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바로읽기 11
디모데전서 3:16의 “그”는 누구인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디모데전서 3:16)
성경 중에 가장 쉽게 오해하고 읽게 되는 성경 중의 하나가 디모데전서 3:16이다. 디모데전서 3:16에 나타난“그”라는 대명사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잘못 답한다.
실제로 쉬운성경은 “ 주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보이셨고” 현대인의 성경은“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셔서”라고 번역함으로 “그”를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된 해석적 번역을 하였다.
그런데 KJV 영어성경은 “그”라는 대명사 대신에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KIV 영어성경 참조한 원문에는 “그”가 아닌 “하나님”으로 적혀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16를 정확하게 번역하면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이다. 디모데전서 3:16의 “그”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라는 증거 성구이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 보면“없음”이라고 적힌 성구를 보게 된다. 이는 KJV 영어성경이 참조한 성경원문과 한글성경이나 NIV 영어성경이 참조한 성경원문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차이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차이가 있다.
KIV 영어성경이 참조한 원문은 본래 오랜 동안 보존되고 이어져 내려왔는데,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라는 자들이 그동안 원문이라고 여겨져 온 문서를 비판하고 새롭게 이것이 원문일 것이라고 내어 놓았다. 그리고 많은 성경 번역자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원문을 참조하여 번역하다 보니“없음”이라는 성구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원래 이어져 온 원문에는 삼위일체를 증명할 성구가 분명히 있다. 요한일서 5:7이다.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and these three are one.”
“하늘에 증거하는 이가 셋 있으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라, 이들 셋은 하나니라.”
요한일서 5:7는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분명한 성구이다. 그런데 이 성구를 새로 변개된 원문은 빼버린 것이다. 한글성경에는 단순히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로 적어놓고 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여호와의 증인은 KJV 영어성경으로 논의하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면 삼위일체에 대한 분명한 성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분명히 하나님되심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성구가 바로 디모데전서 3:16이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두고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한 것이다.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요한복음 1:14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변개된 원문은 “하나님”이라는 자리에 “그”라는 대명사를 갖다 놓음으로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가 예수인지 하나님인지 혼돈하도록 했다. 분명히 하자. 디모데전서 3:16의 “그”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16은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보여주는 강력한 성구이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셨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요한복음 1:14도 말씀(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하지 않고 왜 육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을까?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영지주의자들 때문이다. 성경이 기록되고 있는 당시에는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지주의자들이 있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불경건하고 죄악으로 물든 육체를 가질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예수님이 인간과 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되심을 부인한다. 이들 중에는 예수님은 본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이 세례받으실 때 하나님의 영이 들어갔다든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비로소 신성화되었다든지 주장하거나, 영으로는 하나님이지만 육신의 옷을 지상에 있을 동안에 잠시 걸치고 있다고 주장하든지 함으로 하나님이 자신이 온전히 육신을 가진 사람되심을 거부한다.
이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부인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고 강하게 말하고 있다(요한일서 4:1-3). 물질이 본래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도록 창조했다. 인간의 육신 자체가 본래 악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오장육부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단지 인간의 생각한 바가 악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세기 6:5)
성경은 예수님이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온전한 사람이었음을 선포한다. 내적으로든지 외적으로든지 예수님은 온전한 사람이셨다. 그것도 미혹가운데 약해질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셨다.
부인할 수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되신 하나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강하게 선포하기 위하여 사용된 단어가 바로 육신이라는 단어이다.
둘째는 육신으로는 결코 죄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들 때문이다. 여기에서 쓰인 “육”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결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정욕에 사로잡히고 죄를 범하기 쉬운 인간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육”이라는 단어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하시며 인간의 나약한 육신을 인정하셨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시험에 빠질 수밖에 없고 화난이 다가오면 넘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이 똑같이 약한 육신을 가지신 사람이셨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먹어야 했고, 갈증이 나면 물을 마셔야 했다. 그래서 육신을 가진 자이기에 사탄의 시험도 받으셨다.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온전한 사람 곧 시험에 넘어지기 쉬운 육신을 가진 사람이기에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는 육체가 당하게 될 고통을 생각하시면서 고통스러워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매를 맞으셨을 때 고통스러워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갈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예수님이 당하신 육신의 고통이 심해서 일찍 십자가에서 운명하셨기에 다리가 꺾임을 당하지 않고 무덤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은 죄 가운데 무너지기 쉬운 육신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셨다. 그러한 육신을 가지신 예수는 그 시험도 고통도 육신을 가진 채로 승리하셨다. 이것이 기독교의 희망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인간들에게 희망이다. 이길 수 있는 희망! 환난이 다가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희망! 예수님이 그 본이 되셨다. 하나님이시기에가 아니라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승리의 본을 보이신 것이다.
언제까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앉아 있을 것인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셨던(히브리서 4:15)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육신의 정욕에서 다 이겨내진 못할지라도, 때론 넘어질 때가 있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희망을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그리 할 수 있다. 아멘!
예승장로교회 김성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