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by wgma posted Jun 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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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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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성도들이 성전 뜰에서 머뭇거리다가 돌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성소에 계신다. 성전 뜰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다. 우리가 실망하고 상처를 받는 이유는 지성소가 아니라 뜰에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은 간단하지 않다.

 

길은 40년의 광야학교를 우수한 성적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불해야할 수업료도 만만치 않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게네사렛으로 건너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길은 풍랑이 기다리는 곳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나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경험한 일은 풍성함과 형통이 아니라 극심한 가난이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병든 딸을 고치려 주님을 찾아왔다. 그러나 주님의 치료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자들의 방해와 주님의 거절과 침묵하심 그리고 거칠고 냉엄한 거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포기 수가 없었다.

 

성전 뜰에서 머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지 지성소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야만 주님을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전뜰에만 왔다가 돌아가는가? 그냥 돌아가면 다행이다 상처받고 실망하고 돌아간다.

 

전도를 하다보면 교회에서 목회자 혹은 장로, 권사 등의 교회 중직자들에게서 상처받았다는 사람이 많다. 참으로 안타가운 현실이다. 그분들의 항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들의 배후에는 지성소까지 들어가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성소에는 상처가 없다. 그곳에는 실망이 없다. 주님을 만나면 어떤 경우에도 상처받지 아니하고 치유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성소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가면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성소로 가는 길은 쉽지 만은 않다. 엄청난 풍랑과 사람의 박해가 기다리고 있다. 때론 주님의 거절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내가 죽어야 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필코 들어가야 한다. 거절함의 파도, 침묵의 풍랑, 상처의 아픔을 넘어야한다. 주님을 만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이 그립다.

 

헤리케인 같은 파도 앞에서도 꿈쩍하지 않았던 여인에게 주님은 결국 메가톤급 응답으로 다가 오셨다. "여자여 믿음이 크도다 믿음 대로 될지어다" 풀무 속에서 정금이 만들어지고 감옥속에서 요셉총리가 만들어지고 불같은 시험속에서 욥의 믿음이 증명되었으며, 미디안 광야에서 살인자 모세는 지도자로 성숙해지듯이 우리도 그러하다. 거친 파도는 유능한 선장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있다.

 

후에 푸르고 울창한 숲이 생겨지듯이 배는 선착장에 묶어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와 싸우며 목적지를 향해 향해하기 위함이다. 성도는 싸워서 이겨야한다.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한다. 풍랑은 뚫으면 뚫린다. 바라보면 뚫는다. 벽을 밀면 문이 된다는 말이 있다. 밀자! 뚫자! 그리고 만나자!

 

우린 그분을 만나야하고 결판이나고 명을 소유해야 역사가 일어난다. 상처, 실망, 거절은 주님의 본심이 아니시다. 그리고 그것은 허상이다. 우리 이제 뜰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희생과 거절의 격랑을 뚫고 지성소로 들어가자. 그때 헤리케인 같은 풍랑도 잠잠하게 메가톤급의 응답을 받자. 생명보다 강한 것은 없다. 생명은 오직 예수뿐이다.

 

칼럼 박형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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