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 질투의 하나님이시라고 한다. 아니 시기나 질투하지 말라고 강조하여 설교할 때는 언제고 하나님이 질투를 하시다니 …. 많은 크리스찬들이 안 믿는 사람들과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은근히 피하고 싶어하는 구절이다. 초심자들이 이 구절을 들고 와서 고개를 갸우뚱하면 믿음의 대 선배인 당신은 “글쎄?” 하며 어물쩡 넘어가기도 한다. 많은 신자들이 모태신앙으로 잘 크다가 믿음에 회의가 생길 때 걸려 넘어지는 구절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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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30 19:56
히브리세계/엘 카나, 질투의 하나
엘 카나: 질투의 하나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신명기 4:24)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방송출연료가 높은 여성 연예인이자 가장 성공한 토크쇼 사회자이기도 한 오프라 윈프리가 그 한 예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철저한 흑인 기독교 집안에서 주일 학교를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어른이 된 후 하나님이 질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회의가 생겨 결국 기독교를 떠났고 ‘뉴에이지’로 돌아섰다고 한다. 관용도 없고 자기 밖에 모르는 그렇게 옹졸한 신을 자기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신은 성경의 하나님보다 더 포용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중에 대한 오프라의 엄청난 영향력을 감안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질투의 하나님을 떠나갔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질투의 하나님은 성경에 어쩌다 한 번 잘 못 들어간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를 여러 번 강조에 강조를 더하여 천명하고 있다. 마치 질투와 하나님은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듯이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출애굽기 20:5)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34:14)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신명기 6:15)
자 그렇다면 오프라처럼 되지 않고 믿음 생활을 계속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이렇게도 중요한 하나님의 질투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먼저 질투를 뜻하는 히브리어의 어원을 통해서 그 단어가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질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카나’이다. 히브리어 철자로 ‘쿠프(ק)’, ‘눈(נ)’, ‘알레프(א)’이다. 그런데 이 단어를 하나님에 대해서 사용할 때는 ‘눈’에 강조점(다게쉬)을 찍는다 (אֵל קַנָּא).
카나의 어근은 ‘쿠프’와 ‘눈’이다. ‘쿠프’의 고대 상형문자는 마치 지평선에 해가 반쯤 걸린 모습이다.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여기서는 석양 빛이 지평선을 넘어가는 태양 주위에 모여있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흩어지지 않게 모으는 것을 뜻한다.
한편 ‘눈’의 고대 상형문자는 마치 발아하는 씨앗과 같아서 씨앗 또는 생명을 뜻한다.
그래서 카나의 어근은 씨를 보호하고 잘살게 하려고 무언가를 열심히 모아오는 것을 그린 것이다. 마치 어미 새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새집을 지어 새끼를 잘 보호하고 먹이를 열심히 물어다 주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파생어 중에서 ‘카난 ‘(쿠프, 눈,눈)은 둥지를 짓다는 뜻이며, 카닌 (쿠프, 눈, 여드, 눈)은 열심히 모아 얻은 재산 및 재물을 뜻한다.
따라서 카나의 어근은 무엇인가를 얻는것과 관련이 있다. 또 보금자리가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그 안에 있는 것을 감싸 보호해주는 것처럼 무엇인가의 안에 속한 것과 밖에 있는 것들과 사이에 확실히 경계를 그어주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생명을 보호하고 영원히 보존하려는 강한 열망이 그 안에 있다.
그래서 성경은 카나를 ‘질투’(jealousy)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강한 ‘열망’ 혹은 ‘열심’(zeal)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에스겔서 39:25).
성경에서 그 어근을 찾아본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하와가 가인을 낳은 이야기인데, 이 구절을 좀 자세히 살펴보면 ‘카나’의 의미에 대해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창세기 4:1)
여기서 득남하였다는 단어가 ‘카나’(쿠프, 눈, 헤이)인데 “무엇인가를 얻다; 소유하기 위하여 취하다”의 뜻이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가인’ (히브리어로 카인)이라고 했는데 그 이름도 ‘카나’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하와는 왜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했을까?
“아담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생긴거 아닌가요? 남자의 씨가 잉태가 되었으니 아홉 달 뒤에 자연스레 아기를 낳은 것이 아닌가요? 거기에 왜 하나님이 개입되죠? 하와가 여호와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오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카나는 그냥 누군가가 손에 쥐어준 것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취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카나에 담겨 있는 정신은 비록 그것이 합법적으로 자기 것이라도 저절로 자기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나서서 그 권리를 주장하여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네가 수고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셨고, ‘여자의 후손은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으니 당연히 언젠가 아들이 나와야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하와는 그 약속된 아들을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얻어야 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아무도 아기를 낳은 적도 본적도 없었던 그 상황에서 아무리 명색이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하와라 할지라도 인간이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사상 초유의 기적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데는 엄청난 믿음과 집념이 필요했으리라.
과연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까? 과연 뱃속에 꿈틀거리는 생명이 몸 밖으로 나와 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마치 마리아가 인류 최초로 처녀 수태하리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와도 인류 최초의 수태와 출산을 감당해내는데 큰 믿음과 마음 졸이는 기다림과 생명을 위한 열망, 즉, ‘카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산고를 치르며 온 몸이 땀에 젖은 하와는 정말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감동에 북받쳐 내가 정녕 여호와로부터 약속받은 생명을 얻었도다 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카인’이라고 불렀으리라. 그 ‘카나’에는 생명을 영속시키고, 보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려는 성스럽고 강한 모성 본능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듯 신성한 ‘카나’가 질투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히브리어의 양면성에 있다. 즉, 한 히브리어 단어에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한 단어가 선한 의미로 쓰였다면 그 같은 단어를 백팔십도 돌려 악한 의미로도 쓰일 수 있다. 왜 이런 양면성이 생겼나?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셨을 때 모든 것이 선하고 보기에 좋았더라. 하지만 인간이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결과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이 생기고 말았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과 악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속해서 선택해야만 하며 또 그 선택의 결과를 받게 되었다.
우리의 손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며 얼마나 훌륭한 좋은 것들을 만드는 일에 쓰이는지 모른다. 하지만 동일한 손이 사람을 때리고 죽이는 데도 쓰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카나도 합법적으로 자기에게 속한 것을 취할 때도 쓰이지만 자기에게 속하지 않는, 즉, 남의 것을 취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남이 가진 것을 탐을 내어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강한 열망이 바로 질투이다. 무엇인가를 또는 누군가를 너무 원하여 영원히 오로지 자기 것으로 만들고 독점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 열망이 질투의 뿌리에 있고, 그 뿌리가 또한 ‘카나’이다. 질투는 그 열망이 불법적인 것이 문제이다.
생명을 위한 열망이 그토록 강한 것 만큼이나 질투라는 열망은 인류 최초의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강했다.
가인은 자기 이름에 들어 있는 그리고 자기 속에 있는 그 ‘카나’를 선을 이루기 위하여 쓰지 못하고 그만 악한 것으로 변질시키고 말았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서 8:6)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언 27:4)
성경도 이 질투가 얼마나 강하고 치열하고 잔혹한지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로 이 양면성을 통해서 우리는 질투, 즉, 악한 의미의 ‘카나’가 이토록 강하고 잔혹하고 치열한 것 만큼이나 선한 의미의 ‘카나’도 강하고 치열하고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은 과연 질투의 하나님이실까?
문제는 과연 선한 의미의 ‘카나’, 즉, 의로운 질투가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개념을 이해하려면 먼저 카나는 언약의 용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결혼한 부부 관계가 위협받을 때 질투가 가장 강하고 무섭게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혼인이 피로 맺은 언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가 결혼에 비유되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불륜에 비유한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바로 부부 관계를 불륜으로부터 지키려는 질투에 비유된 것이다.
피로 맺은 언약의 당사자는 언약 상대방의 목숨을 자기 목숨처럼 지키고, 그 가족과 재산을 자기 자신의 것처럼 보호한다. 자기의 이름과 권세와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그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바로 언약이다.
그 언약을 지키려는 강한 정의감과 열망이 바로 카나이다. 카나는 언약을 성취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언약 당사자들을 묶는 동아줄과 같다. 내가 죽을 위험에 닥쳐도 언약의 의무를 지키는 성스럽고 고결한 열망이다. 카나는 언약과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며, 카나가 없으면 언약도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보라. 모든 크리스천이 기대하는 그 날, 즉, 하나님의 예언이 모두 성취되고 정의가 악을 멸하고 천 년의 평화가 도래하는 그 언약의 성취를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운 ‘카나’인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카나)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카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 (스가랴 8:2-3)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카나)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찌라” (에스겔 39:25)
따라서 카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질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인데 반해 하나님의 카나는 자신의 백성과 맺은 합법적인 관계를 모든 침입자와 방해자들로부터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열망과 치열한 사랑이다.
인간의 질투는 ‘죽이고 멸망시키고 도적질하는’ 이기적인 열망이지만 하나님의 카나는 ‘생명을 주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보존하고 번성케 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카나를 이해할 때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사랑의 크고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있고, 그의 강한 품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도 그 분 처럼 의로운 카나의 사람이 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질투를 다 버리고 이제 의로운 하나님의 질투, 카나를 배우자.
글: 안효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카나)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찌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요엘 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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