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Understanding)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오해가 많은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이해’라는 영어단어를 풀이해보면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어학사전에 under는 ①아래의 ②…하에 ③…밑에 ④…미만의 ⑤지배하에, standing[stǽndiŋ]①서 있는 ②상임의 ③입석 ④지위 ⑤기립 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두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겸손이 포함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인간관계는 항상 서로의 이해라는 태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때로는 상대방의 허물이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용서에 대해서는 인색하게 선을 그어놓고 서로의 관계를 칼로 끊어 놓듯이 해버리는 일들이 허다하다. 이해부족으로 일어나는 각가지 문제에 휘말려드는 일들이 허다한 지구촌이다.
위키백과 사전에서 ‘이해’(理解, 문화어:리해)는 사람, 상황, 메시지와 같은 추상적이거나 물리적인 물체에 관한 심리학적 프로세스이다. 곧, 사건의 이유, 원인, 의미를 올바르게 알아내는 것을 가리킨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서 서로의 관계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이해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항상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풀어야 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할 때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성경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시도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 표현한 곳이 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개역한글 골로새 2:1-3)
바울이 표현한 이해는 그냥 이해라는 단어가 아니고 ‘원만한 이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이해(Understanding)는 사리를 분별하여 깨달아 아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인식론적인 이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판단, 즉 지혜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의 뜻과 지혜, 그분에 대한 경외는 지혜로부터 오는 이해이다(시 111:10; 잠 1:7 참고). 사도 바울도 어리석음에 대조되는 말로 주의 뜻을 이해하라고 했다(엡 5:17).
"원만한 이해"(골 2:2 개역한글)라는 용어가 개역 개정에는 "확실한 이해"로 기록되어 있다. 원만한 이해는 내 입장에서 상대방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하고 죄인 취급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만일 내가 상대방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고 비판하고 평가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기는 정당하고 깨끗하고 자기만은 의인이고 자기는 죄와 상관없다고 스스로 정죄 받을 자가 아니라고 합리화 시키는 자들이 없지 않아 있다.
상대방에 대해서 얼마나 무엇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가? 외모는 판단하고 있지만 속사람은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하지 않았던가? 원만한 이해를 가진 인격적인 진정한 크리스챤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나의 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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