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비밀 (마태 13:1-23)-이응주목사

by wgma posted Nov 12, 2015 Views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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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비밀

(마태 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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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기록된 내용은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한 후 A.D 28년경으로 보고 있다. 즉 약 2년쯤 되었을 때인

것 같이 보여 진다. 그리고 13장은 천국의 비밀과 천국의 본질에 대한 비유 이야기로 천국론이라 이름

 부칠 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1) 네 종류의 밭의 비유이야기 (1-23, 막4:1-9, 눅8:4-8)

첫 번째 이야기가 4가지 밭의 비유 이야기로부터 시작 된다.

우선 마가복음 3장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는 부분을 살펴본다.

(1)회당에서 만난 사람들(막3:1-6)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기 위해 병자를 데리고 와서 모였던 사람들이다.

(2)바닷가에서 만난 사람들(막3:7-12)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모여 온 사람들이었다.

(3)집에서 만난 사람들(막3:20-30)

이곳에 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친족들로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붙들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목수일 잘해서 가족들 부양하던 사람이 어느 날 미쳐서(?), 제자들 한 혹은 몇 사람들이, 거지꼴하고 돌아다니며 천국 복음 운운 하는 것이 친족(가족)들 보기에는 영락없이 미친 무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데려다가 전처럼 목수일해서 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이나 착실하게 하라고 데리러 온 사람들이다.

(4)산에서 만난 사람들(막3:13-)

산에까지 따라간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었다. 본래 산에 오른다는 것은 힘든 다는 걸 말하는 것 아닌가? 예수가 가자하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사람들, 산이건 들이건 바 닷가에도,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곳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 함께 욕먹는 자리, 때론 먹을 것 이 없어 들판의 밀 이삭을 잘라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려 했던 자리,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조롱당하는 것이 일수인 자리, 이 날은 그를 따라 산을 오른 사람들이다.

그리고 13:24-30(막가4장)절에는 좋은 씨앗에 대한 교훈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4가지 밭에 대한 비유

이야기를 하신다.

첫 번째 비유(마태 13:4) =‘씨 뿌리는 자가 가서 뿌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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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러는 길가(마태 13:4)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막4:4-) 마가 3장에서 언급한바, 회당에서 만난 사람들에 해당된 마음의 밭이다. 이 사람들의 마음은 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길이란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곳이 길이다. 이 사람들의 마음은, 이사람 저 사람들이 밟아 버린 마음이 아닐까? 즉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밟고 지나가고, 어느 이름난 목사가 밟고 지나가고, 어느 교수가, 철학자가, 부흥강사가 밟고 지나 간 마음, 그래서 그 마음은 어느덧 길이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본다. 여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곧 ‘씨’라 했는데, 씨를 뿌려도 길에 떨어진 씨는 길바닥 위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는데, 새는 그걸 보고 즉시 물어가서 먹이로 삼아(빼앗아) 버린 다는 것이다, 새는 마귀라 했는데,(막4:15) 회당이란 곳이 사람들의 마음을 길로 만드는 곳이 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성경공부 많이 하면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 된다고? 잘못된 길로 유혹하고 있지 않는가?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예수의 말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고발할 내용들을 찾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이름난 유명 인사들의 명 강의를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학벌도 없는(요 7:15) 나사렛의 초라하고, 무식한(?) 목수의 말을 듣고 열매를 맺어? 이건 처음부터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2)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마 13:5-6)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음으로 말랐고,(막4:5-6) 이 이야기는 바닷가에 모였던 사람들에게서 본 경험을 바탕으로 비유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흙이 얕은 돌밭이란 말은, 속마음은 병을 고치려는 것이 목적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듣지만 그 말씀으로 인해서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 날 때에는 뿌리가 없음으로 곧 넘어지는 자들이다. 예수님을 찾고 믿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행여 출세라 할까? 돈이라도 벌까? 해외 진출이라도 해 볼까? 뭐 얻을 것이 있을까?

그래서 속마음에 다른 걸 담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돌이어 고생만 했다고 생각이 될 때는 원망과 욕만 남기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된다. 바닷가의 사람들은 병을 고침 받은 체험도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죄인으로 몰려서 빌라도 법정에 썼을 때는 ‘저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군중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 외치던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는 일들이다.

(3)더러는 가시떨기(마 13:7)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막4:7-) 가시 떨기, 이 사람들은 3장에서 집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가족(친족)들이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따르려고 예수를 찾는 자들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에 훨씬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라’(막4:19) 사실 돈 걱정, 가족걱정, 자식걱정,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사람이 예수께서 요구한 열매 맺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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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Breath)이란 생물이 살아 움직이는 원기, 또는 거기서 나오는 힘을 말한다. 히브리어 ‘루아흐’(ruach)는 ‘호흡, 생명, 영’의 뜻이다.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으며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아들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다가 요셉이 보내 준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되었다(창 45:27). 욥의 친구 소발은 악한 자의 소망은 기운이 끊어지는 것이라고 하였고(욥 11:20), 욥은 고난으로 인해 기운이 쇠하였다고 말하였다(욥 17:1).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그 기운을 막아서 제대로 결실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3:1-9; 눅 8:4-15). 또 바울은 재림하신 예수님께서 불법한 자를 그 입의 기운으로 멸하실 것이라고 말했다(살후 2:8).

*염려(Anxiety)란 고심함이나 궁리함 또는 근심이나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염려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하고 있지만, 신약은 몇 가지 긍정적인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그가 개척한 교회들에 대한 자신의 관심(고후 11:28)과 또한 자신의 배우자를 기쁘게 하려는 사람의 합법적인 관심을 기록하고 있다(고전 7:32-34). 두 경우들에서 그는 다른 곳에서 ‘근심하다’ 또는 ‘염려하다’로 번역되었던 헬라어 ‘메림나오’(merimnao)를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성경에서 메림나오가 나오는 구절들은 보통 인간들로 하여금 걱정과 근심하도록 만드는 압박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쓰고 있다.

염려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태복음 6:25-34과 누가복음 12:22-34에 반복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의식주로 인해 걱정하며 염려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한편 그의 청중들에게는 그들이 들의 풀들을 입히시고 새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염려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염려는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데 있어서의 적이 염려다.

바울 서신서들은 신뢰라는 주제를 택하여 실질적인 조언을 주고 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말한다. 염려하는 느낌이 올 때에 우리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표현해야 한다. 그럴 때 주어지는 결과는 이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고 덧붙였다.

*재리(財利, Deceitfulness of wealth)는 재물과 세상적인 욕심을 말한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실 때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의 삶에서 열매 맺도록 하려면 ‘재물과 이익에 대한 유혹’(재리)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3:22; 막 4:19; 눅 8:14).

*유혹(Entice)은 남의 마음을 꾀어 나쁜 길로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우상숭배에 빠지게 했다(호 8:5-7; 암 2:4).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열매 맺지 못함을 말씀하셨다(마 13:22). 베드로는 거짓 선지자들이 굳세지 못한 영혼을 유혹함을 말하고 있고(벧전 2:14, 18), 히브리서 기자는 죄의 유혹에서 피하기 위해 성도들 간에 서로 권면하라고 했다(히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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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게 합당하지 않다’(마10:37)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처음부터 세상 염려는 이방사람(안 믿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니까, ‘너희는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마6:33)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일에 전념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 다는 약속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직장에서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회사로부터 생활비(봉급)를 받기 때문인데, 그것은 회사 경영자(사장)를 믿기 때문에 회사의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회사 사장만큼도 믿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그게 믿음인가? 이해할 수없는 일이 아닌가?

스스로 속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란 말씀으로 인하여, 망하고, 핍박받고, 죽음에 이른다 할 찌라도 말씀을 따라 살다가 가는 것이다. 예수 믿어서 축복이나 받아서 돈이라도 벌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앞에서 얘기한 바닷가 사람들이 된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잘 살고 못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우리가 기대하고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오직 말씀을 따라 살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믿는 자는 항상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교회가 타락하면 무늬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것은 가르침의 내용에서 그렇게 만들어 진다.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는 사람의 희망(심리) 사항을 따라 가르치려는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는 무늬만 예수 믿는 사람을 양산하게 된다.

(4)더러는 좋은 땅(마 13:8)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30배나, 60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4:8-9)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받아 30배, 60배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4:20), 이들은 3장에서 예수를 따라 산에 오른 제자들이었다. 결국 이들이 신약 시대의 개척자들이 된 것이다.

2) 두 번 째 천국의 비유이야기 (마 13:24-30, 막4:30-32, 눅13:18-21)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 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곡식(Grain)

사람의 양식이 되는 농산물을 말한다. 곡물이라고도 한다(창 41:35). 성경에는 밀(출 9:32), 보리(출 9:31), 조(겔 4:9), 나맥(출 9:32) 등의 곡식 종류가 언급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 이러한 곡식을 생산하는 곡창 지대로는 에스드렐론 평원, 블레셋 평야, 샤론 평야, 소렉과 엘라 골짜기 등이 있다.

곡식의 십일조는 제사장, 레위인들에게 주어졌으며(민 18:12; 신 18:4),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에서 먹었다(신 12:17; 14:23). 곡식이 풍성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했으며(신 7:13; 겔 36:29; 욜 2:19; 슥 9:17) 감소는 하나님의 징계로 여겨졌다(애 2:12; 욜 1:10). 곡식은 소제로 하나님께 드릴 때 사용했으며(레 2:14) 주로 불에 익혀서 먹거나(레 23:14; 삼상 17:17; 삼하 17:28)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먹었다(출 8:3; 왕상 19:6; 요 6:9). 또 곡식은 가축 사료로도 사용되었다(왕상 4:28)

곡식과 관련된 비유들

1.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23; 막 4:3-20).

2. 가라지 비유(마 13:24-30).

3. 씨가 자라나는 비유(막 4:26-29).

4. 부자와 곡간 비유(눅 12:16-21).

*가라지(Weed)

강아지풀을 말하나 성경에서는 독 보리와 같은 잡초를 말한다. 모양은 밀과 비슷하나 이삭이 나면 구별이 뚜렷해진다. 예수님은 밭에 뿌려진 가라지 비유를 통해 지상교회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짓 성도들(가라지)과 함께 살고 있지만 마지막 심판 때 구별되어 참 성도들은 천국에, 거짓 성도들은 지옥에 던져질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다(마 13:25-27, 29-30, 36, 38).

*곳간(Treasury)

물건을 간직해 두는 곳 혹은 저장하거나 모으는 곳이다. 성경에는 금 은 동 철 등 보화를 저장하는 곳(수 6:19; 왕상 7:51), 식료품을 두는 창고(대상 27:27; 느 13:12-13) 등으로 적혀 있다. 또한 궁전이나 성전에 있던 창고(왕하 12:18; 14:14; 대상 28:12), 성전 남문 근처에 있던 창고(대상 26:15, 17; 느 12:25), 농민들의 곡식 창고(마 13:30)를 가리키기도 한다.

*추수(Harvest)는 익은 곡식이나 과일 등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말한다(창 45:6). 이스라엘에서는 크게 세 번의 추수를 하였다. 4-5월은 보리 추수를 하였으며(룻 1:22) 6-7월이 되면 밀을 추수하였다. 그리고 가을인 9-10월에는 과일이나 포도 등을 거두어 들였다(출 23:16; 신 16:13-16).

이스라엘에서 추수는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로 중요한 절기와 맞물려 이루어졌다. 보리 추수는 무교절과 오순절 사이에 이루어졌으며(신 16:9) 밀을 추수할 때 맥추절을 지켰다(출 23:16; 35:22; 레 23:15-21; 신 16:10). 그리고 가을의 추수를 끝내고 수장절을 지켰다(레 23:39; 신 16:13).

성경에서 추수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인정하여 추수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먼저 바치라고 명령하고 있으며(레 19:23-25; 출 22:29)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위해 추수할 일부를 남겨 두라고 명령하고 있다(레 19:9; 23:22; 신 24:19-22).

추수의 상징적 의미는 추수는 수고에 대한 보상(시 126:5-6), 종말과 하나님의 심판(잠 25:13; 렘 5:24; 호 6:11; 마 13:30; 막 4:29; 눅 10:2; 요 4:35; 계 14:15) 등을 상징하는 의미로도 쓰였다.

천국의 백성은 씨 뿌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씨는 앞 장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셨다. 좋은 씨(말씀)를 받아 천국백성들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잠시 잠든 사이에 원수들이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그래서 주인(하나님)의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 것이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게다 해도,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셨다.

밭은 교회요,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문제는 곡식은 누구이고, 가라지는 누군가? 하는 것이다. 지금은 똑같이 목사고, 장로고, 집사고, 신자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 곡식이 있고, 가라지가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곡식과 가라지는 자랄 때는 별로 분별이 안 된다. 오히려 가라지가 훨씬 충실하게 잘 자라보 인다. 분별이 되는 것은 추수 때가 되어갈 때, 비로소 구별이 된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거짓 선지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거짓 선지는 양(예수)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분별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무의 열매를 보면 안다고 했다. 여기 곡식이나 가라지는 자랄 때는 잘 모르지만 추수 때가 가까워지고, 열매들이 생기면 그때 구별이 된다. 지금은 거짓(가라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2) 겨자씨와 누룩(마 13:31-33, 막4:30-32, 눅13:18-21)

(1)첫째는 겨자씨 비유다.(마 13:31-32)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Heaven)이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로, 복음서 중 마태복음에만 언급되었다(마 3:2; 5:3; 8:11; 13:11; 25:1 등). 일반적으로 천국, 즉 하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말로 보며, 다만 마태복음은 하나님이란 말을 함부로 쓰기를 주저하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대부분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천국은 메시아의 초림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되었으며 재림에서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자는 서서히 성장하는 천국이며 후자는 돌연히 임재 할 천국이고, 전자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이라면 후자는 초연적이고 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전자는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후자는 22, 25장의 천국 비유에서 그 형태를 찾을 수 있다. 결국 전자가 현세의 교회라면 후자는 미래의 영원한 구원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재와 미래의 두 가지 천국은 별개가 아니다. 현재의 천국 없이는 미래에 실현될 천국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는 외침은 회개하고 메시아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들어가라는 것으로, 현재 교회에서 자라는 신령한 천국에의 초대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에 완성될 영원한 천국에의 보증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혈통이 아닌 회개하고 메시아를 믿는 믿음에 있음을 말해 준다(마 3:8-9).

*겨자(씨)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들에서 자생하거나 재배하는 1년생 식물이다. 4-6월 즈음에 노란 꽃을 피우며 다 자라면 3m 정도 된다. 열매는 양념으로 쓰이고 기름을 짜는 데도 쓰인다. 성경에서 겨자씨는 예수님의 비유에 언급된 씨앗으로 모든 씨보다 작은 씨로 소개되고 있다(마 13:32).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격언 가운데 작은 것을 묘사할 때 쓰이는 ‘겨자씨처럼 작은 것’이란 표현을 인용하신 것이며 아주 미미한 작은 씨가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듯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도래함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시기 위함이었다(마 13:31-32).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하; 참고, 눅 17:6)고 하셨다. 이것은 작은 믿음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질 때 능력 있는 일을 행할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이다.

*나물(Herb)은 유월절 음식 중 하나로, 양고기, 무교병과 함께 먹었다(출 12:8; 민 9:11). 오늘날도 유대인들은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을 기억하면서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는다. 또한 나물은 앗수르 군의 공격에 대해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묘사할 때(왕하 19:26; 사 37:27) 비유적으로 쓰였으며, 예수님은 작은 겨자씨가 나물보다 큰 나무로 성장하는 모습을 들어 천국을 설명하셨다(마 13:32; 막 4:32).

*나무(wood)는 집, 가구, 가재도구, 악기 등 여러 가지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었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번제 드릴 때 제물을 태우기 위한 장작으로 쓰였다(창 22:3-9; 레 1:7-17; 느 10:34). 가정용 땔감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이 일을 담당하는 ‘나무를 패는 자’도 있었다(신 29:11; 수 9:21). 한편 히브리어 ‘에쯔’(ets, 나무라고 번역됨)는 모르드개를 처형하기 위해 세웠던 것(에 5:14)으로 ‘말뚝’을 말한다.

나무에서 나온 수액에서 추출한 ‘나무 진’은, 아기 모세를 넣은 갈 상자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으며(출 2:3),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나무 궤’에 넣었다(신 10:1-5).

나무의 상징적 의미에 대해서

나무는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으로도 쓰였다.

(1)죄인(시 37:35; 마 7:18; 눅 3:9)이나

(2)성도(민 24:6; 사 61:3; 겔 47:7),

(3)장수(사 65:22),

(4)소망(욥 14:7-9),

(5)몇몇 나라들(겔 17:22)을 나무로 비유했으며,

(6)믿음(마 3:10; 7:17-20),

(7)천국(마 13:31-32)을 상징하거나

(8)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는

도구(불붙은 떨기나무(출 3:1-5),

(9)생명나무(창 3:24 등)로 쓰이기도 했다.

성경 속의 나무의 용도

(1)감람나무 : 기름(출 27:20),

성전 안쪽 성소의 문들과 문설주 (왕상 6:32-33), 그룹(왕상 6:23),

초막(느 8:15), 가난한 자의 음식(신 24:20)

(2)레바논의 백향목 : 성전 벽(왕상 6:15), 문(왕상 6:36),

기둥과 들보 (왕상 7:2-3)

(3)무화과나무 : 벗은 몸을 가리는 것(창 3:7), 종기 치료제(사 38:21),

음식(삼상 30:12), 선물(삼상 25:18)

(4)버드나무 : 초막(레 23:40-42), 시의 소재(시 137:2)

(5)살구나무 : 등대의 모형(출 25:33-34),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 17:2-3, 8),

예레미야의 환상에 나타난 소재(렘 1:11)

(6)상수리나무 : 땅의 경계(삿 6:11, 19), 안식처(왕상 13:14),

우상 섬기는 곳(사 44:14), 노를 만드는 재료(겔 27:6)

(7)소나무 : 솔로몬 성전(대하 3:5)

(8)조각목 : 성전, 법궤, 기둥, 제단(출 25-27장; 35-37장)

(9)백단목 : 악기(왕상 10:12)

(10)잣나무 : 노아의 방주(창 6:14)

(11)종려나무 : 성전 장식 무늬(왕상 6:29-35), 사사의 자리(삿 4:5)

*공중(Air)이란 땅 위의 공간을 말하는데 사람의 눈에 보이는 하늘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창 1:26; 2:20; 삼하 22:12; 왕상 21:24; 잠 30:19; 렘 19:7). 히브리인들은 하늘(공중)이 몇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고후 12:1-4; 엡 4:10) 가장 높은 곳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사 66:1; 계 4:2), 그 다음 공중은 별이 있는 곳, 가장 낮은 곳은 구름이 있는 곳으로 생각했다.

성경에서 공중은 새가 사는 공간이며(마 6:26) 사탄의 처소로도 언급되었다(엡 2:2). 사탄은 공중에 거하면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여 망하게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공중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가 들림 받아 예수님을 만나는 곳으로도 언급되었다(살전 4:17). 공중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에르’(aer)는 허공(고전 9:26; 14:9), 공기(계 9:2; 16:17)로도 번역되었다. 이것은 보다 높은 공중인 하늘과 구별되는 낮은 공중인 대기층을 이르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 말씀을 놓고 해석을 달리하는 이들이 있다. 겨자씨는 1년생으로 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데 이것이 나무가 된다는 것은 외형적 성장을 말하고, 그래서 마침내 새 들이 깃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천국은 겨자씨처럼 미미하게 시작되지만 마침내 나무처럼 자라서 많은 새들(열방의 사람들)이 교회의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는 긍정적으로 해석 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어떤 해석이 과연 옳을까? 교회가 나무가 되면 안 된다. 교회는 항상 풀이어야 한다. 풀은 1년생이라 했다. 풀이 나무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교회란 수십 년, 수백 년, 영구적으로 뿌리를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광야에 대해서 이스라엘을 광야교회(행 7:38)라 했다. 광야교회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계획 없는 이동이었다. 한 곳에 정착을 하게 되면 인간의 속성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뿌리를 내리려 한다. 그러면 금방 거기에 집을 짓고, 그렇게 먹고 싶은 채소밭도 가꾸고, 그래서 목적지 가나안을 가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예고 없이 천막을 뜯었다, 지었다 하면서 반복하기를 40년 동안을 제 자리 걸음을 한 것이다.

교회(당)은 1년생이어야 한 까닭은 목표가 땅이 아니라 하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정착이 되면 하늘 생각은 멀어지는 법이고, 교회당에 몰입이 되면 사람을 섬길 수 없게 되는 법이다. 유럽교회가 망해버린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 되는가?

나무가 되면 새들이 깃들인다? 새는 밭의 비유 이야기에서 뭐라 했는가?(참고: 마 13:4-, 창40:17, 계19:21) 교회가 부흥하고 커져서 나무처럼 되면 거기엔 반드시 새들이 깃들이게 된다. 지금까지 교회 역사가 그래왔다. 사람들은 교회건물이 웅장하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흥청망청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에 진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그러나 역시 답은 독자 개인이 해야 한다,

두 번째의 비유(마 13:33) = 천국은 누룩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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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것은 누룩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 하라하시니 그제 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 으니라.’(마16:11-12)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 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고전5:6-7상) ‘묵은 누룩으로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 없이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5:8하)

*누룩(Yeast)이란 포도 액으로 반죽된 순수한 밀기울 또는 물로 반죽하여 발효할 때까지 놓아 둔 보리로 만들어진 것으로, 빵이나 술을 만들 때 발효제로 사용된다. 구약에서는 빵을 만드는 재료로서 뿐만 아니라 의식과 관련하여, 신약에서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

구약에서 사용된 누룩은 율법은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을 먹도록 했는데(출 23:15; 마 26:17),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빵이 발효되기를 기다릴 시간도 없이 ‘발교(발효)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서둘러서 떠났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기 위함이었다(출 12:34; 신 16:3).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에는 꿀과 함께 누룩이 드려지는 것이 금지되었고(레 2:11), 오직 누룩 없이 빚어진 떡만이 허용되었다(레 10:12).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는데, 화목제의 감사 희생과 함께 그 예물에 드려지는 경우(레 7:13)와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으로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경우(레 23:17), 그리고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는 경우(암 4:5)는 누룩이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사용된 누룩은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헤롯당파를 경계하는 비유에서 사용되었다(마 16:6; 막 8:15).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과 외양에만 관심을 두는 것(마 23:13-36; 눅 12:1), 사두개인들의 의심과 고의적인 무지(마 22:23, 29), 헤롯의 사악함과 정치적인 궤휼(마 22:16-21; 막 3:6)을 누룩에 빗대어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5:6-8에서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을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과 대비하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음을 상기시켰다. 또한 갈라디아서 5:9에서는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들어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주의시켰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사용된 누룩에 대해서, 예수님은 천국을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이라고 비유로 설명하셨다(마 13:33; 눅 13:21). 이것은 천국의 일이 은밀히 진행됨을 말하며, 강력한 행동과 함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마 12:19)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나약함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천국의 외형은 감추어져 있고 은밀하나 모든 것에 침투하여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누룩이라 했고, 바울은 묵은 누룩이라 했다. 이것이 모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교훈은 대체적으로 전통적 유전을 기본으로 가르쳤고, 바울의 묵은 누룩은 구약(율법)을 가르쳐 한 말이다. 본래 누룩은 오랜 시간 발효시켜 만든 것들이다.

신약시대는 오래 묵은 교훈으로 열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전통이란 말을 무척 좋아하는데, 오래된 전통은 누룩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교회는 매순간 하나님의 새 계시로 인도함을 받는 믿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새것이다. 신약백성은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함이니라’(눅5:39)는 말씀을 하셨다. 묵은 것, 묵은 누룩, 묵은 포도주 이것을 버리지 않고는 무늬만 신약백성이지 순전함과 진실함의 신약백성은 결코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 21세기 교회를 놓고 ‘교회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있는지 아는가? 지금의 5백 년 된 개혁교회! 어쩌면 누룩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수 있다.

21세기 교회가 이곳저곳에서 비리들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바로 묵은 누룩들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누룩으로 부풀어져 버린 교회, 지금 교회의 구성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의식을 안 하기 때문에 조금도 심각성을 못 느끼지만, 사실은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다. 때가 가까이 다가 올 수록 이 문제는 시급히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도 지구촌의 급속한 변화를 시시 때대로 알리는 뉴스에 귀를 기우려 보아야 할 때이다, 그래도 영적 잠만 자야 하는가? 영적 잠에서 모두 깨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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