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와 해방

by wgma posted Apr 28, 2015 Views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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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와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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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1. 정죄하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아무리 오랫동안 수련생활하고 종교생활하면서 종교인으로 살아가도 정죄하는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비판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일반 사회인들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게 하는 일들로 각가지 질병으로 연결되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패인으로 만들어 버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정죄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정죄(Condemn)란 죄가 있는 것으로 판정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의 정죄는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기초한 것으로 구약은 대부분 율법을 어겼을 때 그에 상응하는 죄의 결과로 형벌을 받게 되며 분리나 소외, 추방 등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구약에서 정죄당한 자는 제사를 통하여 속죄를 받을 수 있었다(레 4-6장 참고).

그리고 신약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정죄하는 개념이 더 확장되었는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그리고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믿음 여부에 따른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는 말씀에 근거를 둔 말씀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그리고 바울은 “내가 정죄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로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후 7:3)고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어느 누구도 송사할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용서와 칭의를 선포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라고 했다.

이렇게 정죄에 대한 내용가운데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을 때 심판의 대상이 아니고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설교를 하고 듣고 생활하면서 쉽게 상대방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자기 기준에 맞추어서 정죄하게 된다. 아주 가볍게 아무런 생각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정죄해서 죄인으로 취급해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앙생활에 자기와 공통분모가 없을 때 가볍게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모독과 함께 정죄하게 되는 데 그것이 죄 인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나 혼자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신앙의 교만을 가진 자들이 범하는 죄가 아닌가?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이라는 신앙의 현주소를 강조하는 내용들을 서신서에 수 없이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경에 그리스도 예수 혹은 예수 그리스도 라는 표현이 226번이나 반복되어 나오는데 대부분 바울 서신에서 강조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고 보여진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내용으로 시몬 베드로와 같이 신앙고백을 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1-12)라는 말씀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비방하고 질투하고 판단하고 저주하고 정죄하는 일들이 교회당 교회 문화 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정죄하는 일을 그만하고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마음도 정신도 몸도 깨끗하게 즐겁게 자유롭게 서로 서로 협력하면서 원만한 이해를 하면서 상조상부하는 모습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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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해방된 기쁨을 마음껏 누리자

두 가지 면에서 '법'에 대해서 볼수 있다. 하나는 생명에 대해서 다른 하나는 사망에 대한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하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죄와 사망의 법’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강한 능력이 있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모습을 연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생명(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에 운동력(히 4:12)이 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위대한 폭탄과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죄라는 어두움의 세계에 갇혀 있을 때 두렵고 공포가운데 떨면서 무서워하고 있기 때문에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죄와 사망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이다. 외모로는 형태가 있다 할찌라도 내적으로는 아무런 기식도 없고 사지백체가 있어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의 승패는 이미 끝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법아래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도움이 항상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방(Freedom)에 대한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해방이란 몸과 마음의 속박이나 제한 따위를 풀어서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안식년(출 21:2-4)이나 희년(레 25:10, 39-41, 47-54)이 되어 종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을 의미할 때 사용되었다(레 19:20). 율법에는 종을 사면 6년 동안은 부리지만 7년이 되는 해에는 해방시켜 주도록 규정하고 있으며(출 21:2) 종이 자유하기를 거절하면 귀를 뚫어 표를 삼고 영영 종의 신분으로 주인을 섬기게 하였다(출 21:5-6).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고’라고 했다(롬 6:18)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오늘 말씀에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했다(롬 8:2).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아니면 그리스도밖에 있느냐 하는 분명한 담이 놓여져 있다. 그 뚜꺼운 죄와 사망의 담을 헐어버리는 방법은 오직 십자가외에는 없다. 그래서 십자가는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부활이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래서 생명이 살아 있다는 증거로 부활하신 것인데 그 속에는 생명이 있었다는 증거로 나타난 것이다.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해서 바울은 견해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그래서 사도 바울이 외치는 내용가운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여기서 양심의 본심을 고백하면서 육체의 싸움에 지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와 허물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결코 기쁨과 즐거움과 노래가 없다. 다만 탄식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인생들의 모습이다. 부정적인 표현으로 못살겠다. 죽고 싶다. 모든 것이 귀찮다. 심지어 염세주의자로 변해버리고 삶을 포기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제 해방의 종소리가 십자가 건너편에서 부활이라는 모습으로 확실히 보여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진 신령한 축복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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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ogane Home Church   이응주 목사

        E-mail : ungjoor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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