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철목사의 산상설교 읽기
하나님 나라의 백성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4:23)
예수님에 관한 기록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으로 표현한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님에게 관하여 선포된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자체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선포한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하늘의 왕국 곧 천국으로 표현한다. 대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 선포한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마태복음 5-7장)는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 백성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산상설교의 배경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성경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 곧 왕이 되신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의 권리(하나님의 주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표현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인되시고 왕되신 나라,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도록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인간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맡기셨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유지되도록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맡겨졌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는 인간의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경고한다. 하나님의 주인(왕)되심을 명심하라. 이러한 하나님의 경고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지 말라는 금령으로 인간에게 명하여 진다.
인간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맡겨진 세상에서 스스로 주인됨을 선포하고 인간의 나라를 건설해 가기로 결정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멀어지는 타락 사건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아닌 인간이 보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하나님 나라를 기억에서조차 잊어버렸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이스라엘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선포할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신으로만 생각하고 다른 민족들에게 선포해야 할 사명은 망각한 채 다른 민족이나 나라와 같이 인간의 나라로 변해져 있었다. 단지 하나님이 선포하신 모세의 법만 붙잡고 자신들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배경에서 인류를 원래의 하나님의 나라로 돌려놓기 위해 오신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 이것이 성경이 등장하고 예수님이 오신 배경이다. 인간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왕되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서 세상을 바로 다스리며 살아가는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산상설교의 배경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이러한 것이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산상설교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선포되다
마가복음은 예수님 말씀의 핵심을 더 구체적으로 전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가까이 왔다”라는 문구를 영어로는 “at hand”로 번역된다. “손에 있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는 선포이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의미는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졌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있었던 세례 요한은 이를 아주 생생하게 경고한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임하면 인간의 나라들에게 내려질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심판이 주어질 하나님의 나라가 마침내 임한 것이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인간에게는 이미 심판의 판결이 주어졌다. 에베소서 2:1에서 인간은 모두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형수에게도 사형을 집행하기 전까지는 살아날 기회는 남아있다. 예수님의 오심은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사형수에게 살아날 기회로 다가온다. 예수님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에게 마지막 사형을 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신 것이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된다. 인간 나라의 백성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마치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에게 합법적인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과 같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야 말로 복음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사형이 집행된다. 그러나 이 기회를 붙잡으면 영원히 사형에서 면해진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 기회는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예수님이 기회로 인류들에게 다가 온 것이다.
예수님은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하고자 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의 최종 판결이 된다. 그러나 지금은 기회이다. 예수님의 초림은 인간들의 죄를 사해 주기 위한 길을 마련하고자 해서 오신 사건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선포된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란 이렇다고 선포하신다.
산상설교는 윤리적으로 착한 삶이 아닌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준을 선포한다
기독교는 인간이 보기에 윤리적으로 착한 자가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자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가르친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왕되신 하나님을 모르면 되겠는가? 예수님이 우리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고자 함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자 함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절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는 없다. 왜냐면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의 착각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간이 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들 보기에 좋은 착한 인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당연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인간들이 보기에도 선한 인간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듣고 보면 인간들이 보기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그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인간 나라의 기준으로 볼 때는 인정할 수 없는 그 기준이 산상설교에는 등장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준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돈인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인가? 인간의 권리가 중요한가, 하나님의 권리인가?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기준을 말씀한다.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김성철목사의 산상설교 읽기 2
산상설교 한눈에 보기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태복음 5: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 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태복음 7:28-29)
마태복음 4장 은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로 끝을 맺으면서 5장에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본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나아온다. 누가복음 6:20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고 나온다.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예수님에게 나아온 무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리가 아닌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물론 무리들도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가르침을 듣는다.
예수님이 산상설교의 말씀을 단지 한번만 하신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산에서 때로는 평지에서 때로는 어떤 장소에서 한 번에 산상설교의 전 내용을 말씀하시기도 하셨겠지만 산발적으로 제자들에게 전했을 것이다. 따라서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는 산상설교의 내용이 여기 저기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 곳에 묶어서 기록했다. 산상설교는 5-7장에, 천국 또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13장에, 말세에 관한 말씀은 24-25장에 묶어서 기록했다. 그래서 마태복음서를 읽거나 듣는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주제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태복음을 읽고 있노라면 예수님은 가르침에 있어서 아주 모범적인 선생이다. 그것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는 뛰어난 선생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성경박사로 여겨졌던 서기관들과는 다르게 무리들은 여겼고 그 가르침에 놀랐다.
일목요원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고 있는 마태복음서는 산상설교의 내용 역시 주제별로 잘 묶어서 기록하고 있다. 이제 산상설교를 주제별로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마태복음은 천국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인에게 선포하고 있는 복음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란 용어대신 천국이란 용어를 선택한 것이다. 천국이란 곧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뜻이 말씀이 통하는 나라이다. 산상설교의 시작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이라면서 천국(하나님 나라)로 시작한다. 그리고 5장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처럼 온전하라고 말씀한다. 이렇게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의 왕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들 곧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선포되는 말씀이다.
6장에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며 7장에서는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심으로 산상설교는 예수님의 제자들 확장시키면 하나님 나라(천국) 백성들의 삶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 인격의 특징(5:3-10)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떠한 인격을 가지는가? 소위 팔복으로 불러지는 그것이다. 이는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이룰 수 있는가의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니다. 여기에서 복이란 행복으로 번역하는 것이 이해를 쉽게 한다. 성경에서 행복이란 관계에서 온다고 말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떠한 인격을 가지는가? 이것이 팔복의 요점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과 세상과의 관계(5:11-16)
성경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을 등지고 믿는 자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살거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자신을 수양하며 살라고 말씀한 적이 없다. 오히려 복음을 들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으로부터 악한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 안에서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삶의 원리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 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5장이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는 질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문자적인 율법의 내용에만 관심을 가졌다. 여기에 예수님은 율법으로만 자신들을 비춰보면 도저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 원수까지도 용서하며 다가가는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 질 수 있는 길, 곧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원리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삶의 목적(6장)
하나님 나라 백성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사람 앞에서 행하는 자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자인가? 예수님은 특별히 기도의 문제를 가지고 구제와 기도 그리고 물질의 문제를 가지고 접근하신다. 6장에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 주기도문이 들어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타락한 인간이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특히 물질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6장에서 예수님은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삶의 기준(7장)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무엇을 기준삼아 살아가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필수다. 잘못하면 유대인들이 가진 율법주의로 돌아간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판하는 자에 대하여, 대접함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선택이 주어진다. 넓은 무인가, 좁은 문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사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자신들이 사는 삶의 영역에서 이루고 살려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