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인생을 즐겁게 하다가도 슬프게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그래서 사람들은 복을 좋아하면서, 삶의 모습은 저주에 더 가까운 언행을 거침없이 하기 때문에 들어온 복도 놓쳐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11. 모두가 원하는 복

지구촌 인생 모두가 원하는 것은 복이다. 그러면서 원치 않는 저주를 받고 있다면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 탓도 아닌 내 속에 있는 죄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와 더불어 싸워 이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영적 전쟁을 하고 있다. 세상적인 복은 일시적이고 쾌락적이고 아침 안개와 같고 뜬 구름과 같고 이슬과 같은 것을 복으로 잘 못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기복신앙으로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결코 세상적으로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을 경제적이고 명예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영원히 썩찌 아니할 영생의 복(시 133:3)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영육에 복을 받아 누리면서 살다가 죽음 후에 그리워하던 영생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자들도 있다.

12. 다윗이 받은 진정한 복의 내용

성경에 인물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인 다윗은 언약의 씨(후손)를 이어가도록 선택받은 자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언약 속에 있었던 내용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13. 언약의 복

성경에서 말씀하는 ‘언약의 복’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실 때에 복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이 물질적인 복을 말씀하신 것이 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아브라함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가난한 자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야곱이 하란까지 가서 고생해서 얻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채워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언약의 복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 대한 약속을 복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만 한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후손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언약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3-4)라고 하였다.

14. 신령한 복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었기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된다(갈 3:7, 9)고 한 말씀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신령한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선택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 받은 그것이 신령한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고 선포하시고 팔복을 말씀하시며 그 복이 곧 천국임을 밝히셨다(마 5:3-10). 시편에서도 이미 복을 영생이라고 언급하였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15. 복과 저주를 언약 안에서 이해하자

결국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복이란 언약 안에 거하게 된 것이고 그것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이 곧 천국인 것이다. 언약의 관점에서 복이 그렇다면 저주에 대한 이해도 언약과 관련하여 이해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저주란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핍박을 하고 나쁘게 만든다는 표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 받지 못한 상태를 말씀한다. 곧 죄 아래 버려져(유기) 있는 상태가 저주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16. 복의 진정한 씨의 약속

아브라함에게 씨의 약속을 하셨고(창 15:3),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희생(롬 5:6,8. 엡 2:13)을 통해 새 언약을 세우신 분이다(눅 22:20). 새 언약을 세우셨다는 것은 또 다른 언약을 새롭게 세우셨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셨던 것을 새로운 차원으로 완성하셨다(요 19:30절에는 ‘다 이루었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새 언약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씨를 품고 있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었다. 다시 말하면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복을 누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복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구원이고 천국이며 영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깨달은 하나님은 바로 이런 하나님이었다.

17. 복중에 복은 구원(영생)의 복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는 그 언약 때문에 구원의 복을 누리는 자이다. 이런 자에게는 사람이 저주한다고 해서 저주가 되는 것이 아니다. 죄 아래에서 죄의 권세에 매여 사는 세상의 삶이 저주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덮어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다. 예수는 그리스도로 믿어진다면 이미 복을 받은 자로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자가 아니라 복을 비는 자로 살아가게 된다.

18. 복을 말씀하신 분이 누구신가?

그래서 사람들의 저주가 우리에게 저주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신 십자가라는 저주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저주가 오히려 복으로 임하게 된 것이다.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과 저주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을 말씀하신 분이 누구신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언약의 성취자로서 언약의 복 그 자체가 되신 것이다.

19.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복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복을 누리는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비는 복이나 혹은 비난, 저주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님과 깊은 영적교제를 계속적으로 이어가는 복을 누려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주님이 말씀하신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 8:31, 15:7)라는 말씀을 잊지 말고 묵상하면서 세상에서 얻을 수없는 복을 받은 자로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바란다(고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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