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무엘 목사[천국에서 큰 사람 마태 18:1~14]

by kim posted May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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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사람 마태 18:1~14]

윤 사무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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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8:3);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


가정의 달

20155월 달은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다음 6월은 호국의 달로 국가를 위한 기도의 달로 지킵니다. 첫 주는 어린이 주일,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 셋째 주일은 청년주일, 넷째 주일은 성령강림주일, 다섯째 주일은 가정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 주일은 꽃주일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1870년 미국의 한 조합 교회에서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예배당을 꽃으로 장식하고 '샤론의 꽃, 어린이'라는 제목으로 어린이 예배를 드린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랍니다.

 

미국의 경우 각 교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들은 이날 꽃으로 예배당을 장식하고, 꽃다발을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등, 꽃과 관련된 행사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Who is the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라고 질문하자,


주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Whosoever therefore shall humble himself as this little child, the same is greatest in the kingdom of heaven." 18:1~3]

 

어린 아이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천국시민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 (18:4~11) 하십니다.

 

어린 아이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실족케 하는 육체의 지체(, , 눈 등)를 제거하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실족케 하는 지체를 가지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혹 연약한 자를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잃은 자, 어린 아이, 연약한 자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음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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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이는 순진합니다(벧전 2:2) - 어린이는 외식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과 감정을 드러냅니다.

 

어린이는 겸손합니다(18:4) - 또한 어린이는 어른들에 비해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겸손합니다.

 

전적으로 의지합니다(살전 2:7) - 연약한 어린이들은 자신들을 돌보는 부모님께 전적으로 맡기며 의지합니다. 믿음이 100%입니다.

 

어린이는 어른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때로 그들의 행동이 어른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동과 결과만 보고 그들을 꾸짖습니다.

 

마가복음 10:13-16에 보니. 주님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설교하시는데 어린이들이 방해가 된다고 하여 그들을 꾸짖어 내쫓았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성인식 남자 13세가 되기 전의 어린이를 무시하며 내쫓아 버리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이해하셨으며 오히려 그들을 불러 앉히시고 앉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왜요? 어린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기초임을 이해하셨습니다 - 건축에 있어 기초가 중요하듯 인생에 있어서도 그 기초가 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기초를 어떻게 다지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이해는 아이의 인생 전반에 관해 멀리 내다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연약한 시기임을 이해하셨습니다 - 어린 시절은 인생에 있어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시기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족을 꾸짖기보다 사랑으로 안아 주신 것입니다.

 

그 마음에 있는 신앙을 이해하셨습니다 - 또한 연약하기에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고 그 품에 안기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주님께 나온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는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떤 것입니까? 한 사람의 어린이라도 그들의 영혼을 귀히 여겨 그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심어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거듭나고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은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사실 어린이 주일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절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위한 신앙교육을 다짐하는 필요성이 날로 높아져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때 주일학교(Sunday School)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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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린이 주일

미국에서는 메사추세츠 주의 유니버살리스트(Universalist) 제일교회의 레오날드(G. H Leonald)목사님께서 어린이 주일을 시작하신 분이십니다.

 

1856년 어린이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훈련시키고 어른들에게 어린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에서, 6월 둘째주일을 어린이 주일(Children's Lord's Day)로 정하고 그날 어린이 주일 행사를 거행했답니다.

 

6월 중순에 어린이 주일로 결정된 것은, 일 년 중 꽃이 만발한 가장 아름다운 이 시기가 푸르고 아름다운 어린이들의 이미지와 가장 잘 연결되기 때문이랍니다.

 

교회들은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그 결과 1868년에는 미국 감리교에서 6월 둘째 주를 어린이 주일로 정식으로 승인하게 되었고 다른 교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1883년 미국의 장로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다른 교파들도 '어린이 주일'안을 결의안으로 통과시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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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린이 주일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 방정환, 마해송, 윤극영 등 어린이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선각자들이 1922년 일본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린이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색동회는 192351일을 어린이 날로 정해 어린이 인격 보호와 바른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과 각성을 촉구하는 등 활발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답니다.

 

1927년부터는 5월 첫째 주일로, 그리고 1946년에 오늘날과 같은 55일로 변경되었고, 1957년에는 어린이도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어린이 헌장이 제정, 공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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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어린이 권리 선언문]

 

우리는 주 예수께서 어린이를 높여 천국을 상징하시고 어린이를 영접하여 축복하신 본을 받들어 우리는 어린이를 사랑 안에서 자라나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그 권리를 선언한다.

 

1. 어린이는 완전한 인격자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2. 어린이는 말과 행동과 생활전반에 있어서 어른과 동등한 인권상의 보장을 받아야 한다.


3. 어린이는 배울 권리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여 생활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4. 어린이는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를 위시한 어른들은 그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워야 한다.


5. 어린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과중한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에서 보호하며 위험과 질병과 굶주림에서 보호하고 모든 편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6. 어린이는 평화를 누릴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크고 작은 싸움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 되며 압박과 불안감에서 보호하고 그들의 꿈을 해치지 않도록 내적 외적으로 평화를 지켜 주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신앙 교육을 할 것을 강조한 말씀들(6:7; 11:19)을 통하여 어린이의 고귀함 및 그들에 대한 마땅한 처우를 강력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약하거니와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 동시에 그들에게 내일의 역사가 달려 있으므로 올바르게 교육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들은 진지함과 순수함을 갖춘 인격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린이의 단점도 성경에는 나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 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11~12)

 

본문에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고 합니다. 이기성, 고집불통, 유치함, 미성숙, 의존성, 자아 중심, 욕심, 착각, 무책임, 무질서, 무원칙 등.


히브리서 513절에서 14절에 보면 젖이나 먹는 믿음과 단단한 음식을 먹는 믿음을 나누어서 단단한 음식을 먹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어린아이에게 있는 어떤 성품은 우리의 신앙에 비유할 때 반듯이 없어야 할 요소와 일치하는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고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갓 태어난 자녀처럼 말씀을 사모하고 양육 받아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천국의 보배입니다.

[윤 사무엘 목사 NYSKC 예배회복운동 학회 (Learned Society)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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