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식

by wgma posted Jul 3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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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목사의 알아두면 좋은 성경용어 풀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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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식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11:28)

 

안식이란 말 그개로 쉬는 것이다. 안식이란 말이 처음 성경에 등장한 곳은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시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안식은 일을 다 마친 것과 관계가 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자 땀을 흘리는 수고의 심판이 주어진다. 일하지 않고 주어지는 양식은 없다. 그래서 일을 다 마친 후의 쉼(안식)은 기분 좋은 것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안식은 무엇인가? 사는 동안 수고의 짐을 지고 가는 인생에게 쉰다는 안식은 무엇인가?

 

안식은 목적이다

 

성경은 인간에게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안식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안식하기 위하여 일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대로 안식하기 위해 일을 제대로 마쳐야 한다. 청년의 수고는 노년의 안식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안식은 복이다. 안식을 바로 누리는 자는 행복한 자이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다면 그것은 문제다. 일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쉬는 것을 알지 못하다면 그것도 문제다. 왜 일하는가? 왜 일을 제대로 마쳐야 하는가? 제대로 쉬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경은 안식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안식일을 제정하여 억지로라도 쉬도록 만든다. 제대로 쉬는 것을 배우게 한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마쳤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만족이다. 일을 마쳤을 때 족함이 없으면 제대로 쉬기 어렵다. 미진한 그 일 때문에 쉬어도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해야 할 공부를 나름대로 했다고 했을 때 놀아도 마음 놓고 놀 수 있다. 제대로 일하라. 힘껏 일하라. 일을 마친 후에 후회가 없도록 일하라. 그래야 제대로 쉬게 될 것이다. 안식이 목적이다.

 

안식은 해방 곧 자유다

 

일로부터의 해방이 안식이다. 성경은 7일에 한번은 인간이 쉬는 날을 만들었다. 쉬지 않으면 계속 주어지는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7년에 한번은 땅도 쉬게 만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땅은 더 이상의 수확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식은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 그런데 성경은 7년의 7년 그 다음 해(7x7+1) 50년째를 희년(기쁨의 해)으로 선포한다. 이때는 남의 종으로 팔려 들어간 자들이 종으로부터 해방되는 날이다. 어쩔 수 없어 남의 손에 넘겨주었던 땅을 다시 되돌려 받는 날이다. 남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곧 자유가 선포되는 날이 희년이다. 자유인이 되는 순간이다. 자유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남의 속박을 받고 있을 때는 내게 선택권이 없다. 남이 선택한대로 나는 그냥 따라갈 뿐이었다. 그러나 자유인이 되었을 때는 내가 선택한 것을 내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안식을 이렇게 자유함과 연결시킨다. 돈에 끌려 다니는 삶에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환경의 종으로부터, 죄에 끌려 죄와 타협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삶에서의 해방을 진정한 인생의 안식이라고 성경은 설명한다.

안식은 평화(평안, 평강).

 

평안과 평강 그리고 평화는 같은 의미로 성경은 설명한다. 가장 쉽게 이해되는 단어가 평화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이다. 전쟁은 내가 무엇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머물고 싶다고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 없다. 전쟁은 이쪽과 저쪽이 대치하고 있는 상태이다.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상황에서 안식이란 없다. 선택의 갈등이 있다. 이럴까 저럴까하는 갈림길에서의 갈등, 이것은 전쟁의 상태와 비교된다. 무엇인가를 선택하여 이쪽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다고 선택해야 마음의 안정 곧 평안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라면 여전히 마음의 전쟁은 계속되어 마음의 평화는 사라지고 만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성경은 방향을 강조한다.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의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선택, 바른 선택은 때론 더한 수고의 삶을 살 수 있게 될지라도 마음의 평안과 평화는 주어진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고 말씀하신다. 이미 승리가 보장된 선택, 끝까지 지켜주시는 예수님의 손길, 여기에 내가 자유자로서 선택해야 할 분명한 길이 있다. 여기에 평강이 있다. 성경은 이렇게 안식이란 평화(평안, 평강)가 연관하여 설명한다. 이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 끝없이 갈등해야 하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다르다. 길이 분명히 보이면 수고로움이 더 이상 수고로움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으로 향하는 분명한 방향이 주어지면 수고로움 속에서도 평안함이 있다. 이것이 진정한 안식이라고 성경은 선언한다. 예수님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주어지는 안식이다.

 

안식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 자의 것이다

 

성경은 안식을 땅과 연관시킨다. 땅을 가진 소유주와 땅의 주인의 밭을 불하받아 일하는 소작인은 다르다.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과정은 이러한 진정한 안식으로의 삶을 설명하는 과정이다. 땅을 가졌다는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누린다는 것이다. 땅을 가진 자유인으로서의 일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일을 한다. 그러나 종이나 소작인은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한다. 이렇게 자유인과 종은 다르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 중에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는 복이 나온다. 여기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이러한 자유함, 곧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삶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 왕 아래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린다. 왜냐면 다윗이 이스라엘 땅의 경계선을 확고히 정했고 또한 타 민족이 다윗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공격해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다윗은 분명히 그들과 싸워 이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치하에서 안심하고 자신들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진정한 안식을 누렸다. 다윗에 대한 확신이 그들에게 쉼을 가져왔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기업으로 주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지켜지는 나라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안심하고 전쟁의 위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평강(평안, 평화)의 삶을 누리게 된다. 여기에는 자유인의 삶이 보장된다. 결론적으로 안식하는 진정한 쉼이 있는 삶이 주어진다. 예수님께 나와오는 자들이 누리는 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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