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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왕의 왕의 산상수훈 세 번째

(마태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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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백성으로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교훈의 내용이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선택의 과제로 주신 것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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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밀한 구제(1-2)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1-)고 말씀하셨다. 구제는 중요한 의의 행위이다. 주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적 구제를 경계하시고, 은밀한 구제를 강조하셨다. 외식적 구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급이 없다

 

아버지(Father)라고 번역되는 대표적인 단어로는 히브리어 ‘아브’(ab), 헬라어 ‘파테르’(pater)가 있다. 성경에는 여러 유형의 아버지가 나오며, 육신의 아버지 외에도 제사장이나(삿 17:10; 18:19), 왕(삼상 24:11), 주인(왕하 5:13), 선지자(왕하 2:12; 13:14) 등이 아버지로 불렸다.

 

성경에는 아버지가 자녀와의 관계에서 해야 할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잠언 기자는 아버지를 향해 자녀를 훈계할 것을 말한다(잠 1:8; 23:13). 그렇지만 아들들의 잘못된 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던 엘리 제사장 같은 아버지도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삼상 3:13). 신명기 율법에는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신 6:7)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했다(신 32:46). 또한 완악한 아들은 징계하며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성읍의 장로들 앞으로 잡아가라고 했다(신 21:18-21).

 

신자들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신약의 저자들이 하나님을 신자들의 아버지로 묘사했는데, 이는 예수님과 똑같은 의미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며(마 11:26; 요 20:17; 롬 8:15; 갈 4:6, 엡 2:18), 성령에 의한 양자의 영을 받게 되어 한층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롬 15:6).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 외식자들은 자기의 구제 활동으로 사람의 영광과 칭찬을 구한다. 그들은 ‘정말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 구제를 많이 하는 좋은 분이야!’라는 사람의 칭찬을 이미 상으로 받은 것이다.

 

구제(Giving)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신 15:10). 신명기 15장은 가난한 형제를 향해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고(7절), 넉넉히 꾸어 주라(8절)고 했다. 또 악한 눈으로 대하거나(9절)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구제하지 말며(10절) 궁핍한 자를 향해 손을 펴라고(11절)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의 대상은 성도(행 11:29-30), 가난한 자(잠 22:9), 동족(행 24:17), 과부(행 6:1), 백성들(행 10:2) 등이다. 구제할 때는 은밀하게(마 6:3-4) 하되 사랑(고전 13:3)과 성실함(롬 12:8)으로 해야 한다. 결코 양심에 거리끼거나(행 24:16-17), 외식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된다(마 6:1-2). 오직 예수님께 하는(마 25:40) 태도로 해야 한다.

 

성도가 이렇게 구제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며(신 15:11) 초대교회 성도들이 행했던 일(행 6:1-2)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제하는 사람은 궁핍해지지 않고 도리어(잠 28:27) 더욱 부하게 되며(잠 11:24) 풍족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잠 11:25; 눅 6:38).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히 13:16)로 구제한 사람은 행한 대로의 보상을 받게 되며(잠 19:17) 하늘에 보화를 쌓게 된다(마 19:21; 눅 12:33).

 

외식(Hypocrisy)이란 진실되지 않은 마음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외식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욥 8:13; 15:34-35; 17:8; 사 9:17; 33:14),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이었다. 신약성경에서는 특별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공식석상에서 외식하는 자들을 비판하셨다(마 6:2-5, 16). 그들은 하나님의 뜻보다는 그들이 가진 목적을 가지고 기도했고 사람들의 칭찬을 원했다. 위선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는 판단하면서 자기 자신의 결점은 무시해 버리는 자들이었다(마 7:1-5).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종종 위선자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외형적인 태도와 내면적인 태도 사이에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마 15:1-9). 그들은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눅 13:15)보다는 안식일의 규칙에 더 관심이 있었다. 누가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한 것도 위선이라고 여겼다(눅 20:20). 위선자에 대한 언급이 가장 잘 묘사된 것은 마태복음 23장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설교하는 대로 행하지 못하였고(마 23:3) 예수님은 그들의 내부는 더러우면서 속만 깨끗한 척 꾸미는 회칠한 무덤과 비교하셨다(마 23: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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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왼손이 모르게(3-4)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전통사본에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는 말 가운데 ‘드러나게’라는 말이 있다. ‘은밀하게’라는 말과 ‘드러나게’라는 말이 대조를 이룬다. 사람 앞에 외식적으로 행한 구제와 선행은 사람의 칭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상이 있을 여지가 없지만, 은밀하게 행한 구제는 천부께서 드러나게 갚으실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드러난 행위만 보고 칭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밀한 행위를 보시고 보상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은밀하게 선행과 구제를 하자.

 

오른손(Right hand)은 성경에서 오른쪽 또는 오른손은 특별한 의미와 상징을 포함하고 있다. 즉 그것은 총애와 능력과 축복과 위엄과 명예의 자리요, 위치였던 것이다. 먼저 오른손은 축복이 전달되는 매체로 이해되었다(창 48:14; 출 29:20; 욥 40:14; 시 45:4). 또한 오른손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출 15:6-12; 신 33:2; 시 17:7; 18:35; 89:13; 139:10)과 창조의 권능을 상징하기도 한다(사 48:13). 특히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시 78:54)에서처럼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의 전능하신 힘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그가 오른손을 거두신다는 것은 심판과 재앙을 의미한다(시 74:11; 애 2:3).

 

축복은 과연 오른손을 통해서 올까?라는 의문에 대해서 살펴본다. 성경에서 축복은 대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권세 있는 사람이 권세 아래 있는 자들에게, 혹은 제사장이 믿는 회중에게 하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한 축복, 야곱이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한 축복(창 48:8-49:28), 예수님께서 제자들(눅 24:50)과 아이들(막 10:16)에게 주신 축복이 바로 그것이다. 축복은 손을 머리에 얹는 안수를 통해 내려졌는데 안수는 그 밖에 하나님을 섬길 자를 성별하거나 성령을 받게 하고 환자를 고치는 데에도 행해지곤 했다.

 

안수에는 손 자체가 거룩하기보다는 사람의 손을 통해 하나님이 축복과 능력,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특별히 오른손으로 안수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오른손이 창조의 능력이나 백성을 구원하는 권능을 상징하는 것처럼(출 15:6-12; 시 17:7; 139:10) 오른손이야말로 특별한 능력, 위엄과 영광, 최고의 지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욥 40:14).

 

그래서 요셉은 맏아들인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손 쪽에 에브라임을 왼손 쪽에 앉게 했다. 맏아들 므낫세에게 더 큰 축복을 받게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야곱은 손을 어긋 맞겨서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어 축복해 주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른 모양이다(사 55:8-9 참고). 이스마엘 대신 이삭이, 에서 대신 야곱이, 르우벤 대신 요셉이,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이 각각 장자의 복을 받았으니 말이다(창 18:17-19; 25:5, 23; 27:30; 48:5-6,14).

 

은밀한 곳은 숨겨서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곳을 말한다. 죄인들은 은밀한 곳에서 다니며(시 10:8), 은밀히 행하고(겔 8:12), 은밀히 우상을 세우며(신 27:15), 하나님을 피하고, 심판이 임할 때 바위 뒤에 숨으려고 한다(사 2:10).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은밀한 중에 구제하며 금식하고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공개적으로 갚아주신다(마 6: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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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도에 대한 내용을 가르침(5-15)

주께서는 바른 기도의 태도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하나는 은밀한 기도이며 다른 하나는 중언부언하지 않는 기도이다.

 

(1) 기도 할 때 은밀하게 기도하라(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주께서는 외식적 구제를 경계하심같이 외식적 기도를 경계하셨다. 외식자들은 기도 생활에 있어서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를 한다. 그래서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참 기도 많이 한다, 참 경건하다”는 칭찬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라기보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이며, 이것이 외식이다. 주께서는 외식자들은 이미 자기상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 골방 기도가 가장 이상적 기도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기도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나는 기도 한다’고 알리거나 보이려는 기도가 아니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기도이다. 이것은 참으로 기도다운 기도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밀한 기도를 들으시며 갚으실 것이다. 골방 중에 골방은 뇌(머리)라는 곳이라고 생각도 해본다.

 

문자적으로 골방(Side room)이란 큰 방의 뒷쪽에 딸린 작은 방을 말한다. 구약에서 골방은 왕궁에 있는 방(왕상 6:5, 8), 성전에 있는 방(대상 23:28; 스 8:29), 신랑 신부의 신방(욜 2:16) 등으로 언급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기도의 장소로 골방을 들어 말씀하셨는데(마 6:6), 이는 기도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은밀하게 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2)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중언부언’은 헛된 말의 반복이나 주문을 가리킨다.

 

기도의 간절함에서 나오는 말의 반복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그러나 무조건 말이 많으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미신이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때 인격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바른 마음에서 나온 진실한 기도가 아니라면 기도의 많은 말은 의미가 없고 효력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태도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사실 그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우리의 영적 유익이 되게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다(롬 8:28).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 곧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다. 기도는 신앙 성장을 가져온다. 기도는 우리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말씀하신 대로 외식 자들처럼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고,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지 말고 즉 주문 외우듯이 무의미한 말을 반복하지 말고, 바른 기도를 하라는 뜻이다. 주께서는 제자들과 이방인들을 구별하시는 뜻으로 ‘너희는’이라는 말을 강조하신 것 같다.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표현하셨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신다고 표현하였고 또 엘리야와 예수님 자신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증거 하였다. 땅은 인간에게 주셨지만,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고 말하였다(시 115:16). 그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또한 하나님께서 높으신 하나님, 초월자이신 하나님,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의 창조자, 보호자, 공급자이심을 나타낸다. 그의 피조물인 인류가 넓은 의미에서는 다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을 부정하고 거역하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잃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만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이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를 경외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신 것이다.

 

(3)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거룩’은 구별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피조물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구별이 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영광스런 이름이시다. 그의 이름은 우리가 큰 두려움을 가지고 불러야 할 이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섬기며 그를 높이고 찬송하며 그가 창조자와 섭리자 이심을 고백하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그를 부정하고 그를 무시하고 경멸하며 그를 대적하고 욕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물질적 부요와 존귀, 세상의 권력, 육신의 쾌락을 더 크게 여기며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우상을 섬기며 음란과 거짓과 탐욕으로 행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비방을 받기도 한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 도다.”(롬 2:2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둘째 “주의 나라가 임 하옵소서”

‘나라’에는 백성과 땅과 왕과 법이 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시며 백성은 인류이며 땅은 세상이고 법은 그의 명령이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켰더라면, 그 나라에서의 삶은 평안과 행복의 삶이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질병도 가난도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시조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그 나라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 결과, 평안과 행복의 삶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라는 기도는 그의 통치권의 회복을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권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 시작된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약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이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시록 1:6),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 9:37-38)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게 하옵소서.”(살후 3:1),

 

셋째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1)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내어주신 목적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요 3:16). 하나님의 뜻은 택자 들의 구원이요(요 6:39-40)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마 28:19; 막 16:15) 참된 교회의 건립이다(단 2:44; 마 16:18).

(2) 죄 없는 삶,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삶이다.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딛 2:14),

 

넷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다.

양식(Food)은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음식물을 말한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한 채 급박하게 출발했으나(출 12:39) 하나님께서 알맞은 양식을 주셨다(출 16:32; 시 78:24).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는 분이기에(시 111:5), 양식이 끊이지 않고 풍부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사 51:14), 양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나타내기도 했다(겔 4:16).

 

예수님도 양식에 대해 몇 번 언급하셨다. 먼저 제자들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고 하여 다른 기도와 함께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막 6:8)라고 하셨다. 여기엔 전도자는 물질적인 필요 이전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예수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고 하셨고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고 하셨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 시옵소서”(잠 30:8)라는 소원을 두 가지 기본적 소원 중 하나로 증거 하였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天父)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5-26).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마 6:31-32).

 

다섯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여기서 ‘우리의 죄’는 구원받은 이후의 죄들을 가리킨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의 옛 죄악들은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죄악성 때문에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 한다. 성도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실수와 죄가 죄 아닌 것은 아니다.

 

여섯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세상에는 마귀의 시험이 많다. 마귀는 우리로 불신앙과 낙심과 죄에 떨어지도록 시험한다. 주께서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다”고 말씀하셨다(눅 22:31).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도다”라고 말했다(벧전 5:8). 사도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다(엡 4:26-27).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눅 22:46; 마 26:41). 사도 바울은,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교훈하였는데(엡 6:10-11),

 

그것은 진리의 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켰고, 그것들과 함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그는 말하였다(엡 6:14-18).

 

일곱 번째 “이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여기서 권세(權勢, Authority)란 남을 복종하게 하는 힘을 말한다. 성경에는 왕(삼하 3:6; 왕하 10:34)이나 하나님(롬 13:1), 예수님(마 7:29; 막 2:10; 계 12:10)의 권세는 물론 음부의 권세(시 49:15; 89:48), 어둠의 권세(골 1:13) 등도 언급되었다.

 

바울은 그 당시 여인들에게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찌니라”(고전 11:10)고 권면했다. 또한 세상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롬 13:1), 모든 권세의 머리는 예수님이라고 했다(골 2:10). 그리고 요한은 세상의 마지막에 사탄의 권세가 잠시 득세하지만 결국엔 하나님의 권세에 굴복당할 것을 예언하였다(계 12:10; 13:2; 17:12-14).

 

아멘(Amen)이란 ‘의지 한다’, ‘신뢰가 된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만’(Aman)에서 파생된 말로 ‘진실로, 참으로, 확실히’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멘은 다른 사람이 말한 것에 동의를 표할 때(왕상 1:36; 렘 28:6), 맹세나 저주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할 때(민 5:22; 신 27:15), 기도나 찬양이 끝날 때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의 의미로 쓰였다(대상 16:36; 시 41:13).

 

또한 바울의 편지(롬 1:25; 16:27)와 기도의 마지막에도 쓰였다(고전 14:16). 예수님도 이 말을 사용하셨는데 예수님 자신의 신적 권위를 나타내시기 위해서였다(요 1:51; 5:19, 24-25). 개역성경에서 아멘은 그대로 음역되어 아멘으로 기록되거나(신 27:15-26; 계 22:20) ‘진실로’(마 6:2, 5), ‘진실로 진실로’(요 1:51; 5:19, 24-25)로 번역되었으며,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자로 ‘아멘’ 그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키기도 했다(계 3:14).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셨다. 주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을 반드시 용서하라고 교훈하시며,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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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식으로 금식하지 말라 (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의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16)

 

기색(氣色, Countenance- KJV)이란?

1. 마음의 생각이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아하수에로 왕이 왕명을 어긴 와스디를 처벌하는 일로 신하들을 불렀을 때 그들은 왕의 기색을 살폈다(에 1:14).

 

예수님은 금식할 때 외식하는 사람들처럼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6:16). 예수님께 나와서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던 사람은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요구를 듣고 슬픈 기색을 하며 돌아갔다(막 10:22).

이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행위로, 외식으로 신앙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인의 전통은 금식을 대단한 자랑꺼리로 생각 했었다. 하루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꼬락서니를 보니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선생님! 바리세인도 우리도 금식을 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 금식을 하지 않습니까?’(마9:14)

 

여기서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는가? (이 친구들아!) 금식 할 때는 따로 있다. ‘새 포도주는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세례요한의 운동은 썩어버린 유대교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이 유대교 전통을 따라서 금식한다? 이런 것이 바로 외식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5.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19- 20).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은 돈과 재물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선한 일, 즉 전도와 구제를 위해 쓰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주께서는 주의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고, 벗었을 때 옷을 입히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는 것이 곧 주님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5-40).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 19:17)고 했다. 구제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21-) 예수께서는 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했다. 우리의 보물과 마음은 같이 간다.

 

6. 눈은 몸의 등불이니(22-23)

예수께서는 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말씀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과 같아서 우리의 눈이 좋으면 온 몸이 밝을 것이지만,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네게 있는 빛’은 우리의 영안(靈眼), 즉 영적 지식, 진리의 지식, 깨달음, 분별력을 가리킨다고 본다. 우리의 마음의 눈이 밝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르고 힘 있게 살 수 있으나,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우리는 방황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대신 재물을 가치 있게 여기는 자는 영안이 어두운 자이다.

 

창세기 13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잘못된 선택을 볼 수 있다. 그는 아브라함과 헤어질 때 물이 넉넉한 요단 들을 택하고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이주하였는데, 그러나 소돔 사람들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었다. 롯은 외적인 조건만 보고 영적, 도덕적 조건을 보지 못했다.

 

7.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24-)

예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인가, 재물인가, 즉 하나님인가, 세상인가를 택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기운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씨라고 말씀하셨다(마 13:22). 주께서는 자기에게 찾아온 한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으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떠나갔다(마 19:21-22).

 

사도 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인데, 그때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딤후 3:1-5). 사도 요한은 우리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교훈하며 이 세상의 것들은 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며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이며 오직 하나님과 그의 뜻을 구하는 자들만 영원할 것이라고 말하였다(요일 2:15-17). 결국, 사람은 둘 중의 하나를 택한다. 하나님인가, 세상 즉 물질인가, 둘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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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25-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무엇을’이라는 말에 강조점이 있다고 본다. 주께서는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음식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사람이 옷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이 사람을 위해 있고 옷이 사람을 위해 있다. 염려는 평안이 없고 근심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나뉘는 것이다.

 

(1)공중의 새를 보라(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드리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天父)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들도 기르시는 아버지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다(욥 38:41).

‘공중의 새’는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새’를 가리킨 것 같다. 새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 부지런한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기르신다. 우리는 새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은가?

 

(2)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27)

‘키’라는 원어는 일차적으로 ‘나이, 수명’을 가리킨다. 또 ‘한 자’라는 말은 시간의 측정에도 사용된다. 우리의 염려는 우리의 목숨을 위해, 또 몸의 건강을 위해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준다. 마음의 평안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마음의 불안과 염려는 병이 될 뿐이다.

 

(3)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28-29)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아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백합화(Lily)란 백합과의 다년초로, 성경에서 백합화는 순결과 신부를 상징하는 식물(아 2:1, 2, 16)로 들꽃, 수선화, 연꽃, 아네모네 등 다양한 종류들을 말한다.

 

백합화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비유에서 사용되었는데 호세아는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다’(호 14:5)고 표현했고 이사야는 사막이 백합화같이 즐거워할 것이다(사 35:1)라고 예언했다.

 

이 꽃은 구약의 건축물에서 낭실 기둥머리의 도안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그래서 성전의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 꼭대기에는 백합화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왕상 7:19, 22). 또한 성전에서 사용하는 바다(대야)의 가장자리에도 백합화의 모양이 새겨졌다(왕상 7:26).

 

길쌈(Spin)은 자연섬유를 원료로 하여 천을 짜는 일을 말한다. 잠언에 나타난 현숙한 여인의 표현 중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잠 31:19)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 당시 길쌈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4)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인간은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와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다(창 1:26, 27). 그러나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다.

 

들풀(grass of the field)은 야생풀을 말한다. 예수님은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무엇보다도 귀한 사람들을 아름답게 입혀 주실 것을 말한 것이다(마 6:30; 눅 12:28).

 

(5)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첫째로, 물질생활에 대한 염려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 즉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생활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6)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시면서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를 예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곧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며 행하는 것을 말한다. 죄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에덴동산에서 의식주에 부족이 없이 영원히 행복을 누렸을 것이다. ‘이 모든 것’ 곧 의식주의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가 먼저 힘쓸 것을 힘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7)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34)

예수께서는 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내일 일을 염려하게 된다, 성도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다.

 

내일(tomorrow)이란 오늘이 지난 다음날을 말하며 명일과 같은 뜻이다. 훗날, 미래를 의미하기도 한다. 애굽 바로왕은 개구리 재앙을 당한 후 모세에게 ‘내일’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고 했고(출 8:10), 하나님은 ‘내일’ 이스라엘 생축과 애굽 생축을 구별하여 이스라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다(출 9:5-6).

 

또한 하나님은 6일 동안 만나를 거두고 ‘내일’은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하셨고(출 16:23) 고기를 달라고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내일’ 고기를 주겠다고 하셨다(민 11:18).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일’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며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였고(수 3:5),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할 것을 전하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내일’ 자신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삼상 28:19).

 

왕 앞에 나온 에스더의 청이 무엇이냐고 묻는 왕에게 에스더는 ‘내일’ 말하겠다고 하였고(에 5:8) 또한 왕에게 ‘내일’도 조서대로 행하여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달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에 9:13).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할 때 베스도는 ‘내일’ 듣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행 25:22).

 

성경 속의 ‘내일’에 대한 교훈

1) 선을 베풀 힘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갔다가 ‘내일’ 오라고 말하지 말라(잠 3:27-28).

2)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

3) 바울은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 하며 죄를 지을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15:32).

4) ‘내일’ 아무 도시에 가서 장사하여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허탄한 자랑을 하지 말라(약 4:13-16).

인생은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날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 하루로 충분하다. 내일의 것을 오늘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살면 된다. 사람은 일을 할 때 조금 염려하기도 할 것이나,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면 된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고 내일 일을 오늘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염려는 불신앙에 불과할 것이다.

 

 

이응주 목사(재일한국선교사협의회(CCKJ) 회장 역임, TOGANE HOME CHURCH )

  E-mail : ungjoor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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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별 따라가다가, 꿈의 지시대로 순종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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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5.06.13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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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이응주목사와 함께하는 성경강해-2

    제1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마태복음서는 흔히 유대인의 복음서라 한다. 왜냐하면 1장 1절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계보)라’고 시작 되는 것에서 이미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글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Date2015.06.07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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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이응주목사와 함께하는 성경강해-1

    이응주목사와 함께하는 성경강해-1 마태복음 강해 서론 지난 2010년도 실제적인 사역현장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그 후 그해 2월 26일부터 2014년 10월 2일까지 4번 신구약성경 통독을 했다. 그리고 1964년 12월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해서 내 나름대로 성경을 ...
    Date2015.06.04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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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道)(이응주목사)

    무슨 선한 일을 하여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사람(마 19:16, 관원 - 눅 18:18)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수없이 성경을 읽기도 하고 큐티도 하고 설교도 듣고 있지만 단번에 주신 ...
    Date2015.05.05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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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복음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응주목사

    ‘복음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
    Date2015.04.30 Bywg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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