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왕의 왕 산상수훈 다섯번째
기도에 대한 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기들이다. 기도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가에 따라서 종교관과 기도의 내용이 다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그 내용과 목적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반복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내용대로 반복적으로 항상 드려도 좋은 내용이다. 다른 종교에서 하는 기도와는 내용과 질이 다르고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를 자유롭게 드리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마태 6장에서는 주님께서 모범적인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는데 여기서는 기도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자세와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이 많이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찾으라는 것이며 인간방법으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에게 구하라는 말씀과 찾으라는 내용과 두드리라는 내용대로 열심히 간절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려도 응답에 대해서는 불만을 하는 자들도 없지 않다. 이유는 응답이라는 결론이 자기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상식을 인간적이고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불만과 불평을 드러내는 일들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는 명령어로 강하게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세 가지 면으로 구체적으로 단계를 말씀하고 있다.
1.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7:7-8)고 주께서는 기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세상일도 이치가 비슷하겠지만, 이것은 기도에 대한 진리이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은 더 간절해지는 기도를 나타낸다. 또 ‘그러면’이라는 말의 반복은 기도의 응답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응답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받을 수 없다.
기도는 단지 우리가 어떤 필요와 부족을 느낄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의지할 때 더 잘할 수 있다. 기도는 믿음에 비례한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으며, 믿음이 적으면 조금 기도할 것이며, 믿음이 강하면 많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기도의 본을 보이셨다. 그는 새벽 미명(막 1:35)에 기도하셨고 또 밤에 기도하셨으며 때로는 밤새도록 기도하셨다.
주께서는 기도 응답을 강조하시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라는 지식과 믿음을 가질 때 낙심치 않고 더욱 잘 기도할 수 있다. 기도의 응답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는 응답이 더디면 낙심할 수도 있겠으나, 기도의 응답을 믿는 자는 낙심치 않고 더욱 열심히 기도할 것이다.
1) 구하라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누구를 향해서 필요함을 나타내고 필요한 것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진다. 건강을 위해서 경제를 위해서 가정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있어야 할 내용들을 요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보통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복적인 기도의 내용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하는 용어다.
2) 찾으라(눅 15:4-10)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회복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을 찾고 잃어버린 물건을 찾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상점에나 슈퍼에 가서 많은 물건들 중에 필요한 것을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1)한 목자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모습
(2)여인이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리고 찾는 모습
(3)둘째 아들이 탕자생활에서 돌아온 것을 아버지가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 아 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11-24)는 말씀을 통해서 찾으라는 내용을 묵상하게 한다.
찾는 모습들이 적극적이고 자기들에게는 소중한 내용들임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성도들도 위의 세 가지 비유의 내용과 같이 찾는 모습이 진실하고 적극적인 기도의 자세와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두드리라(계 3:20)
문이 닫혀있을 때 안에서 열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의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기도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진지한 모습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 이들이 떡을 달라하면(마 7:9-11, 눅 11:11-13)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생선(Fish)은 말리거나 절이지 않은 잡은 그대로의 물고기를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식으로 빵과 함께 생선을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마 15:36; 요 21:1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고기가 없다고 불평하며 그리워했던 애굽의 식품 목록 가운데 생선이 들어 있다(민 11:5).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선을 숯불에 구워 제자들이 아침 식사로 먹도록 하셨다(요 21:9, 10, 13).
주께서는 기도의 응답에 대해 인간적 비유로 설명하셨다. 사람도 무엇을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부모는 없을 것이다. 악한 사람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들이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는가? 그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는 좋으신 아버지이시며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온 세상을 섭리하시며 특히 참된 교회들을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다(롬 8:28).
3.너희도 남을 대접하라(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다.
대접(待接)이란 손님을 맞아 친절히 대우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경에는 나그네와 행인을 대접하는 장면이 창세기에서부터 나오는데, 이는 중근동 지역에서만 있었던 풍습이 아니라 시리아, 애굽, 그리스, 로마에서도 있었다.
아브라함(창 18:1-8; 24:11-61),
롯(창 19:1-8),
라반(창 24:29),
욥(욥 31:32),
엔돌의 신접한 여인(삼상 28:24-25),
수넴 여인(왕하 4:8)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에게서 이러한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신약 시대에도 바울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교회들에게 권면하고 있다(롬 12:13, 20; 딤전 3:2; 5:10; 딛 1:8; 히 13:2).
사람을 대접하는 일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마 10:5-15), 또 70인을 여러 지방으로 보내시면서(눅 10:1-16)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라고 명하시고 그들을 대접하는 자의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눅 10:7)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사람들의 환대에 의존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 말씀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는 말씀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준다(마 25:35; 10:40; 요 13:20).
‘황금률’이라고 알려진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물론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이웃에게 좋은 것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웃에게 받기를 원하는 대로 그에게 주어야 한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이 아니고 문맥이 보이는 바와 같이 기도의 교훈의 결론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것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께 좋은 것을 드려야 함을 교훈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위해 시간과 돈과 힘을 드린다면, 그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시간과 돈과 힘을 드리지 못하고 드려도 부스러기를 조금 드리고 오히려 그의 미워하시는 것들, 세상의 죄악 되고 헛된 것들을 행한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좋은 기도 응답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에게 좋은 것, 아니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 믿고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기도는 신자들의 특권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하는 자녀는 하나님 아버지께 좋은 것을 받을 수 있으나, 믿음이 없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며 또 기도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 좋은 것을 받을 수 없다. 또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한다면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합당한 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는 날마다 성경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기도로 대화를 나누며 또한 자녀답게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