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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받으신 유대인의 왕

(마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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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세례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이 요한은 낙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 이었더라.’(1-4)

1. 세례 요한의 메시지 내용과 의식주(衣食住)

(1)광야(Desert, Wilderness-KJV)란

인적이 없고 개척되지 않은 넓은 들판으로, 개역성경의 ‘광야’는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r), ‘에쉬몬’(yeshimon), ‘아라바’(‘arabah), 헬라어 ‘에레모스’(eremos), ‘에레미야’(eremia) 등의 단어를 번역한 말이다.

성경에서 광야는 시험과 고난의 장소였던 동시에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이 나타났던 장소였다(출 3:12). 지리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동쪽과 남쪽 경계 너머에 있는 광야들이 브엘세바(창 21:14), 에담(민 33:8), 다메섹(왕상 19:15), 에돔(왕하 3:8), 엔게디(삼상 24:1), 기브온(삼하 2:24), 모압(민 21:11), 바란(민 10:12), 수르(출 15:22), 시내(출 19:2), 신(출 16:1) 등과 연관되어 언급되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40여 년을 지냈던(민 14:33) 곳으로, 마실 물이나 음식은 없었고(민 21:5) 위험한 짐승들이 있던 곳이었다(신 8:15; 32:10).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량하며 메마른 이곳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던(출 14:11-12; 16:2-3) 한편,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시편 기자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반역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시 78:40; 95:8; 106:9)과 이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시 68:7; 136:16)을 소재로 노래했다. 선지자들은 황폐화된 땅을 광야로 표현하기도 했다(사 63:13; 렘 22:6; 호 2:3). 때로 척박한 광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아름다운 땅으로 변할 장소로 언급되었다(사 32:16; 35:1; 51:3).

2. 요한의 메시지 내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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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개(Repentance)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던 사람이 되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메타노에오’(metanoeo)이며 ‘생각을 고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메시아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고치고 그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마 3:2). 이것에 대한 예는 오순절 때의 유대인의 회개(행 2:36-37),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회개(행 9:1-9) 등이 좋은 모본이 된다.

회개는 단순한 죄에 대한 슬픔이나 고백만은 아니다. 그것은 회개의 원인이나 결과일 수는 있으나 회개 자체는 아니며 회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마음의 결정을 포함한다. 회개는 성경에서 100회 이상 언급된 중요한 주제이다. 회개는 세례 요한의 주제였고(마 3:1-2)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회개를 가르치라고 명령하셨다(막 6:12).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회개를 선포했고(행 2;38) 하나님께서도 회개를 명령하셨다(행 17:30).

구약에서는 율법과 희생 제물의 법대로 죄를 고백하고 제물을 바쳤다. 그러나 복음적인 회개란 죄로부터 돌아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행 20:21). 이것은 단순히 악에서부터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기초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행 11:18). 다시 말해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말하는 것이다(고후 7:10).

그러나 참된 회개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특권이다(딤후 2:25). 사람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들을 때 성령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해 주시며 그 결과로 회개에 대한 강한 소원이 개인에게 나타나게 된다. 요나는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설교했고 그 결과 니느웨 백성들은 그 메시지를 믿었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왔다(욘 3:3-10).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들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책망하시거나 채찍으로 치시기도 하신다(계 3:19).

3. 요한의 메시지 내용(2)

천국(Heaven)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로, 복음서 중 마태복음에만 언급되었다(마 3:2; 5:3; 8:11; 13:11; 25:1 등). 일반적으로 천국, 즉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말로 보며, 다만 마태복음은 하나님이란 말을 함부로 쓰기를 주저하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대부분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천국은 메시아의 초림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으며 재림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자는 서서히 성장하는 천국이며 후자는 돌연히 임재 할 천국이고, 전자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이라면 후자는 초연적이고 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전자는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후자는 22, 25장의 천국 비유에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결국 전자가 현세의 교회라면 후자는 미래의 영원한 구원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재와 미래의 두 가지 천국은 별개가 아니다. 현재의 천국 없이는 미래에 실현될 천국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는 외침은 회개하고 메시아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들어가라는 것으로, 현재 교회에서 자라는 신령한 천국에의 초대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완성될 영원한 천국에의 보증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혈통이 아닌 회개하고 메시아를 믿는 믿음에 있음을 말해 준다(마 3:8-9).

4. 세례요한의 외적인 모습

털옷(Garment of hair)은 짐승의 털로 만든 옷을 말한다.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사역한 선지자였다(마 3:4).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이 주로 입는 옷이 털옷이었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죄를 슬퍼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슥 13:4). 세례 요한이 입은 털옷은 약대 가죽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약대 털로 거칠게 짠 옷이었다고 본다. 요한이 털옷을 입은 모습은 털옷을 입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던 엘리야를 연상하게 하는 것으로 요한이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말 4:5).

5. 세례요한 양식(食)

(1)메뚜기(Locust)는 직시류(直翅類) 메뚜기과(科)에 속하는 곤충으로 녹색이나 황갈색의 보호색을 띠며 발달된 단단한 턱을 이용해 식물을 갉아먹고 수풀 등지에서 서식한다. 메뚜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아르베’(?rbeh, 출 10:13: 19), ‘고브’(gob, 암 7:1; 나 3:17), ‘하가브’(hagab, 대하 7:13; 전 12:5)라는 단어가, 헬라어는 ‘아크리스’(akris)라는 단어가 쓰였다(마 3:4; 막 1:6; 계 9:3, 7).

메뚜기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 성경과 그 밖의 고대 문서에는 메뚜기가 엄청난 숫자와 파괴력 때문에 재앙을 상징하여 인간이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모조리 부셔버리는 강력하고 거대한 적의 군대로 나타나기도 한다(삿 6:5; 사 33:4; 욜 2:25). 특히 요엘서 2:1-11에서는 장차 임할 여호와의 날을 생생하게 묘사함에 있어서 메뚜기 재앙에 관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메뚜기와 관련해서 솔로몬은 성전 봉헌 기도에서 메뚜기 재앙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나 간구를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달라고 했다(왕상 8:37-38; 대하 6:28-29). 반면 메뚜기 한 마리는 무력하고 하잖은 존재로 여겨져서 가나안 정탐꾼들이 신장이 장대한 자들(민 13:32), 아낙 자손 대장부들(민 13:33)에 비해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는 메뚜기 같다”고 표현하는 데 인용되었다(민 13:33). 또 이사야는 창조주 하나님이 보실 때 당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다고 표현했다(사 40:22).

(2)석청(石淸, Wild honey)이란 산 속의 나무나 돌 틈에 있는 야생 꿀을 말한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마 3:4; 막 1:6). 표준새번역에서는 ‘들꿀’로 번역되었다.

첫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나타난 세례요한

요한이 광야의 외치는 자가 된 것은 스스로 한 일이 아니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도 아니다. 더구나 자기를 알려 사람들에게 인기라도 얻으려고 한 일도 아니었다. 그가 광야에 나와 외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계시의 빛이 임했기 때문이었다.(눅3:2)

‘계시의 빛’ 이게 얼마나 소중한 사건인가를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고, 이 부르심은 곧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이다. ‘계시’란 말은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주제다. 계시란 말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콘텐츠(contents)이기 때문이다. 다시 설명을 하면 ‘감추어 있던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보여 주신다’ ‘비밀에 쌓여 있던 것을 폭로 한다’ 이런 뜻을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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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교회의 목회를 하거나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이거나 이분들의 활동은 특별한 분을 제외 하고는 거의가 사람에게 배워서 하는 사역들이다. 한국교회의 경우는 대부분 신학교라는 곳에서 배워서 목사가 되고, 선교훈련을 받아서 선교사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다. 한데, 여기 세례요한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이것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누가복음 3장을 보자,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이 때 대제사장이란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였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 아니라 빈들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이다.

그럼,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어떤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다. 그가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던 중 천사를 만나 10개월 후엔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요한이라 해서 그 천사의 말에 순종하여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 불렀다. 그뿐 아니라 요한의 아버지는 어쩌면 제사장 직분도 버리고 어린 핏덩이를 데리고 ‘빈들’로 가서 거기서 키웠다.

왜 그랬을까? 사가랴는 천사가 말하기를 ‘아들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친족들은 가문의 전통을 따라 이름 짓는 것은 당연한 거라 했었지만, 사가랴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천사의 지시를 따라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 했다.

아이의 이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뜻은 전통에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는 제사장(당시는 고위직)직도 버리고 아직은 어린 핏덩이를 안고 성전 문화권을 떠나, 빈들로 가서 거기서 아이를 키운 것이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 지며 이스라엘에 나타나기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눅 1:80)

요한이 이스라엘에 나타 날 때의 나이가 30이었으니 30년을 빈들에서 자라온 것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빈들이란 말은 말 그대로 빈들이다. 빈들이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닌가? 신학교가 있고, 훈련센터가 있고,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곳이란 뜻이 아닌가?

입을 옷이 없어 낙타 가죽으로 몸을 가리고, 먹을 것도 없어 야생 꿀이나 들판의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근근 히 연명해온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기를 30년, 그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곳으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 3:5-7) 하고 외쳤다.

둘째 세례요한이 누구를 향하여 외쳤는가?

(1)첫째 바리새인(Pharisees)인데 ‘바리새’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perushim)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말은 마카비 시대(BC 135년경)에 최초로 등장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바리새 주의는 마카비 시대(Maccabees, BC 167-63)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 동안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결과로 제사장보다는 일반 유대인들, 성전보다는 회당 중심으로 펼쳐졌던 움직임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에세네파, 사두개파와 함께 유대의 3대 분파 중의 하나로, 신약 시대에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며,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일반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들 중에는 대율법학자나 경건한 지도자들도 많았다. 또한 바리새주의는 계속 유지되어 정통 유대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과 바리새인 간의 갈등이 자주 등장한다.

이 갈등은 산상수훈(마 7:28-29),

안식일의 논쟁(마 12:1-14),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삶에 대한 꾸짖음(마 23:23-24)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생에 대해 물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잡으려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항변했고(요 7:50-51) 후에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을 장사지내기도 했다(요 19:38-42). 처음엔 예수님을 대적했으나 후엔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 전도자가 된 바울 같은 사람도 있었다(행 9:1-30; 빌 3:5-21).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 명의 바리새인 앞에서 바리새회의 규칙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1년 간 예비 기간을 가진다. 이때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도 회원으로 취급되었다. 지켜야 할 규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원이 아닌 사람과는 식사하지 않는다.

둘째, 회원이 아닌 제사장에게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셋째,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한다(월, 목요일).

(2)둘째 사두개인(Sadducees)은 유대 종교의 당파 중 하나인 사두개파 사람들을 말한다(행 23:6). 이들에 대한 명칭은 대체적으로 다윗, 솔로몬 시대에 제사장이었던 사독(왕상 1:38)에게서 유래했다고 보여 진다.

부유한 귀족 지배 계층으로 제사장과 예루살렘의 권력가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고 산헤드린의 많은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이들은 BC 2세기 하스모니안 시대부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세력을 형성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율법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였다. 내세와 부활, 영적 세계,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고 지극히 현세적이었다(막 12:18; 눅 20:27; 행 23:8). 이들의 이런 태도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곤경에 빠뜨리고자 부활에 대한 난제를 내어 놓은 것에서 확인되어진다(마 22:23-33).

부활과 구전 율법을 받아들인 바리새인들과는 대립 관계에 있었지만(행 23:8)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잃지 않고 바리새파와 연합하여 예수님을 핍박하는 일에 참여하였다(마 16:1). 세례 요한에 의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그들은(마 3:7)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까지도 핍박하였다(행 4:1-22, 23:1-10).

요한의 메시지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회개라는 말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리에서 돌아 서라는 것이고, 세례(침례)는 돌아섰다는 고백의 표로 침례(물속에 들어갔다 나옴)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대상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요한이 요구한 대상은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유대인은 누군가?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다. 할례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방인과 구별의 표로 받은 거였다. 그래서 요한의 선포장소가 ‘유대광야’였다.

팔레스타인은 세례요한이 외칠 당시의 지형은 크게 3등분으로 나눠 생각했을 때이다. 아래 남쪽은 유대, 중간이 사마리아, 그리고 북쪽지대를 갈릴리라 한다. 이것을 다시 신앙의 지수로 표시하면 남쪽 유다는 시제말로 ‘신앙의 정통성’을 자랑하는 곳이고, 중간 사마리아는 북조(北朝) 이스라엘을 대표한 곳으로, 여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하여 산당(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섬겼던 이스라엘의 변질된 족속으로 취급했던 곳이고, 그리고 북쪽 갈릴리는 이방인 지대라 여겼던 곳이다.

왜 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느냐? 그것은 유대인을 상대로(회개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했다는 것을 주목하기 위해서 이다. 요한의 이 메시지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할례 받은 백성’이라 자랑 삼지 말라는 거였다. 다시 말하면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정통성을 자랑한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하나님의 선민이란 효력이 무효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선언한 선포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곧 출현 하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새로운 질서의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 선포의 순간부터 전통유대교의 시대는 마감되었음을 선언한 것이 였다. 그래서 요한을 두고 ‘오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자’라 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이름만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아니라도 돌들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이제라고 회개하고 새로 임한 새 질서의 백성이 되라는 거였다.

그리고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10-)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원과 심판을 하실 이가 이미 오셨으니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복음은 구원의 부르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그래서 복음증거는 선포인 것이지, 사람이 가르치고 설득해서 구원의 자리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 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증거를 통해서 구원받을 자와 정죄 받을 자를 구별하시는 것이다.

셋째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

(1)도끼(ax)는 찍거나 자를 때 쓰는 도구를 말한다. 종종 성경의 도끼들은 ‘철’로 묘사되고 있는데(민 35:16) 그것은 나무로 된 자루에 붙여진 철로 된 머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도끼들은 구약 시대에 나무들을 자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신 19:5; 삿 9:48) 돌을 다듬는 도구로써 사용되었다(왕상 6:7). 전쟁 때에는 군대들이 무기로도 사용하였다(삼상 13:20).

열왕기하 6:5의 잃어버린 도끼머리의 이야기와 도끼머리가 날아가 우연하게 이웃을 죽이게 된 것을 묘사하고 있는 신명기 19:5의 우발적인 살인의 예증은 나무로 된 손잡이의 도끼머리를 꽉 잡아둘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민족복음화, 혹은 군 복음화, 학생복음화, 혹은 어느 특정 도시를 두고 ‘성시화 운동’등을 외치는 일들은 복음 증거(전도 혹은 선교)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한 탓에서 생겨진 일이라 할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이고, 다만 우리(사람)는 증거자 일 뿐이란 걸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 증거는 선포에 있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한국 같은 경우는 도시와 농촌, 그리고 육지와, 섬 지대들이건 간에 ‘예수’ ‘교회’ 이름 안 들어 본 사람들이 어쩌면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땅은 이미 복음화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어깨띠를 둘러매고 전단지를 들고, 길거리, 지하철, 시장 등을 누비며 노방 전도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구원의 자리로 초대된 자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 성이 훼손 되는 것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전도(선교)학의 기초는 그 첫째가 이미지(image)에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

회개의 열매는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거룩케 된 생활이다.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지만(롬 6:17), 그 결과는 변화된 행위이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이론이나 형식만이 아니요, 인격과 삶으로 증거 된다. 전에 악하였던 사람이 이제 선한 사람이 되고, 전에 거짓되었던 사람이 이제 진실한 사람이 되고, 전에 교만했던 사람이 이제 겸손한 사람이 되고, 과거에 성격이 거칠고 남을 미워했던 사람이 이제 온유와 사랑의 사람이 되고, 전에 더러운 죄에 빠졌던 사람이 이제 거룩하고 단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경에 열매라는 단어(구약에 123번, 신약에 67번)중에 성도들이 맺어야 할 것.

1)회개의 열매(마 3:8)

2)빛의 열매(엡 5:9)

3)의의 열매(빌 1:11)

4)선한 열매(약 3:17)

5)태의 열매(시 127:3)

6)입술의 열매(히 13:15)

7)성령의 열매(갈 5:22-23)

(2)타작(打作, Threshing)이란 이삭을 떨어 곡식 알맹이를 거두는 것을 말한다. 타작은 타작마당에서 여러 종류의 타작기를 통해 이루어졌다. 고대 팔레스타인의 타작마당은 직경 8-12m 정도의 크기로 대개 곡식밭이나 바람이 잘 불어오는 언덕 꼭대기에 원형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며(룻 3:2; 대상 21:15) 타작마당 주위는 곡식알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테두리를 쌓았다.

타작은 율법의 순종에 대한 축복(레 26:3-13; 신 28:1-14)에서도 언급되었는데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 순종하면 농작물이 풍부하게 된다는 것으로 “타작이 포도 딸 때까지 미친다”고 했다(레 26:5).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보리와 밀의 추수기가 5-6월이므로 7-8월의 포도수확기까지 2개월이나 타작기간이 연장될 정도로 풍작을 주신다는 약속이었다.

선지자의 글에서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는 것을 ‘타작마당에서 타작한 곡식’(사 21:10)이라고 했다.

타작마당은 나곤이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처럼 개인 소유인 것도 있었으나(삼하 6:6; 24:16, 18)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종종 한 마을에 10개 이상 되는 타작마당이 있어서 공동으로 사용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타작은 보통 타작마당에 곡식 단을 펴 놓은 후 소나 나귀 같은 동물(신 25:4; 호 10:11)이나 동물을 이용한 타작기로 했다(사 28:27-28). 멍에를 맨 동물이 끌었던 타작기에는 보통 돌조각 또는 철로 된 타작 판이 달려 있었으며 사람이 타작판 위에 올라 탄 무게로 인해 곡식의 낟알들이 빠져 나오게 되어 있었다(사 41:15; 암 1:3). 한편 모세 율법은 타작하는 동물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신 25:4; 고전 9:9 참고).

타작마당에서 생긴 일들에 대한 내용 가운데,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며(삼하 24:18-25) 후에 이곳에는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다(대하 3:1). 나곤(기돈)의 타작마당에서는 수레에 실린 법궤를 붙들었던 웃사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죽었다(삼하 6:6-7).

타작마당으로 번역된 원어가 광장으로도 번역되었는데 아마도 농한기에는 이곳이 모임 장소로 쓰여졌던 것으로 생각된다(왕상 22:10).

(3)쭉정이(Chaff)는 껍질만 있고 알이 속에 들지 않은 곡식 열매를 말한다. 호세아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의 결말을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다고 했다(호 13:3).

우리가 마음을 바꾸고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특별한 느낌이나 이상한 체험과는 상관없이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특별한 느낌이나 체험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고, 요구하려는 것은 성서적인 태도는 아니다. 앞에서 언급해온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알곡(거듭 난자)은 곡간에, 쭉정이(거짓 믿음 혹은 불신자)는 꺼지지 않는 불 못(심판)에 던지시는 일은 그분의 주권에서 결정되는 것이란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여기서 한마디 짚고 싶은 내용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 없기를 바라고, 혹 참고 할 분이 있을까 해서 하는 이야기다. 왜 개척교회를 하면서 건물사방에 교회라는 간판을 부치는 것일까? 간판을 내 건다는 뜻은 믿는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기위해서 그렇게 한 것인가? 아니면 혹 불신자들이 간판을 보고 찾아오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인가? 후자의 경우라면 이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넌 센스란 생각이 든다. 이유는 교회란 간판을 건다는 것은 불신자들로 하여금 ‘접근 금지’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전통이 되어 누구든지 개척교회를 하면서도 간판부터 만들어 표시를 한다. 전도(복음증거)는 사람의 교감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접근 할 수 있는 공간이 오히려 더 필요한 것 아닐까? 그런데 ‘교회란 간판’을 내 거는 것은 ‘불신자들은 이곳에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표시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생각에서 생각을 했다. 현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해서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둘째. 세례 받으신 왕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라’(마 3:13-15)

지명으로 갈릴리(Galilee)는 팔레스타인 북쪽을 지칭한다. 히브리어의 ‘갈릴’(galil)이란 말에서 왔으며 ‘원’, ‘순회’, ‘지역’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BC 63년경 로마인들이 행정구역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고정된 경계선이 없었다. 갈릴리는 앗수르 인들이 북 왕국을 멸망시킨 때(BC 734-722)부터 마카비 기간(BC 80)까지는 유대인들에 의해 통치되지 못했다. ‘이방의 갈릴리’(사 9:1)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1세기의 갈릴리는 길이 약 70km, 넓이 40km로 204개의 마을을 포함하고 있었다.

예수님과 갈릴리와 관계:

숲이 우거진 언덕과 비옥한 평야로 이루어진 갈릴리는 예수님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며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사역이 이루어진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기적사건들이 복음서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막 1:32-43; 3:10; 6:53-56). 비유들의 대다수 역시 이곳에서 말씀하셨다(마 13:3-8; 막 4:3-8; 눅 8:5-8 등)는 것이다.

갈릴리에 대한 예수님 당시의 견해에 대해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곁에 끼고 있는 갈릴리는 헬라에 속하는 로마로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북쪽 지역은 다소 고립되어 있는 편이었고, 거주자들은 유대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투리를 사용하거나(마 26:73) 그들의 관습이 유대의 풍습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이 경멸의 태도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무시한 것에도 반영되고 있는데 이는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오지 못한다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요 1:46; 7:52; 마 2:23).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공생애의 취임식과 같은 것이었다. 사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셔야 할 의무가 있는 분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받으신 이유는 새 질서에 참여 한다는 절차의 첫 조건이 세례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절차를 밟는 것이 곧 의(오른 일)라는 것이었다. 요한의 고백처럼 ‘나는 그분의 신을 들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했고, 지금 이 장면에서는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속된 말로 표현하면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다. ‘나는 너희의 선생이요 지도자이지만 도리어 나는 너희를 섬기려하고(마 10:45)’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요 13:14),,.’이것이 예수요, 예수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강령이어야 한다. 무슨 박사가 되었다거나, 큰 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다거나, 무슨 교단의 총회장이라도 되었다거나 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은 예수를 따르는 예수의 제자는 아니다.

이 장면을 두고 제1회 니케아 총회(Nicaea Councils/A.D325)에서 아리우스(Arius)와 아다나시우스(Athanasius)가 삼위일체 교리 논쟁을 벌 릴 때, 아다나시우스가 아리우스를 향해 ‘아리우스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려면 요단강을 가보라!!’했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본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고 하던가? 여기에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나타나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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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6-17)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현장에서 비들기(Dove)와 같은 성령이 임했다고 했다. 비둘기 목(目)에 달린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비둘기의 특성 중 하나는

(1)어미 새가 가져온 먹이를 새끼에게 직접 먹이지 않고 어미 새가 먹이를 섭취하여 소낭에서 분비되는 것을 새끼 입에 넣어 주어 키운다는 것이다. 비둘기는 팔레스타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새로 먹을 수 있는 새였으며(레 11:13-19) 사람들에게 사육되기도 한다. 또한 노아 홍수가 끝났을 때 물이 줄었는지 여부를 알고자 방주에서 내보내진 새였다(창 8:8).

(2)비둘기는 평화와 순결을 상징하며(마 10:16)

(3)성령을 상징하는 새로도 나타난다(막 1:10; 눅 3:22; 요 1:32). 그리고 비둘기는

(4)울음소리가 구슬프고

(5)눈에서는 항상 눈물이 고여 있다고 한다,

비둘기는 제물로도 사용

비둘기는 제사에 쓰여 지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제물로 사용되었다(레 5:7; 12:8; 눅 2:24).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산모의 정결예식을 행할 때 비둘기를 제물로 드렸다(눅 2:24).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릴 때도 사용된 새이다(창 15:9).

마태복음 1장부터 3장까지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곱 가지의 증거를 하였는데,

(1)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자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예언된 분으로 증거(1:1)

(2)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아기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였음을 증거(1:18).

(3)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 탄생하셨음을 증거(마 2:2).

(4)별의 증거로 하나님께서 주신 초자연적인 징조의 별은 동방박사들로 하여금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깨닫게 함(마 2:2).

(5)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비록 그에게 경배하러 가지는 않았으나,

성경에 근거하여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는 것을 증거(마 2:4).

(6)세례 요한은 메시아께서 성령으로 세례 주실 분이시며 장차 불로 심판하실 분이라고

증거(마 3:11).

(7)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음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마 3:17)하셨다.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요 1:14) ‘하나님의 의’(마 3:15)를 이루시기 위해서 ‘겸손’(마 11:29)하게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우리도 만왕의 왕 되신 예수를 믿고 뒤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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