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문-이응주목사

by wgma posted Aug 16, 2015 Views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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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강해 '만왕의 왕 산상수훈 여섯번째' 

 

두 가지 문     마태 7: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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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길이 많아서 어느 길로 가야 할까하고 방황할 때가 있다. 육지에도 산에도 바다에도 공중에도 길이 있어서 길 따라가야 하는 법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세상풍속이다. 마찬가지로 영적면에서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 사람들은 좁고 위험하고 힘든 길을 가기 싫어한다. 시편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라고 담대한 신앙의 표현을 하기도 했다(23:4). 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하면서 주님만 의지하면서 나아갔던 것이다.

가는 길에 목적지에는 문이 있다. 그 문을 통과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린다.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간 자는 생명의 세계로 인도함을 받지만 넓은 문으로 들어 간자는 뒤돌아서지 못하고 후회해도 이미 늦어지게 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선택을 잘해서 인생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다고 해서 생명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진짜는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과 문도 하나 밖에 없다. 성경이 말씀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에 대해서 찾는 사람이 적다고 했다. 두 가지 문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자.

 

1. 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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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

 

* 좁은 문(Narrow gate)

크기와 폭이 보통 문보다 작은 문을 말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7:13)라는 말씀을 하셨다. 누가복음에서는 그 말이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으로 나온다(13:23-24). 여기서 좁은 문은 구원, 즉 천국의 문을 가리키며, 구원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한 데 비해 멸망의 문은 넓어서 많은 이들이 선택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은 구원의 도, 종교, 신앙관, 인생관을 가리키며, ‘은 생활방식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주님의 모든 말씀과 성경 전체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따르라는 뜻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 유일한 구주로 믿어야 한다. 이것은 좁은 문이다. 사도 베드로의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4:12)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말씀하셨다(45:6; 45:22). 창조주 하나님만 또한 구주이신 것을 증거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유일한 구주이시라는 말씀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 곧 신적 구주이심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이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구원의 진리이며 영생이 되신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증거 하였다(딤전 2:5).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중보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구주이시다. 그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11:28). 모든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께로 나오면, 그는 그들에게 참 안식을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셨다(6:35, 3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마지막 날 부활할 것이다. 우리에게 영생과 부활을 주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을 순종하고 그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10:37-38). 우리는 가족들보다도,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하며 우리 자신을 부정하고 그를 따라야 한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셨다(16:24-25). 또 누가복음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그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셨다(9:23-24).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예수께서는 고난의 길을 가셨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는 고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큰 희생, 어려운 희생을 요구하셨다. 예수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14:26-27, 33).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했다(요일 2:15).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후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마음을 굳게 하며,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빌립보서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했고(1:29), 디모데후서에서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말했다(딤후 3:12). 예수를 믿고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걷는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좁은 문이며 좁은 길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며 어려운 희생과 고난도 각오해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왜냐하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기 때문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다. 그것은 다원주의, 포용주의의 문이다. 그것은 무슨 종교든지 포용하는 종교다원주의이다. 그것은 무슨 철학 사상이든지 포용한다. 그것은 무슨 인생관, 가치관이든지 포용한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무슨 신앙관이든지 포용한다. 그것은 자유주의를 포용하고 천주교회를 포용하고 은사주의를 포용한다. 그것은 세속주의, 물질주의, 육신적 쾌락주의를 포용한다. 또 그 길, 즉 그 생활방식도 넓다.

 

거기에서는 오직 한 가지의 덕만 있다. 그것은 관용과 포용만이 덕이다. 거기에서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지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거기에서는 오직 한 가지만 악이다. 거기에서는 기독교 같은 배타주의만 악으로 간주되고 배척을 받는다.

그러나 그 문과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한다. 다원주의, 포용주의의 사상은 마귀의 사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배치된다. 그것은 오류에 빠져 있는 자들로 하여금 회개치 못하게 만들며 그 죄 가운데 거하게 만든다. 요한계시록 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정신)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세상은 각종 더러운 정신들의 집결지이다. 교회들도 배교하며 다원주의적이고 포용 주의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로 가는 자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많은 종교인들이 그리로 가고 있고 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교인들도 그리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신자나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반면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힘들어서 찾는 이가 적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고 말씀하셨다(20:3). 하나님께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는 우상숭배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우상숭배를 가장 큰 죄로 간주하신다. 그것은 배타주의이다. 기독교는 배타주의이다.

예수께서도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고(10:37-38),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14:6). 또 그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셨다(16:16).

사도 베드로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말했고(4:12), 사도 바울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했다(딤전 2:5). 성경적 기독교는 배타주의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만 구주이시며 다른 구주는 없다고 고백하며 증거 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은 우리의 주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부정하며 자신을 절제하며 성경의 교훈에 복종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은 우리에게도 죄성과 죄의 습관이 남아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항상 내면적 싸움이 있다. 우리가 자신을 부정하고 절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오늘날같이 교회가 넓어져서 속화된 때에 옛 신앙, 성경적 신앙, 보수신앙을 지키는 것은 좁은 길을 걷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이 세상을 사랑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한다.

 

이런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시대적 풍조를 반대하고 옛길을 붙드는 것은 편협하거나 극단적이게 보이는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성경의 교훈대로 가는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 이 길이 어려운 길, 힘든 길이지만, 이 길은 영생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이 문을 찾고 이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고 했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했다(고전 1:18, 21, 22-24).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자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성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며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구하며 걸어가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넓은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만 믿고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성경만 믿고 성경의 교훈대로만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특별히 이 혼란한 시대에 연합주의, 신복음주의, 은사주의로 가지 말고, 오직 역사적 기독교 신앙, 배교와 타협과 분리된 근본주의적 개혁신앙, 즉 보수정통신앙을 굳게 지키자.

 

우리는 죄성과 연약성과 죄의 습관을 가진 자기를 부정하고 인내하며 영광스러운 천국만 바라보고 땅의 좋은 것들을 헛되게 여기며 하나님의 교훈대로, 신구약성경의 가르침대로, 경건하고 거룩하고 의롭고 정정당당하게 살고, 또 주 예수님을 본받아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가자. 그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2. 넓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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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라고 했다. 과연 넓은 문은 편리하다. 그러면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종교에도 편리한 종교가 있고 까다로운 종교도 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편하게 넓게 살아보기를 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는 편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동무도 많고 즐겁게 동행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마지막 골인지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결국 두 가지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데 천국과 지옥이라는 종점이다. 우리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믿음으로 달려가야만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어디든지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숫자가 많은 곳으로 택해서 따라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를 잘 만나야 한다. 예수께서 나는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했다. 그래서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37:5) 그러면서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느니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5:21-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 하나이다”(10:23) “사람의 걸음을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수있으랴”(20:24)

 

 

자기의 가는 길을 알지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행을 당하는 일이 없는 삶을 지혜롭게 좁아도 생명의 문(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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