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성경바로읽기 27
요한계시록 6:1-2의 첫 번째 인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요한계시록은 숫자와 색깔 등의 상징으로 인해 해석도 다양하다. 그러나 어느 성경과 마찬가지로 앞뒤 문맥에 통일된 해석이 요구된다. 요한계시록은 7이란 숫자로 사건을 이야기한다. 7교회 7인 7나팔 7대접 등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인 사건은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어린 양이 7인을 차례대로 열면서 진행된다. 첫 번째 인은 흰말이 이끄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이들은 복음의 승리로, 어떤 이는 적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보는등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첫 번째 인사건을 바로 읽는 것인가?
1-4 번째까지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나팔사건이나 대접사건을 보면 1-4번째까지는 자연현상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던간에] 에 관한 공통된 면이 있다. 인 사건도 마찬가지로 1-4번째 인까지는 말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단지 색깔이 다르다. 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다. 여기에서 희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순결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흰말을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고 결국 복음의 승리라고 본다. 그런데 질문이 생긴다. 다른 세 가지 사건과 통일성이 없다. 다른 세 가지 인사건은 인류에게 해가 되는 사건으로 통일되어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인만은 인류에게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1-4번까지의 공통점에 균열이 생긴다. 또 19장에 보면 백말 탄 자가 등장하는데 19장의 백말 탄 자와 첫 번째 인의 흰말 탄 자가 같다고 주장하곤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가지고 있는 무기가 다르다. 인 사건의 흰말 탄 자는 활을 가졌고 19장의 백말 탄 자는 검을 가졌다. 그러므로 같은 흰말을 탔다고 같다 볼 수는 없다.
첫 번째 인사건도 다른 세 가지 인사건과 같은 인류에게 다가오는 좋지 않은 사건과 관계가 있다. 희다는 것이 순결함과 관계된 것은 맞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태복음 16:15)고 말씀하셨다. 거짓 선지자들도 남이 보기에는 누구보다도 진리를 외치는 자처럼 순결한 자처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순결된 것처럼 진실한 것처럼 보이면서도 이리와 같이 양을 해치는 그것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4장의 말세 사건과 비교할 때 첫 번째 인사건은 미혹의 사건이다
1-4가지 인사건들이 공통된 면을 가지고 있다면 첫 번째 인사건이 흰말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면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무엇인가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그 무엇임이 분명하다. 이는 말세장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태복음 24과 비교해서 더욱 그러하다.
복음서는 각기 말세장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이다. 그런데 요한복음에는 말세장이 없다. 그런데 복음서의 말세장과 같은 내용의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6장 인사건에 등장한다. 마태복음 24:4-8을 보자.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많은 사 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6)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 니니라 (7)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 으리니 (8)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장의 순서와 인사건의 순서를 대입해보자. 2번째에서 4번째 인사건은 난리와 난리 소문과 관련이 있다. 이 난리와 난리의 소문은, 2번째 인사건인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사건(전쟁), 3번째 인사건은 기근(경제), 4번째 인사건은 지진(죽음)과 각기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1번째 인사건은 무엇과 연관되어 있는가? 그것은 미혹의 사건이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베드로전서 5:8에 이름같이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진실인양 포장하고 이것이야 말로 정말 순결한 진리인양 다가오는 거짓 진리가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1번째 인사건에서 밝힌대로 활을 가지고 먹이감을 향하여 나아가며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한다. 이 거짓 진리 곧 미혹은 사람들의 생각을 점령하여 나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할 것이라는 장담하에 흰 말 탄 자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있다. 미혹의 사건 이것이 1번째 인사건 흰말사건의 내용이다.
거짓 진리가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있다. 농부가 알곡을 밭에 뿌렸는데 밤사이에 원수가 가라지를 밭에 뿌렸다는 것이다. 종이 와서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을까요 했더니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도 다칠까 하니 추수 때까지 두라는 비유이다. 이 비유는 참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거짓 진리가 이 땅에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가라지가 알곡처럼 보인다는데 있다.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면서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선포되었다. 그런데 다아윈이 종의 기원을 쓴 이 후 진화론이 서양 세계를 좀먹기 시작했다. 마침내 진화론이 참 과학인양 학생들의 과학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창조주 하나님을 국가의 간섭없이 자유롭게 믿고자 해서 세워진 미국에서, 그래서 공립학교에서도 성경과 기도를 했었던 미국에서 이제는 성경이 도전받고 있다. 성경이 죄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 동성애를 인권이란 이름으로 인정하기 시작하는가 하더니 2015년 6월 26일 미국 대법원은 동성결혼이 합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들을 이 불법적인 일을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의 단어를 써가며 인권이란 눈으로 동성결혼은 가장 존엄한 결혼이라고 외쳤다.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미혹의 물결은 교회까지 점령해가고 있다. 거짓 진리가 인류의 생각을 점령해 가는 사건은 너무나도 많아서 여기에 조금이라도 거론조차 못할 정도이다.
교회는 이미 이단 사이비의 도전에 거의 무방비 상태화 된지 오래되었고 디모데후서 3장에서 경고한대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기 좋은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에 이끌리어 항상 많은 것을 배우고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해서(디모데후서 3:6-7) 거짓 진리에 의해 서로 속이고 속임을 당하는(디모데후서 3:13) 현실이 지금의 모습이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세상에서 보겠느냐’(누가복음 18:8)는 예수님의 경고가 점차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첫 번째 인사건은 미혹의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점점 더 다가오는 마지막 때를 맞이해서 성경을 변개시키려는,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리고 예수님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성경의 소리만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